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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십자가 (누가복음23:32-43)
백종선 2017-04-15 추천 0 댓글 0 조회 994
[성경본문] 누가복음23:32-43 개역한글

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누가복음 23 : 32 ~ 43

제목 / 영광의 십자가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 주일은 사순절의 여섯 번째 주일이며,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이 날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겸손하신 모습으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고 해서 종려주일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환영하는 무리가 호산나 호산나 찬양했다고 해서 호산나 주일이라고도 합니다.


매년 종려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것이 다름 아닌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시려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벌써 2000년이 훨씬 지났지만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사건이기에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도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입성을 환영하는 뜻에서 찬양하며 종려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는데... 이 시간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화폭에 담는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가 있습니다. ‘렘브란트입니다. 이 분은 이삭의 희생 제사나, 돌아온 탕자, 스데반의 순교,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같은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주제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은 렘브란트는 그의 작품 속에 자신의 얼굴을 자주 그려 넣었습니다. 예를 들어 순교자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는 성난 군중 가운데 한사람으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군중의 한사람으로 자신을 그려 넣고, 또 돌아온 탕자의 모습 속에 자신을 닮은 얼굴을 그려 넣었습니다.

렘브란트가 자신의 얼굴을 그림에 그려 넣은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이 그 그림 속에 나오는 사람들과 똑같은 죄인이라는 고백을 그림으로 표현한 겁니다.

렘브란트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깨달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사람들과 나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고,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마다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다릅니다.

렘브란트와 같이 내가 죄인입니다고 느끼는 분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구경꾼들과 같이 구경만 하는 분이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며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를 지셨는지, 그 십자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알기 전까지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한갓 목제조형물에 불과합니다. 2천 년 전에 있었던 어떤 한 사람의 고통스런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끝납니다. 예수님과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속에는 하나의 역설이 담겨있습니다. 십자가는 죄인에게 가해졌던 가장 무서운 형벌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에게 내려지는 가장 냉혹한 저주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영광입니다.

어떻게 십자가 속에 양 극단이 들어있을 수 있습니까?

형벌의 십자가가 어떻게 구원의 능력이 되며, 저주의 십자가가 어떻게 가장 큰 영광이 될 수 있습니까?


그 십자가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달리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처형은 로마가 자신들의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든 잔혹한 처형방식이었습니다. 로마의 권력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가장 잔인한 죽음으로 보여줌으로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주었던 본보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셨습니다. 로마 군인들의 손에 이끌리어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 형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로마의 권력에 저항하는 반역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흠과 티가 없는 완전한 의인으로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법적으로 따지면 잘못된 판결입니다. 억울한 죽음입니다.


가끔 뉴스에서 과거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가... 나중에 그 판결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서... 국가가 보상을 해주는 일이 있습니다. 이들이 사형을 당할 때 얼마나 억울하였겠습니까? 아무리 자신들은 무죄라고 주장해도 법의 힘으로 집행되는 사형을 막을 수 없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얼마나 마음이 괴롭고 화가 났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신 것은 죄를 범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고서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의 결백은 빌라도 법정에서 밝혀졌습니다. 예수님을 심문하던 빌라도는 법정에서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죄를 발견하지 못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결백하셨지만 십자가형에 처해졌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고, 풍랑 이는 바다를 잠잠케 하시는 등... 예수님이 못 하실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음만 먹으면 십자가에서도 내려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거부하시면 누구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번도 저항하지 아니하시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순순히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타의에 의해서 억지로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 자의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세 차례에 걸쳐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를 짊어지시기 위해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아무 죄도 없으시면서... 스스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일까요?

우리 인간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인간이 죄로 인하여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을 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가 져야 할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예수님이 골고다라 불리는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의 양 옆에 두 사람의 행악자가 나란히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 두 사람은 범죄를 저질러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이 두 행악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죄를 범하면 나처럼 이렇게 된다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두 강도를 보면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내 차례다입니다. 두 강도는 우리가 처한 운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9:27절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3:10절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하였습니다.

5:12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두 강도가 달린 십자가는... 죄인된 인간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5:26절에서.. 죄인들은 영벌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두 강도 사이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 십자가는 바로 저와 여러분이 달려 있어야 할 십자가입니다. 그곳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 나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모진 고통을 당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죄 때문에’... ‘내 죄 때문에’... 저렇게 고통을 당하신 모습을 보면서... 내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죄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야 합니다. 내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내 죄의 심각성을 느끼며,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통당하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내 죄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병든 것입니다.

자식이 잘못하였을 때, 자식을 잘못 키운 내가 잘못이라고 하며 자신의 종아리를 걷어 피가 나도록 때리시는 어머니를 보고서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 마음이 병든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의 죄와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였을 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나의 죄를 고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에 대하여 마음 아파하며 통회 자복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양 편에 있던 행악자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을 향하여 비방합니다.

39절을 보면... 행악자 중 하나가 예수님을 비방하며 네가 그리스도라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합니다. 이 행악자는 예수님을 보면서도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합니다. 이 행악자가 말한 구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지금 그가 겪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악자가 말한 구원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에게 나오긴 하였지만... 자신의 죄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돌아서지 않습니다. 단지 자신이 처한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해 주기만을 바랍니다. 죄의 문제가 아니라 눈앞에 놓인 현실적인 문제만을 해결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놓여있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아셨기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에... 아직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에만 급급해 하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현실적인 문제만을 해결하려고 급급한 사람은.. 완전한 해결을 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문제가 터져 나옵니다. 문제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이전의 문제들이 문제로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영원한 소망을 바라봅니다.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누립니다. 주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립니다.


본문 40절 이하를 보면 또 한 사람의 행악자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다른 행악자가 한 행동을 보고 꾸짖으며...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 죄로 인하여 보응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옵소서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였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겪고 있는 십자가는 자기의 죄 값으로 인한 마땅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아는 자입니다. 자신의 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아는 자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달라고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시며 그의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목적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며 간구해야 하는 것은 사죄의 은총하나님 나라입니다.


2세기 경에 십자가의 효험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퍼졌습니다. 십자가를 가지고 있으면... 병이 낫고, 부자가 되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이런 소문 때문에 십자가 모형이 많이 팔려나갔습니다.

이런 현상에 두고 교부 테르툴리아누스가 우려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저들이 사들인 십자가의 값으로 예루살렘을 지을 수 있겠다고 하며 저들의 행동을 꼬집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십자가를 부적처럼 생각하고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사고를 막아주고, 일이 잘 풀이고, 운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십자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인간의 헛된 욕망을 채워주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또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1:20~22절을 보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행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를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과, 우리를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었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온전한 사랑을 깨닫게 하여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가능케 합니다. 십자가가 없는 사랑은 에로스적인 자기애(自己愛)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기 사랑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아가페 적인 참된 사랑을 합니다.

자기를 낮추어 섬기는 사랑입니다. 이웃을 위해 자기를 내려놓는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온전한 사랑으로 이끕니다.


십자가는 저주이고 형벌이고 부끄러움과 수치이지만... 십자가는 영광입니다. 그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해결하시어 거룩하게 하시고, 멀리 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자기 밖에 모르는 에스로의 사랑을 뛰어넘어 스스로 낮아서 이웃을 사랑으로 섬길 수 있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런 놀라운 일을 이루어놓으셨기 때문에 저주의 십자가가 영광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일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가치 있는지를 알았기에... 다른 것은 자랑하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리라 결단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를 보면서 십자가의 영광을 발견할 수 있기 바랍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거룩하여 지고, 우리에게 주신 귀한 은혜를 받아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그 안에서 거룩한 영광을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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