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복음5:2-9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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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요한복음 5 : 2 ~ 9
제목 / 일어나 걸어라
일제 강점기 시대에 소설가였던 현진건 씨가 1921년 개벽(開闢)이라는 잡지에 단편 소설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하였습니다. 줄거리를 간락하게 말씀드리면... 결혼한 지 1년 남짓하였을 때 남편이 일본에 유학을 가서 6,7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어려운 살림을 하며 남편이 돌아오는 날만 학수고대 합니다. 가끔 방문하는 친척들이 비단 옷을 입고 금가락지를 낀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두고 보라지 남편만 돌아오면...” 서러운 날이 다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웃고 넘어 갑니다.
기다리던 남편이 유학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돌아왔는데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집안 돈을 쓰며 어디엔가 분주하게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는 정신없이 책을 보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합니다. 이를 보면 필시 무슨 큰일을 하려도 단단히 준비하는가보다 생각하며 좋은 날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얼굴은 시름이 깊어가고 깊은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의 얼굴도 어두워집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 남편이 누워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후로 남편은 술 먹는 날이 많아지고, 역겨운 술 냄새를 풍기며 잠에 듭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깜빡 잠을 자다가 깨어보니 남편이 바깥 마루에 쓰러져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방 안으로 힘들게 끌고 들어오면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누가 이렇게 술을 권하느냐?” 고 묻습니다. 그러자 남편의 입에서 “조선이라는 부조리한 사회에서 본 정신 가지고는 피를 토하고 죽든지, 물에 빠져 죽든지 해야지 하루라도 살 수가 없다” 며 가슴을 쥐어짜며 괴로운 듯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이를 지켜보는 아내의 입에서는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하며 절망적인 어조로 넋두리를 합니다.
이 작품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 자신의 꿈을 실현해 보고자 노력하지만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혀 그저 술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지식인의 아픔과 좌절을 보여 줍니다. 100여 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절망감에 빠져 있는 또 다른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38년 동안 불편한 몸을 가지고 살았던 병자입니다. 그는 베데스다 연못과 관련된 신비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연못에 내려오면 물이 움직이는데 물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낫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 기회를 잡고자 연못을 떠나지 못하고 38년을 기다렸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그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이 병자에게는 베데스다 연못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이 기회를 잡는 것만이 자기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오직 여기에 매달렸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38년된 병자를 좀 더 깊이 살펴보면...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 병자가 가지고 있는 병이 그렇게 중한 병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 병이 암과 같이 중한 병이었다면 38년이라는 세월을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두 번째, 이 병자는 베데스다 연못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포기할 만도 한데 포기하지 않고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는 것은... 베데스다를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서 계속해서 실패를 하였습니다. 7절을 보면... 물이 움직일 때 자신을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연못으로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는 바람에 기회를 잡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38년된 환자의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38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 이곳에서 중요한 시간을 다 보내었습니다. 이 환자가 꼼짝할 수 없는 중병에 걸려 있다고 하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이 환자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행동이 빠르지는 못하지만 혼자서 충분히 움직일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여기에 머물지만 말고 다른 일을 했어야 합니다.
나에게 부족하고 없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장애인 올림픽에 참여하는 분들을 보면 역경을 극복한 진정한 승리자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남아공의 의족 스프린터로 알려진 ‘오스카르 피스토리우스’는 두 다리가 절단된 상태에서 의족을 끼고 일반선수들과 나란히 겨루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결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였습니다.
손을 쓰지 못하지만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들이 있습니다.
호주의 ‘닉 부이치치’는 두 손과 두 발이 없지만 혼자서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강연하는 것을 보면 누워 있는 상태에서 혼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몸을 뒹굴려 책이나 물건이 있는 곳까지 가서 몸의 각을 세워 일어납니다. 이 분은 수영, 낚시, 골프를 하고, 전동 휠체어를 타고 못가는 곳이 없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그러나 이를 이겨내었기에 불구의 몸을 극복하고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굴곡 없는 인생이 없습니다. 장애물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이런 굴곡과 장애물을 만났을 때 이를 핑계로 포기하면 안 됩니다.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됩니다. 도전해야 합니다. 넘어서야 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강해질 수 있고, 더 힘차게 도약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서 갖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이 소문대로 연못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간 사람이 과연 치료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확신 있게 말할 수 없지만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소문에 불과할 확률이 높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빨리 들어가려면 행동이 빨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중병에 걸렸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먼저 들어갈 확률은 거의 없고, 대수롭지 않는 약한 병을 가진 사람이 들어갈 확률이 높습니다. 이들 중에는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가지 않아도 나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이런 사람이 치료된 것을 보고 연못에 대한 신비한 소문이 계속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신비하다고 소문난 곳이 많습니다. 어떤 연못에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거나... 어떤 동상을 만지면 대학에 입학하거나 아들을 낳는다거나... 새벽에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등... 이런 소문은 어디가나 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도 이런 곳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이런 소문을 믿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일종의 미신입니다. 이런 것을 믿으면 헛된 꿈을 꾸게 됩니다.
하나님은 베데스다 연못처럼 이런 식으로 기적을 베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은혜를 베푸십니다. 일등에게만 혜택을 주고, 경쟁을 붙여서 이기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조건을 보고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지 않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열등함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조건적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하나님이 만드신 연못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연못입니다. 가장 빠른 사람이 치유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을 심어놓은 곳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베데스다 연못과 흡사합니다. 우리 사회는 경쟁사회입니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기는 자가 원하는 것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 수요예배 후에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말하는 대로’라는 프로에서 사회학자 ‘오찬호’박사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에 모집인원이 4120명인데 22만1853명이 몰렸습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요즘 최고로 선호하는 직장이 공무원입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안정되다는 것입니다. 공무원 생활이 안정된 것을 사실이지만 큰돈을 버는 직업은 아닙니다.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 공부시키고, 노후 준비하기에 빠듯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많은 교육비를 투자하고,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시간을 투자하며 공부하여 목표하는 것이 안정되고 평범한 직장생활입니다. 열심히 해도 이 기회마저 얻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저임금을 받고 힘들게 일해야 합니다.
오찬호 박사는 이런 현실을 두고 이런 말을 합니다. “이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목표하는 것이 평범한 생활인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가? 평범한 생활은 말 그대로 평범한 것인데...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닌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치열하게 공부해도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없는 사회라면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자녀를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쟁이 너무 치열합니다. 노력한 것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너무 적습니다.
영국 웨일즈 지역의 학생 3명과 교사 1명이 직접 한국에 와서 고등학생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한 것을 BBC방송에서 제작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학생들의 빡빡한 수업 일정에 따르는 것을 매우 힘들어 했습니다. 영국 교사가 한국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시험을 치렀는데... 영국 학생들이 2시간 동안 풀어야 하는 문제를 1시간에 풀게 하였는데 빠르게 푼 학생들은 15분 만에 끝냈습니다. 이를 본 영국교사는 영국학생들은 이 문제를 어렵게 생각하는데 한국 학생들은 너무 쉽게 푸는 것 같다고 하여 놀라워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준은 세계 6위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평범, 또는 그 이하입니다.
왜 이런 사회가 되었습니까? 젊은이들의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가 너무 가진 사람, 힘 있는 사람들만의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를 두고 “가진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합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만이 잘 사는 사회, 가진 사람들의 천국... 이런 오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상적인 사회는 노력한 만큼 대가가 돌아오는 사회입니다. 특별한 사람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노력한 만큼 돌아와야 합니다.
나만 어떻게 해서든지 공무원 시험에 합격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후손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열심히 일해도 저임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힘든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사회 시스템을 바꾸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대기업, 정치인, 판검사, 의사, 전문가들을 위한 사회가 아니라 중소기업, 중소상인, 셀러리맨, 일반직 공무원, 기술직,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이를 간절히 원하고,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할 때 조금씩 변해 갈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의 38년된 환자를 찾아가십니다. 예수님과 38년된 병자와의 대화 장면을 살펴보면 6절에서 예수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때 병자는 어떻게 대답합니까? 7절입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가다보니 지금까지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이 병자의 대답에서 이 사람이 ‘의존적인 사람’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이렇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나를 도와주기만을 바라면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누가 도와줄 때만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일어날 생각을 해야 합니다.
8절에서 예수님이 38년된 병자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님은 환자가 원한 대로 그를 못에 넣어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환자를 향하여...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로 하여금 그 동안 머물렀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 순간 환자는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일어서려고 할 때... 예수님은 일어날 힘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면... 예수님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6절의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과 8절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라가”는 말씀입니다. 원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앞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할 수 있도록 힘주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복음송이 있습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빌4:12,13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지... 나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가난하다고, 배고프다고, 아프다고, 힘들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어서야 합니다.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서 38년된 환자와 같이 일어서지 못하고 한 숨 쉬며 희망도 없이 꿈도 없이 그냥 머물러 있는 분은 없습니까? 가만히 머물러 있으면서 누구의 도움만을 기다리면 그 자리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십시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장애를 극복하고, 나약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새롭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부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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