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 이사야 58 : 1 ~ 14
* 제목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늘 주의하고 피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위선적인 신앙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하면 위선적인 신앙의 상징처럼 이야기됩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보다도 의롭게 살았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도 하였습니다. 이 정도면 신앙생활 정말 잘하는 것이 아닙니까? 대단한 사람들 아닙니까? 오늘날 대부분의 신자들은 바리새인들의 반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였습니다.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런 표현을 하신 것일까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그들의 실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누가 보아도 의롭다고 생각되지만 그들의 마음은 미움과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겉과 다르게 부패하고 썩은 그들의 마음을 보셨기에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위선적인 신앙은 누구나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아니 누구나 위선적인 신앙의 함정에 빠집니다. 여러분은 이런 문제 때문에 고민해 보신 적이 없습니까? 바깥에서는 천사같이 행동하면서도 가정에 들어오면 전혀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실망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반대로 가정에서는 자녀들 앞에서 천사처럼 행동하지만 세상에 나오면 악마의 모습으로 바뀌어 온갖 악을 행하지는 않습니까?
이 위선적인 신앙은 누구나 걸려드는 문제이지만 이를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위선적인 신앙은 우리가 반드시 극복하고 넘어야 할 신앙의 과제입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 58장은 위선적인 신앙을 버리고,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회복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목소리를 높여 백성들의 허물과 죄를 알리라고 명하십니다.
우리가 선지서들을 살펴보면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백성들의 죄악을 알려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가 백성들의 죄악을 알리고, 그 죄악이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알리어,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선지서를 읽으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죄악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많은 부담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서를 읽어야 합니다.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할 때... 생명의 길이 열립니다.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축복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선지서를 읽을 때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겸허하게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회개하고 돌아설 때 멸망하지 않고 살고, 축복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명령하신... 백성들에게 알려야 할 죄와 허물이 무엇일까요?
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습니까? 찾지 않습니까?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한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치 공의를 행하여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다” 고 합니다. 또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한다” 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서 문제가 발견됩니까?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공의를 행하며 규례를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금식을 하며 괴로워하는데 어찌 하나님은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알아주지 않습니까? 하며 일종의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하고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항의는 타당해 보입니다. 공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고,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구하며,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백성들이 금식하며 마음을 괴로워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데 하나님이 돌아보지 않고 알아주지 아니하는 것은 서운해 할 만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들을 돌아보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것일까요?
3절 하반절에서 5절을 보십시오.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째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이들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일꾼들에게는 온갖 일을 시켰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금식하는 날에 분쟁과 갈등을 멈추지 않고 심지어 폭력까지 휘두릅니다.
성전에 나와서는 금식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즐기고, 이기적인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일꾼들에게 힘든 노동을 시키고,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해 싸움도 불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내신 이후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그러고도 어찌 너희 목소리가 하늘에 상달되기를 바라느냐? 그런 금식을 내가 기뻐하겠느냐? 너희가 진정 마음으로 괴로워하느냐? 머리를 숙이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쓴다고 하여 그것이 진정한 금식이 되겠느냐? 그것이 하나님께 열납되리라 생각하느냐?”
이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중적인 신앙인의 모습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금식을 하고, 괴로운 마음을 토로하여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가장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하고 있는 것은 보지 않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한 것만을 내세우며 기도하고 호소해도... 금식을 하면서까지 부르짖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중요한 자리에 나갈 때... 많은 준비를 합니다. 이발과 목욕을 하고, 화장도 하고, 향수를 뿌리고, 가장 좋은 옷으로 차려입습니다. 그리고 최대한의 예(禮)를 차립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리낌이 없는 생활입니다. 잘못된 모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안 됩니다.
오늘 금요기도회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만 하나님 앞에서 거리끼는 것이 없습니까? 방치하지 마십시오. 덮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의 생활에서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입니다.
6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 말씀합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금식’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삶입니다. 6,7절을 보십시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6절을 보면...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관계에서 부당한 관계를 바로 잡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것... 사람이 사람을 학대하고 압제하는 것... 사람이 사람을 옭아매어 이용하는 것과 같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이런 일들은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중세에는 봉건제도와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계급제도가 있어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신분이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나라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지만 이 제도는 혜택을 누리는 자와 이용과 착취를 당하는 자로 구분되는 불공평한 사회제도였습니다. 이 신분은 바꿀 수 없고, 대대로 이어집니다. 법으로 묶어놓았습니다.
인간의 관계나 사회적 제도가 정당하려면 공평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수입이 적고, 어떤 사람은 일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많다고 한다면... 불공평합니다.
오늘 우리사회에서도 이런 불공평은 존재합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대우가 크게 차이 납니다.
노예제도가 정당합니까? 계급사회가 정당합니까?
부당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것이 법이었고, 여기에 대하여 불평하거나 반기를 들면 사회 질서를 혼란케 하는 자로 여겨 사형과 같은 큰 벌로 다스렸습니다. 부당한 자들이 정당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그런 사회였습니다.
잘못된 관계나 제도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부당한 관계는 개선하고 정당한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잘못된 관계를 바로 잡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고, 학대하고, 군림하고, 억압하는 것을 제거하고 모두가 정당한 관계에서 자유를 누리기 원하십니다.
7절을 보면...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주고,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고, 가족 친지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아니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들의 어려움을 도와주시고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은 가진 사람들,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약자들은 무시하지만 하나님은 약자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잘 곳이 없어 거리로 내몰리고, 입원비가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이런 일은 없어야 합니다. 모든 생명은 그 어느 것보다 존엄합니다. 죽음의 위기로 내몰리는 사람들을 구제하여 생명을 지키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8,9절을 보십시오. 6,7절에서 말씀하신 것을 행하는 자에게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빛을 발하는 자가 되고, 치유가 급속하게 되며, 공의가 앞에서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뒤에서 호위할 것이며, 하나님을 찾을 때에 응답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숨지 아니하고 자신을 드러내셔서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메마른 곳에 거하더라도 영혼이 만족하고, 뼈를 견고하게 하고(강건), 물 댄 동산 같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이 형통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너희가 황폐한 곳을 다시 세우고, 파괴된 기초를 쌓고, 무너진 데를 보수하고, 길을 수축하여... 사람들이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회복의 역사를 이룰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핵심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결박당한 자, 멍에를 맨 자, 압제를 받는 자를 풀어주고, 주린 자에게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고, 어려운 가족이나 친지들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다른 사람들 보기에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신앙이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이 됩니다.
오늘 주신 말씀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여...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고, 강건케 되고, 형통한 자가 되고, 이 사회를 다시 살리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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