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 말씀과기도 >
  • 주일낮예배설교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 (요한복음3:16-17)
백종선 2017-02-19 추천 0 댓글 0 조회 619
[성경본문] 요한복음3:16-17 개역한글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요한복음 3 : 16 ~ 17

제목 /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

 

어둠이 짙어질수록 새벽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사는 것이 점점 힘들어질수록 변화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울부짖는 소리, 한숨짓는 소리, 탄식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가계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가난으로, 질병으로,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젊은이들은 우리나라를 일컬어 헬조선이라고 부릅니다. 지옥과 같은 나라라는 말입니다.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두고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면 희망을 품고 열심을 내어볼텐데 그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나온 이유도 개인의 노력여부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회가 계층화되어 있어 금수저 밑에서 금수저가 나오고, 흙수저 밑에서는 흙수저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또 하나의 신조어가 노오력입니다. 사회 구조적 모순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것을 냉소적으로 비꼬는 말입니다. 청년들의 부정적인 사회인식이 계속될 경우 사회에 대한 혐오감이 커질 것이고... 이렇게까지 되면 각종 범죄가 발생하여 사회적 안정이 깨어질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이 세상을 원망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젊은이들의 눈에 세상이 모순 덩어리로 보이고 젊은층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원망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시대고 어렵지 않았던 적은 없습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불완전합니다. 모순 덩어리입니다.


지금도 어느 세대를 무론하고 힘들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옆에서 보기에 쉽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입장에 처해보면 다들 힘들게 살아갑니다. 원래 사는 것이 힘든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부끄럽지 않는 인생의 길을 가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여기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바른 길을 가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중략)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조국이 일제 강점기 하에서 냉혹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자신은 하늘 우러러 부끄럼 없이 살고, 죽어가는 조국과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겠다고 하는 자신의 결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악의 세력으로 인해 이 세상이 병들어가고, 고통스러워 간다 하더라도 이 세상을 포기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수록 더욱 이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죄악된 세상을 구원하고자 해야 합니다.

 

본문 중에 여러분이 잘 아시는 3:1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죄악으로 얼룩지고 더러워진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감사하도 않고, 교만하여 져서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대적하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멸망시키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미워하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가장 위대한 일은 죄악 세상을 구원하신 일입니다.


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하여 세상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나를 속인다고 해서 세상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하며 분노를 쏟아내어도 안 됩니다. 그럴수록 세상은 미움과 증오가 커져가고 세상은 점점 더 살기 힘든 지옥과 같은 곳이 되어 버립니다.


세상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하고 악할수록... 구원을 간절하게 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처럼 이 세상을 사랑하며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무엇을 하셨습니까?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는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가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메시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증오하여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하였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이 오셔서 세상을 밝히자 어둠에 숨어 온갖 죄를 일삼던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고, 이를 감추기 위해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어 결정한 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선지자로 알려져 있었기에 그들의 손으로 직접 예수님을 죽이면 선지자를 죽인 자라는 오명을 쓰게 되고, 백성들의 강력한 저항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몰아 로마인들의 손에 예수님을 죽게 만들되 십자가형에 처하게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겼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것으로 이해되기에... 예수님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저항을 잠재우고 깨끗하게 해치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그들이 생각해낸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십자가는 자기희생입니다. 사랑의 절정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구원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구약의 선지자들로부터 예언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나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을 창조할 것을 선언하신 바 있습니다.

31:33절에서...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을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하시며... 새 언약을 통해 새로운 백성을 창조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6:25~28절에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맑은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고세례를 말합니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여...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 강림을 말씀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삼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을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53:5,6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을 창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은 고난의 종입니다. 인간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고난과 죽임을 당하게 하심으로 구원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십자가가 가진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심령을 부드럽게 하고 정결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능력입니다. 사랑의 능력입니다. 자기희생의 능력입니다. 섬김의 능력입니다. 구원의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이 능력이 주어집니다.


이 세상이 왜 삭막해지고 있습니까? 왜 많은 사람들이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고 있습니까? 왜 점점 더 궁지로 몰리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그들이 정신력이 약하고, 의지력이 약해서입니까? 뭔가가 모자라서 그렇습니까?

승자독식의 세상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세상에서는 패자들은 궁지로 몰립니다. 깊은 절망에 빠져듭니다. 이긴 사람들은 승자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지 모르나 대다수의 패자들은 수렁에 빠집니다. 이런 세상을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투견장에 내몰리는 투견들에 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올라온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투견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아지 때 정해집니다. 투견으로 선택이 되면 약 2년간 혹독한 훈련을 받습니다. 런닝 머신을 이용해서 계속 뛰게 만들고, 나무에 매달리게 하여 악력을 키우고, 계속해서 자극을 주어 사납게 만듭니다. 때로는 약물까지 투여하며 공격성을 높입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투견은 투견장에 투입됩니다. 투견의 수명은 이길 때까지입니다. 지면 더 이상 투견장에 나오지 못합니다. 개의 습성상 한 번 지면 꼬리를 내리기 때문에 쓸모가 없어지는 겁니다. 이렇게 된 개는 도살되거나 또는 다른 훈련개들의 훈련 상대가 됩니다. 끝까지 싸움만 하다가 일생을 끝내게 되는 거죠. 아무리 강한 투견이라도 언젠가는 집니다. 지는 순간 그의 수명은 끝이 납니다. 투견을 싸움시키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나 도박하는 사람들이 돈을 목적으로 참혹한 짓을 합니다.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싸움을 원하는 개가 없다고 합니다. 혹 우열을 가리기 위해서나 자기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기는 하지만 투견처럼 피를 난자하게 흘릴 정도로 물어뜯고 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요.


이기는 자가 독식하는 이런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승자만을 위하는 세상은 삭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인간적인 세상이 됩니다. 모두를 불행으로 빠뜨립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정복의 역사이며, 지배의 역사입니다.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흘러오다 보니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당연한 듯이 받아들입니다.

어려서부터 경쟁력 있는 자녀로 키우기 위해 투자합니다. 이기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기는 자는 인정을 받고, 대우를 받지만.. 경쟁에서 밀린 사람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후회하며 살아갑니다.


여기에 길들여져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기는 자가 독식하는 세상이 아니라 어떤 사람도 궁지에 몰리지 않고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죄악이 판치는 세상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약육강식의 사회에 길들여져서 먹고 먹히는 세상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조차 모르는 세계에 예수님이 오셔서 보여주신 것은 사랑과 희생과 섬김입니다.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다른 사람을 살리는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죄악에 사로잡힌 죽은 영혼으로 살지 않고, 영생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영생의 삶이 무엇인지,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의미를 모릅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이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임을 전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경쟁에서 밀려 가난과 과로와 마음의 상처로 인해 고통을 겪으며, 각박한 삶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허덕이며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이런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증거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과 희생과 섬김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구원의 길을 깨우쳐주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라고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너무도 막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씨가 뿌려져야 자랍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복음의 씨가 많은 사람들의 심령에 뿌려질 때 구원의 꽃이 활짝 피어나며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번 태신자 작정에 우리 성도님들이 많이 참여해 주셔서 마음이 기쁩니다. 계속해서 태신자 명단은 받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죄악의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모두를 불행과 파멸로 빠뜨리는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막중한 사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 사명 감당하는 일에 힘을 쏟을 수 있기 바랍니다. 이 일의 시작은 태신자를 품는데서 시작됩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들을 사랑하고, 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이들을 섬기며,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의 이웃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행이며, 이 세상에 기여하는 최고의 봉사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이 거룩한 사명에 다 참여하여 함께 영광스런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기 바랍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구원의 드라마 (출애굽기5:22-6:9) 백종선 2017.02.26 0 564
다음글 개혁의 샛별 위클리프 (요한복음4:34-38) 백종선 2017.02.12 0 714

630823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앵지밭골1길 59-25 (회원2동 740-1) TEL : 055-247-7328 지도보기

Copyright © 희망촌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12
  • Total64,927
  • rss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