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레위기9:22-24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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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필하고 내려오니라
23.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레위기 9 : 22 ~ 24
제목 / 예배의 원형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세우신 민족이며,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태동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의 후손을 자기 백성으로 삼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그들을 바로의 손에서 건져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나라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태동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기까지 이 모든 것을 이루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중요한 순간마다 언약을 맺는데... 그 언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핵심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거하시며 자기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서 세우신 것이 있습니다. 장막과 성전입니다. 솔로몬 이전까지는 하나님이 장막에 거하셨고, 솔로몬 이후로는 성전에 거하셨습니다. 장막과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었기에 당연히 이스라엘 민족은 장막과 성전을 중심으로 생활하였고 무엇보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우선으로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되어 있는 레위기 9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장막을 건설한 이후에 처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면입니다. 출애굽기 25장에서 하나님이 장막을 지으라는 명령과 함께 출애굽기 마지막 40장까지 장막을 짓는 내용이 나오고, 출애굽기에 이어 레위기로 들어오면 1~7장에 걸쳐 성전에서 드려야 할 5대 제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8장에 들어오면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을 세우는 제사장 위임식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9장에 들어오면 드디어 첫 제사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레위기 9장에 나오는 제사의 장면은 첫 장막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예배가 모든 예배의 원형이 된다는 데 있습니다.
공장에서 어떤 물건을 제작할 때... 먼저 제작할 물건의 원형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원형을 본떠서 다른 물건을 만듭니다. 만들어진 물건이 잘 되었는지 잘못 되었는지는 원형과 비교해 보면 압니다. 원형과 같으면 잘 만들어진 것이고, 원형과 다르면 잘못 만들어진 것입니다.
레위기 9장에 나오는 제사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드린 예배의 원형이며, 또한 이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영광이 나타난 완전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를 배우려면... 레위기 9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9:1~7절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대로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8~14절은 대제사장 아론을 위한 속죄 제사를 드리는 내용이 나오고, 15~21절까지는 이스라엘 회중을 위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내용이고, 오늘 읽은 22~24절은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을 위하여 축복하였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불이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23,24절입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고, 여호와의 불이 나와 번제물을 태웠습니다. 이 예배 가운데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정리하고 넘어갑시다.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장막을 세운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거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그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언제 장막에 임하셨습니까?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렸을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때... 임재하셔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장막을 지으신 목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 임재하시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소에 임재하시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하여 모든 예배 가운데 영광으로 임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다음 장 레10장을 보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를 드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10:1,2절을 보면... 나답과 아비후가 각각 향로를 가져다가 하나님이 명령하지 아니한 다른 불을 담아 분향을 하였다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임의대로 제사를 드렸다가 이런 비운을 맞이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예배를 드리려면.. 레9장에서 보여준 예배의 원형을 잘 보고 배워야 합니다.
레9장에 나타난 제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첫 번째는...
‘거룩한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는... 거룩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7절을 보면... 모세가 아론에게 지시한 것이 있습니다.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라”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
너와 백성을 속죄하는 속죄제를 드리라는 명령입니다.
‘속죄제’가 무엇입니까?
죄를 속하는 제사입니다. 죄를 사하는 제사입니다. 죄를 씻는 제사입니다.
본문 8,9절을 보면... 아론이 속죄제 송아지를 잡고,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아론에게 가져옵니다. 아론은 그 피를 손가락에 찍어 제단 뿔에 바르고 제단 밑에 쏟습니다.
12절에서도 아론이 번제물의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립니다.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 속죄제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왜 피를 뿌리는 것일까요? 히9:22절을 보면...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피가 죄를 씻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왜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했을까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거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로 더렵혀진 상태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죄로 오염된 상태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가는 자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는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송아지의 피를 뿌려 속죄제사를 드렸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로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요일1:7절에서 “...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흘리신 속죄의 피입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예수님은 자신이 흘리신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셔서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는 항상 내 자신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죄에 민감해야 합니다.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예배에 실패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레9장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두 번째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장막을 짓게 하고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바로 이 예배의 목적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지 않는 예배,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예배는... 예배의 목적을 상실한 예배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수많은 예배가 여기저기에서 드려지고 있지만...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모르고, 아무 의식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져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내 중심에 모시려는 의식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따르겠다는 의지 없이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내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내 중심에 임하여 주옵소서!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나를 인도하옵소서! 라는 마음으로 주님을 사모하며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최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찬송을 드릴 때에 정성을 다하여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기도를 드릴 때에도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헌금을 할 때도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자에게 하나님은 임하셔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본문 23,24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백성 중에 나타나고, 하나님이 불로써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바로 이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불로써 응답하시며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셨지만... 신약에서는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예배를 통하여 성령의 임하심을 체험합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거룩함과 영광을 체험합니다.
거룩함과 영광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분리되지 않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거룩함과 영광을 체험합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성령이 주시는 마음을 품게 되고 거룩한 열망이 생깁니다.
거룩함에 대한 열망이 생깁니다. 의에 대한 열망이 생깁니다.
사랑하고 싶은 열망이 생깁니다. 평화에 대한 열망이 생깁니다.
섬김과 나눔의 열망이 생깁니다. 찬양의 열망이 생깁니다.
하나됨의 열망이 생깁니다. 기도의 열망이 생깁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열망이 생깁니다.
이는 평소 때 품고 있었던 마음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죄가 큰 부담으로 느껴집니다.
냄새나는 몸으로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처럼... 죄의 냄새가 나는 자신이 견딜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한 수치심, 초라함, 두려움과 같은 감정이 교차합니다. 그래서 이를 떨쳐 버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습니다. 거룩함의 열망입니다.
내 욕심과 이익을 추구하며 물질을 사랑했던 마음이... 나누고 베풀고 싶고,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일어납니다.
이전에는 가난한 것이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나누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됩니다. 나눔의 열망입니다.
지금까지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했던 사람에 대하여... 화해하고 사랑하고 싶어집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품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했던 자신이 작아 보이면서...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고 싶어집니다. 화해의 열망입니다.
다른 성도들을 보면 뭔가 부족해 보이고, 격이 낮아보이던 것이... 귀하게 보이고,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이고, 사랑스럽게 생각됩니다. 사랑의 열망입니다.
기도가 부담스럽고, 예배가 지겹고, 찬송의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던 것에서... 기도와 말씀과 찬송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좋아집니다. 경건생활의 열망입니다.
이런 열망에 사로잡히면서 알 수 없는 기쁨과 평강이 넘쳐납니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거듭난 삶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느낍니다.
이것이 성령을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된 모습입니다.
본문 24절을 보면...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영광을 본 백성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그들은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습니다.”
‘소리 지르다’는 원어로 ‘라난’입니다. 기쁨의 함성을 말합니다.
온 백성들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고 기쁨의 탄성을 자아내었습니다. 기쁨이 충만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영광을 경험하면... 환희에 찬 이 감격스런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엎드렸습니다”
경외감의 표현입니다. ‘루돌프 옷토’라는 독일 신학자는 이것을 ‘두려움의 신비’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사랑과 공경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입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너무 좋고 너무 존경스럽고 너무 영광스러워서 저절로 고개를 숙이는 경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이런 기쁨과 영광과 경외감을 경험할 수 있기 바랍니다. 레9장에서 보여준 예배의 원형을 보고...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배워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체험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져서... 예배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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