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에베소서5:25-27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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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에베소서 5 : 25 ~ 27
제목 / 개혁의 열쇠
올해 종교개혁주일 499주년을 맞이합니다. 내년이면 종교개혁 50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16세기에 일어났던 종교개혁은 교회사에 있어 길이 남을 만한 역사이며, 종교개혁의 정신은 교회가 영원히 계승하고 이어가야 할 중요한 영적 유산입니다.
종교개혁운동은 중세 교회의 타락과 부패에 항거하여 순수한 교회의 본질을 되찾고자 한 숭고한 정신이 깃 들여져 있기에 그 정신을 깊이 되새기며 계승해야 합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세상 한 가운데 있는 교회는 늘 유혹에 노출되어 있고, 세속화되기 쉽기 때문에 개혁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중세교회와 같이 타락하고 부패하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보면... 세계 교회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규모면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중세교회를 방불케 할 만큼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안에 개혁되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그 만큼 지금까지 자정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국인으로서 세계 복음주의 신학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 있습니다. ‘정성욱 교수’입니다. 이 분은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신학 석사,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조식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의 덴버 신학대학 조직신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이 분이 한국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단하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종교개혁 500년이 지난 지금 또 다시 중세 가톨릭 교회가 범했던 오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교권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아우성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교회의 주도권을 쥐고 움직입니다.
이는 중세교회의 교황이 교권을 쥐고 있었던 것과 흡사합니다.
한국교회가 인본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개인의 성공과 행복이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자기의 욕망을 이루는 데 수단으로 삼으려 합니다.
이런 인본주의적인 신앙은 예수님의 뜻을 따라 정직하고 진실 되게 살아가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富)를 차지하고 높은 지위를 획득하여 교회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생각합니다.
말씀의 핵심인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되지 않습니다.
중세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구원의 능력임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한국교회 강단에서도 이 복음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성공, 축복, 만사형통... 이런 것이 메시지의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배와 교육과 선교와 구제와 봉사와 친교를 통해 세상을 섬기고, 세상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진리의 공동체임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여...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의식이 없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기보다 사람들에게 잘 보여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자 힘을 쏟습니다.
정성욱 교수는 이 외에도... 과열된 교파 및 교단 분열, 실종된 윤리적 책임 의식, 배금사상, 샤머니즘, 영웅주의를 지적하였습니다. 지금 일부한국교회의 상황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직전 중세교회의 상황과 상당히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하며... 중세 교회가 종교 개혁이라는 새로운 영적 각성 운동이 필요했던 것처럼 현재의 한국교회는 새로운 개혁 운동이 시급하다고 하였습니다.
한국교회의 개혁의 필요성은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진지하게 고민하고, 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교회를 개혁하려면 종교 개혁가들이 무엇을 어떻게 개혁을 하였는지를 연구하고 배워 개혁의 지침으로 삼아야 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종교개혁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였는지를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입니다.
중세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평신도들에게 가려져 있었습니다. 일반 성도들은 성경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라틴어로 된 ‘불가타’성경인데... 라틴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라틴어 교육을 받은 특정한 사람들 외에는 없었습니다. 또한 성경의 해석권은 교황과 사제들에게만 허용되었습니다. 일반성도는 직접 성경을 보지 못하고 예배 시간에 라틴어로 낭송하는 성경말씀을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성직자들이 해석하여 설교하는 것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황과 사제들이 성경 해석을 할 때 스콜라주의 신학에 입각해서 해석하였습니다. 스콜라 신학은 인간의 공로와 행위를 강조하는 인간 중심적인 신학입니다.
성경을 손에 가지고 있어도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는데... 그 당시 성도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로 읽는 것을 듣는 것이 고작이었고, 사제들의 잘못된 해석은 성도들을 영적 무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영적 무지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성경은 성도들의 손에 들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루터는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을 출판하였고, 칼빈은 프랑스어로 번역한 성경을 출판하여 내어 놓았습니다.
교회가 새롭게 개혁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개혁할 수 없습니다. 개혁의 방향을 잡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개혁에 있어 절대적입니다. 성경이 우리를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성경에 구원의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신앙과 생활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따를 때... 교회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성경이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이 성경을 손에 들고 읽어야 합니다.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먼저 성경의 전체적인 윤곽을 잡고, 다음에 성경의 말씀을 자세하게 읽어야 합니다. 성경의 전체 내용이 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말씀을 계속해서 접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개인생활과 교회 생활 과 전 삶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을 접어둔 채 교회에서 열심을 내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무법 질주하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오직 성경으로” 가능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주창했던 ‘오직 성경으로’가 왜 중요한지를 알아 말씀의 사람이 되도록 힘쓸 수 있기 바랍니다.
둘째,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입니다.
중세교회는 하나님 말씀보다 스콜라 신학에 기초를 두고 있었습니다. 선행과 공로가 쌓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주장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인간의 지혜로 생각하면 자신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구원과 심판이 결정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의 선행과 공로로 의롭게 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데 있습니다. 롬3:23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러한 한계를 알고 계셨기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룰 수 없는 구원을 예수님이 이루셨습니다.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율법을 완수하심으로 완전한 의인으로서 대속제물의 자격을 갖추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의롭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생명, 새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습니다.
참된 교회를 이루려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나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를 구성하면 교회는 부패하고 썩게 되어 있습니다. 중세교회가 타락한 결정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는 은혜의 복음이 분명하게 선포되어야 하고, 성도들은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구원의 은혜가 임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고, 이들이 모일 때 진정한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셋째, ‘만인 제사장’입니다.
중세 가톨릭이 교황 제도를 정식으로 확립한 때는 주후590년입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이후부터 교회 안에 성직제도가 자리를 잡았고, 성직자들은 교회 안에서 교권을 확대시켜 나가다가 590년에 들어와서 교황 제도를 세웠습니다. 교황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절대적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유럽의 왕들을 임명하고 폐위시키는 권한까지 가졌습니다.
교회에서 사제와 평신도는 구분되었고, 사제들만 제사장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사제들에 의해 예배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사제와 평신도의 구분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평신도들은 사제들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성경에서 사제들만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제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고 ‘만인 제사장’을 가르쳤습니다. 루터는 벧전2:5절과 9절 말씀을 근거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성도는 누구든지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습니다.
중세 교회는 교황 제도를 확립한 후 교황, 추기경, 주교, 신부와 같은 직제를 만들어 계급화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신분의 차등을 두었습니다. 성직자는 높은 계급에 있고, 평신도는 낮은 계급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런 계급화는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직분을 계급화하지 않았습니다.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직분을 주지만 이를 계급으로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역할의 차이입니다. 기능상의 구별입니다. 높고 낮음이 아닙니다.
어떤 교회를 보면... 교회의 직분을 계급화해 놓았습니다. 목사는 가장 높은 계급이고, 그 다음 장로, 안수집사, 권사 이렇게 서열화 시켜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섬김의 직분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직분에 맞게 자기 역할을 수행하며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넷째, ‘직업 소명론’ 입니다.
당시 사제는 거룩한 직분을 가진 자이며, 평신도는 속되거나 의롭지 못한 세상 직업을 가진 자들이라는 이원론적인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었습니다. 루터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기 위해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교회를 전임으로 섬기는 사제들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임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일반 성도들도 자신의 직업이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직분임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직업이 대장장이든, 구두 수선공이든, 푸줏간 주인이든, 농부든, 학생이든, 가정 주부든 상관없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거룩한 직분과 소명을 받은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의 개혁은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생업의 터전에서 거룩한 모습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개혁가들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빛 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으로 ‘정직성’과 ‘도덕적인 모범’을 강조했습니다.
많은 경우 그리스도인들이 직업 생활을 하나님의 소명을 실천하는 장으로 인식하기보다 생계유지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 결과 직장과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보다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요구하는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전혀 구별이 되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합니다. 이런 인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자리로 알고 거기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도가 사회에서 정직함과 도덕적인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 그 개인뿐 아니라 교회까지 지탄을 받습니다. 교회와 직장을 분리시켜 교회에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내고, 직장에서는 세속인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산 제사’로서의 삶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최소한 정직하다는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종교개혁가들은... 교회는 성도들의 영적 진보와 성숙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였고, 칼빈은 교회는 영적인 어머니와 같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영적인 어머니로서의 교회는 영적인 생명을 잉태하고, 그 생명이 건강하게 잘 자라나도록 영양분을 공급하며, 양육하고 돌보며, 교육하며 훈련시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을 보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같이 하라고 하며... 그리스도가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말씀합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는 교회를 깨끗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깨끗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교회를 깨끗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자정하기 위한 노력을 함에 있어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깨끗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럽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교회가 되기까지 개혁을 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보여준 개혁의 정신을 본받아 더욱 새로워지고 온전해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본 종교 개혁가들의 개혁 정신을 계승하여 날마다 새로워져서, 깨끗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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