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나1:11-16 개역한글
-
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 그러나 그 사람들??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요나 1 : 11 ~ 16
제목 / 나를 던지라
사회학자 에릭 프롬은 현대인을 가리켜 ‘시장형 인간’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현대인을 꼬집은 말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만든 결과물입니다. 모든 가치의 척도를 돈에 두고 돈을 따라 움직입니다. 돈이 되는 일이면 움직이고, 돈이 되지 않으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시장형 인간에게 봉사나 헌신, 희생이라는 단어는 거리가 멉니다. 조금이라도 돈 냄새가 나야 움직입니다. 이해타산(利害打算)적입니다. 따져보고 이익이 돌아오지 않으면 손을 땝니다.
시장형 인간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 있습니다. 사명감입니다. 살아있는 혼입니다. 책임감입니다. 이들에게는 사명감이나 살아있는 혼이나 책임감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몸 사리기입니다.
위험이 따르는 일이나 부담을 짊어지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빠져나갈 길부터 찾습니다.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식입니다.
이런 시장형 인간형은 바람직한 인간형이 아닙니다. 이런 형의 사람에게는 기대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사회적 기여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어떤 일을 맡겨놓으면 노른자 빼먹기 바쁩니다. 회사가 어떻게 되든지, 조직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책임을 맡으면 조직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나를 살펴보면... 그에게서 두 가지의 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면은... 자신의 입장에서 요모조모 따져보고 이익을 따라 행동하는 모습이고, 다른 한 면은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지는 모습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 명령을 받았습니다.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때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니느웨와는 정 반대인 다시스로 도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서 북이스라엘을 계속해서 침략하여 괴롭혀 온 나라입니다. 적대국입니다. 원수의 나라입니다. 요나는 이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원했습니다. 이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것을 선포하면... 이들이 심판을 피하기 위해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의 생각으로는 니느웨가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이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아예 이런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니느웨가 아니라 다시스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여기서 요나의 한 면을 보게 됩니다. 이리저리 따져보고 자신의 입장에서 자기 좋을 대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모습입니다.
요나의 또 다른 면을 오늘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올라 항해를 하고 있을 때... 큰 풍랑을 만나 배가 파선 직전까지 갔습니다.
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큰 폭풍을 일으켜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공들이 두려워 자신들의 신을 찾고 배를 가볍게 하려고 물건을 바다에 던지고 배가 침몰하는 것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다 썼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한 것인지 알아보자고 하며 제비를 뽑아보자고 하였습니다. 제비뽑기를 하였을 때 요나가 제비에 뽑혔습니다. 요나는 이 풍랑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간 자신의 잘못으로 생겨난 일인지 알고... 단호하게 결정을 내립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요나는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합니다.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이니... 나를 바다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를 바다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요나의 한 면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결단의 모습입니다.
‘요나’라는 한 인물에서 두 가지 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리 저리 따져보고 자기 좋을 대로 행동하는 요나의 모습과...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요나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요나의 이중성으로 보면 안 됩니다. 이중성이라기보다는 달라진 모습입니다. 요나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요나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무엇일까요?
프랑스 신학자 ‘자끄 엘룰(Jacques Ellul)’이 저술한 ‘요나의 심판과 구원’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런 풍랑을 주신 분명한 목적은 ‘굽히지 않고 고집스러운 요나를 무너뜨리기 위함이다’고 하였습니다.
요나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은...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풍랑을 주신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인생을 바꾸어놓기 원하실 때... 풍랑이라고 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십니다. 삶의 위기라는 긴박한 상황에 몰리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고 변하지 않는 고집스런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키고자 하실 때 특단의 조치로서 삶의 위기로 몰아가시는 것입니다.
이 때 취해야 하는 태도는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자신을 던지는 것입니다. 자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고집을 꺾고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면 새로운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요나는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는 결정을 내렸을 때... 하나님은 요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습니다. 물에 빠진 요나에게 물고기를 보내 살리시고, 다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만약 요나가 책임을 회피하고 끝까지 배에 남아 있으려고 했다면... 배가 파선이 되어 모두가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자신을 던져야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을 던져야 거룩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불교계의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을 만나 국정수습에 관한 조언을 구하였을 때... 화엄경에 나와 있는 말을 인용하여 한 말이 있습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이는 자신을 버려야 큰 뜻을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새겨들을 만한 말입니다.
자신을 비우지 못하면... 큰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자신을 비우는 사람만이 큰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요나가 자신을 내려놓았을 때... 니느웨 백성들을 회개시키는 큰일을 해 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보좌를 내려놓으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기에... 구원의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하여 크게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어제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촛볼 집회가 있었고, 현 대통령에 대한 하야와 탄핵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연설문이나 국정에 대하여 지인과 의견을 나누며 도움을 받는 것이 무슨 큰 죄가 되느냐며... 하야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번 문제의 핵심은 국정질서의 파괴입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공식적인 국가기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공식적인 라인을 통하여 국정을 운영해 온 것에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불법입니다. 국가질서를 허문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권과 방송과 국민들이 일어나 문제를 질타하고 책임을 추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야나 탄핵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국무총리나 권한대행에게 넘기고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과연 국정을 이끌어갈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판단해야 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어갈 능력이 안 되어 최순실에게 거의 책임을 맡기다 시피 했다면... 이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안 되는 인물이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면... 이는 마치 비행조종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비행기 조종석에 앉힌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는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 모든 국민의 눈과 귀가 대통령에게 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때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과, 스스로 자리를 비우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대통령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정에 따라...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인지,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인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33대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Harry Truman)’은 그의 집무실 팻말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The buck spops here’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대통령은 최종 결정권자로서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입니다.
권리만 행사하려고 하고, 책임을 회피한다면... 최악의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번의 사태를 박근혜 대통령 개인의 문제라고 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정치계 전반에 깔려 있었던 문제가 최순길 게이트로 터져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서 자신을 비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자신을 내려놓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이것이 비단 정치인들만의 문제겠습니까?
우리 국민들 중에 과연 자신을 비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국민들 대부분이 시장형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전에 일본을 두고 ‘Economic animal’이라고 하였습니다. 돈만 아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일본을 비하해서 한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Economic animal’ 가 되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계산적입니다. 이해타산이 빠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몫을 챙기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국민 모두가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장형 인간’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이웃을 생각하고, 공동체를 생각하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책임을 짊어질 줄 아는 ‘책임형 인간’ 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죄악의 문제를... 나와 상관없는 문제로 넘어가지 않고, 이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책임을 감당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던지는 것은... 단순히 자신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던진다는 진정한 의미는... 이해타산적이지 않고 책임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제자가 가야 하는 길이 바로 이 길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빌2:17절을 보면 바울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해 기쁨으로 자신을 전제로 드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던지는 것입니다.
누가 교회의 부흥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누가 국가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까요?
교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자기를 비우고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몸을 드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헌신의 사람입니다.
목회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갈수록 교회의 일꾼이 줄어든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피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편하고 쉽게 신앙생활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곧 교회의 위기를 의미합니다.
편하게 살아가고자 생각하면... 마음이 나태해져서 보람된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무리하는 것은 피해야 하겠지만... 가능하면 시간을 잘 활용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시간의 나사가 풀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유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눈동자가 살아 있고, 시간을 알차게 잘 보낼 수 있습니다.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되고, 교회나 사회에 기여하는 보람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람된 일을 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높은 뜻을 위해 헌신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황금찬 시인이 쓴 ‘행복의 길’이라는 시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친구여,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땀 속에 몸을 담그라.”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을 위하여 자신을 드릴 때 자신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애 속에서 가장 위대했던 순간이 어느 때였는지 기억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보람되고 의미 있었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별다른 걱정 없이 편안히 놀고먹을 때였습니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기분을 내고 있을 때였습니까?
아닙니다. 선한 목적을 두고 최선을 다해 헌신하던 그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보람된 순간입니다.
나를 던지는 헌신 없이는 위대한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나를 던져 헌신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위대한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뜻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때 거룩한 사명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희망촌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과 위대한 꿈을 이루는 일에 헌신하는 보람된 인생이 되기 바랍니다. 느슨해진 나사를 다시 조우고, 부흥에 대한 열망을 품고, 헌신의 자리로 나아가 새 역사를 창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