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베드로전서4:12-16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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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베드로전서 4 : 12 ~ 16
제목 /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라
기독교 신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고난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싫어합니다. 고난은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견디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고난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놓여 있습니다. 이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고난의 십자가가 구원과 부활의 영광을 가져 왔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없었다면 구원과 부활의 영광도 없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는 그리스도가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입은 백성들, 주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신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공관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보면... 공히 사도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럴 수 없다고 항변하며 막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신 고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은 피하고 싶어 합니다. 왜 우리가 그 길을 가야 하느냐고 베드로처럼 항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고난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축복을 받고 행복을 얻기 위해서인데... 고난의 길을 가야한다고 하면 그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 목적은 그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고, 축복을 받고,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그럴 수 없습니다” 하고 막았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며 베드로를 꾸짖었습니다.
고난의 길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사탄의 역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주님을 따르는 길이며, 무엇이 하나님의 생각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주님을 따르는 길이며, 무엇이 하나님의 생각입니까? 고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며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한 이후에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실 것을 밝히셨고,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과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주님가신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고난의 길을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고난의 길을 가야 한다면 그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고난의 길을 가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가신 이유와 동일합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까? 그 길이 죄에 빠진 인간과 이 세상을 구원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이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와 샬롬의 평화와 창조의 질서가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의 길을 가야 하는 이유도 동일합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고, 병들고 부패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와 샬롬의 평화와 창조의 질서가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입니다.
죄악으로 어두워진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부패하고 썩어지는 것을 막고, 어둠을 밝혀야 합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기희생입니다. 빛을 내려면 자신을 태워야 합니다. 소금이 제 역할을 하려면 자신을 녹여야 합니다.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악한 권세가 장악하고 있기에... 이 세력에 맞서 악한 권세를 무너뜨리고... 의의 나라, 평화의 나라, 사랑으로 하나된 나라를 만들려면... 강한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이를 피하려고 해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갈 수 없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목사는 히틀러가 광기를 발하여 유태인을 학살하고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갔을 때... 히틀러에 맞섰습니다. 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자신을 신의 위치에 올려놓는 지도자들이나 관리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이다”고 하며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히틀러의 눈 밖에 난 본 회퍼 목사님에게 징집영장이 떨어졌습니다. 징집이 된다는 것은 히틀러의 군대에 들어가 히틀러의 명령을 수행해야 함을 의미했고, 이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교회 지도자들은 본 회퍼를 미국으로 탈출을 시켰습니다. 그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은 매우 환영하였고, 이때부터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에 몸을 담고 활동을 하였습니다. 본 회퍼 목사는 미국에 머물면서 인기리에 많은 강연을 하였습니다. 본 회퍼 목사님이 미국에 머무는 동안 크게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으며 성경을 연구하는 동안 성경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성경을 지적인 탐구의 대상이 아닌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본 회퍼 목사가 남긴 말이 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성경을 발견했다. 나는 설교를 자주 했고, 교회 일도 많이 했으며, 성경을 말하고 가르쳤다. 그러나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삶은 교회에 속해야 한다는 게 분명해 졌다.”
이 때부터 본 회퍼 목사는 그리스도를 가장 잘 섬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하였고... 여기서 그는 조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합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미국이 아니라 나치 밑에서 고통당하는 동포와 운명을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독일로 돌아가서 유대인들은 독일 밖으로 탈출시키는 일을 하였고, 히틀러에 맞서 저항운동을 펼쳤습니다. 이로 인해 본 회퍼는 체포되었고,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본 회퍼 목사가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에 있을 때 성경을 읽다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각한 것은 매우 중요한 깨우침이었습니다.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과 함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 왔습니다. 그는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독일로 갔고,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 하며 히틀러와 맞서 싸우다가...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갔습니다만... 본 회퍼가 보여준 삶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이 땅의 구원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비록 위험하고, 힘들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길이라 하더라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본 회퍼 목사님이 미국에 있으면서 자주 읽었던 말씀이 산상수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고,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길이 비록 고난의 길이고, 역경의 길이고, 좁은 길이지만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신분교환’입니다.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분교환”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우리 죄의 짐을 지고 죄인의 신분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 의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의인이었던 예수님이 죄인이 되셨고, 죄인이었던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신분교환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회심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 거듭났다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죄인이었던 과거의 옛 사람의 모습이 변화를 받아 의의 생명인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롬4:25절을 보면...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인이었던 우리가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신비입니다.
이런 변화는 우리의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영접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과거의 죄인의 모습에서 서서히 벗어나 거룩한 삶으로 변화됩니다.
세계적인 기독교 저술가인 ‘찰스 콜슨’은 “당신의 믿음이 살아 있다면 과거에 지은 죄가 점점 더 깨달아지고 역겨워지며 진정으로 그 죄에서 돌이키고 변화되려 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스펄전 목사님도 “죄에 대한 증오와 거룩에 대한 사랑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당신에게서 구원과 관련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으면 신분교환에 따르는 진정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죄인이 의인으로 변합니다. 죄를 가까이 하던 사람이 죄를 멀리하는 거룩한 사람으로 바뀝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은... 의의 길을 갑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삽니다. 그리고 이 길을 가는 사람이 겪는 고난을 겪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의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오늘 본문 12~14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불 시험이 오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라고 합니다.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나타나실 때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분 중에 많은 분들이... 자신의 신앙생활의 점검을 무엇으로 하는가 하면... 내가 물질의 복, 자녀의 복, 명예의 복을 누리고 있는지... 이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물질의 복, 자녀의 복, 명예의 복을 누리고 있으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복을 누리지 못하면 자신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 세계에 오셔서 가난과 소외된 자들 속으로 들어가셔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의 길을 걸어가며 선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가신 바로 이 길을 가야 합니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들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이 땅의 의와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중세의 성인 ‘마르틴’에 관해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이 분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마르틴이 기도하고 있는 중에 사탄이 구원자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마르틴 앞에 나타났습니다. 마르틴은 자신 앞에 나타난 분이 구원의 주님인줄 알고 땅에 엎드려 그에게 절하려는 순간 그의 손바닥을 보고 외쳤습니다. “못자국은 어디 있느냐?” 그 순간 사탄은 사라지고 없어졌습니다.
우리 주님의 흔적이 십자가의 흔적, 고난의 흔적이듯이... 우리에게도 이 고난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면서 남긴 흔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일하다가 받은 고난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고난의 흔적이 참 믿음의 표시입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성도가 받아야 하는 고난이 어떤 고난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잘못된 고난을 언급합니다.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일로 고난을 받는 것”은 잘못된 고난입니다.
베드로가 이야기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받는 고난과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받는 고난은 구분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와 잘못으로 인해 받는 고난은 부끄러운 고난입니다. 이를 두고 주님으로 인해 받는 고난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사도베드로가 이야기하는 고난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과정에서 겪는 고난입니다. 이 고난은 부끄러운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고난입니다.
우리가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영광스런 천국’과 ‘수치스런 지옥’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분명하게 알 때... 주님을 따르는 삶을 결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난을 피하려는 생각입니다. 고난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고난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고난을 선택하느냐 입니다.
주님의 뒤를 따르며 의인이 겪는 고난을 선택할 수 있고, 주님을 저버리고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죄짓고 살다가 영원한 형벌이라는 고난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입니다.
주님의 뒤를 따르며 의인이 겪는 고난은... 미래의 영광이 보장된 고난입니다. 자랑스러운 고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지음으로 받는 고난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일 뿐 아니라 헤어 나올 수 없는 영원한 고난이며, 수치스런 고난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고난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주님을 따르는 의인의 고난을 선택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영광스런 날을 맞이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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