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디모데후서 3 : 1 ~ 5
제목 / 말세의 징조 1
말세에 나타나는 징조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악할수록 사람들은 고통을 당합니다. 지옥과 같은 세상을 경험합니다. 이런 고통을 경험하면서도 사람들은 이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 이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나 혼자만의 살 길을 찾습니다. 세상이 악하다는 것을 핑계 삼아 똑같이 악을 이익의 수단으로 삼아 돈을 벌고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고통의 강도는 더 커지게 됩니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가운데 ‘태형’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 비좁은 감옥 안에 40명이나 되는 죄수들이 수감되어있습니다. 비좁고 악취가 가득하여 숨쉬기조차 힘든 열악한 상황 속에 죄수들이 큰 불편함을 겪고 있는데 이 때 한 노인이 태형을 언도 받고 비좁은 감방 안에 들어옵니다. 감방에 들어온 노인은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고, 판결이 잘못되어 형을 받게 되었다며 과정을 자초지정 이야기합니다. 노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판결이 분명 잘못되었습니다. 마땅히 상소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노인을 거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태형장으로 가면 매를 맞다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노인을 도와주려 하지 않고 방관만 합니다. 이들이 방관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지금 있는 감독이 너무 비좁으니 한 사람이라도 없어져서 조금이라도 공간을 넓게 확보하려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조금 뒤 태형을 치는 소리와 함께 노인의 비명소리가 감방 안에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고요한 적막이 흐릅니다. 노인이 숨을 거둔 것입니다.
김동인은 이 단편소설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태를 꼬집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떤 고통을 겪던 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런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실상을 고발한 것입니다.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 채 나만의 편함을 추구하면 과연 편안함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이웃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어 돌아옵니다.
본문을 보면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원인을 19가지로 열거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여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첫 번째가 자기를 사랑합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면 다른 사람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사랑은 자기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자기 사랑은 필요하지만 타인에 대한 사랑이 결여된 자기 사랑은 ‘자기 우상’ 에 빠져들게 됩니다.
오늘날 이 사회는 이웃을 ‘남’으로 생각합니다. 이웃을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일원으로 이해하기보다 경쟁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가 결국 이웃을 남으로 인식하게 만든 것입니다.
남이 되어버린 이웃은 더 이상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싸워 이겨야 할 경쟁의 대상이며, 짓밟고 올라서야 할 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선거 때마다 경험하는 것이지만 선거에 출마하는 분들이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 이런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런 사회를 만들어보겠다고 하는 정책을 제시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일꾼으로 뽑히는 선거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허나 실상은 이기는 데 목표를 두고 있기에 상대 후보를 비방하고, 상처를 내어 무너뜨리는 데 더 집중합니다.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고 싸우는 분위기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과연 이런 분위기에서 민족화합을 이룰 수 있을까요?
이웃에 대한 의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좋은 전통인 ‘두레와 품앗이’ 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 마을 단위로 협동조합과 같은 것이 많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웃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이 일원임을 스스로가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당연히 하나님이 제정하신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이웃을 경쟁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여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 진정한 화평을 이루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두 번째가 돈을 사랑합니다.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였고.(딤전6:10) 예수님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눅16:13)
돈을 사랑하는 순간 돈은 우상이 됩니다. 사람보다 돈이 우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이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생명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중한 병에 걸려도 치료를 받지 못합니다. 돈이 없으면 굶어죽어야 합니다.
돈이 우상이 되어있기에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돈은 생활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순간 하나님도 사람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부모님도 가족도 돈이 되지 않으면 외면합니다. 돈 때문에 부모를 버리고, 돈 때문에 가족을 버리고 돈 때문에 친구를 버립니다.
돈을 생활의 수단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돈을 사람보다 높이 두지 말고, 돈을 잘 관리하며 바르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가 자기 자랑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심리가 지나치게 작동하면 자기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를 인정받기 위하여 정도를 넘어서는 허세를 부립니다.
우리나라가 이런 허세가 심합니다. 집을 장만할 때 필요 이상의 넓은 집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차를 구입할 때도 실용성을 따지기보다 마치 자가용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처럼 생각하며 무리하게 비싼 차를 구입합니다.
요즘 여성들보면 명품가방 하나 이상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적게는 수 십 만원에서 비싸게는 수 천 만원에 이릅니다. 저의 눈에는 시장에서 산 것이나 명품가방이나 다 똑같아 보입니다.
이런 허세를 부리는 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거짓과 탐욕에 물든 인간에게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인생이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생명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영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바울은 갈6:14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처럼 영생을 허락하신 예수님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 안에 있을 때 각종 좋은 은사와 축복이 하늘로부터 임하여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네 번째가 교만입니다.
교만은 모든 것의 중심에 자신을 두고, 다른 사람을 자신의 아래에 두는 것입니다. 이런 교만은 죄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평등합니다.
우리가 높이고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우리 모두는 한 형제처럼 지내야 합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교만한 자를 꺾으십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가 젊은 나이에 광활한 중국대륙을 차지했습니다. 그의 군대를 당해낼 자가 없었고, 중국을 손아귀에 집어넣은 진시황제는 절대 권력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때부터 그는 큰 착각에 빠집니다.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시황제는 자신이 영원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영원한 제국을 건설하려 합니다. 그 때 시작한 일이 만리장성을 쌓는 일입니다. 그리고 영원이 죽지 않기 위해 불로초라는 약초를 복용하다가 결국 약물중독에 의해 49세의 젊은 나이에 죽습니다.
사람은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교만한 생각을 품는 순간,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은 교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는 본체 하나님과 동등하지만 자기를 비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하나님만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입니다. 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 하나님과 서로를 잘 섬길 수 있기 바랍니다.
다섯 번째가 비방입니다.
비방은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의도로 중상모략하고 비난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입니다.
비방의 말은 죽이는 말입니다. 거짓, 폭언, 조롱... 다 죽이는 말입니다. 파괴하고 죽이고 무너뜨리는 것은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말은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입니다. 인정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하는 말로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서로 살리는 말을 할 때 우리 모두가 살아나지만 서로 죽이는 말을 하면 우리 모두가 죽습니다.
비방을 멈추고 서로 살리는 말을 하여 우리 교회를 생명을 살리는 교회로 만들어갈 수 있기 바랍니다.
여섯 번째가 부모 거역입니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계명이며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질서입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를 거역하고, 부모를 외면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희생하신 부모를 외면하는 사람에게서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를 거역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라도 거역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는 부모자녀의 관계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고,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입니다.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는 것을 기대하기보다 부모를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삼고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섬김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일곱 번째가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생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내가 이렇게 생존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분들이 누구인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분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헤아려 보기 바랍니다.
순교의 피를 흘리며 우리 조국에 복음을 전하여 준 선교사님들, 조국을 지키기 위해 충성을 다한 선조들,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를 위하여 새벽마다 기도하며 헌신하신 믿음의 선배들, 일할 기회를 준 직장, 부모님, 남편과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기 바랍니다.
감사의 마음이 있을 때 믿음을 쌓고, 사랑을 쌓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 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여덟 번째, 거룩하지 않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이 세대는 거룩함, 정결, 정직, 의를 무의미하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런 것을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위선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거리낌 없이 죄를 범하고, 어둠의 일을 즐깁니다.
그러나 거룩함과 의를 잃어버리면 영혼은 죄악으로 인해 병들고, 이를 방치하면 그 영혼은 죽습니다.
영혼이 죽으면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파멸시키면서 속으로 웃고, 깨끗한 것과 추한 것을 구분하지 않고 육신의 정욕과 세상의 욕망을 추구합니다.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짐승처럼 냄새나는 삶을 살다가 허망하게 인생을 끝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병들지 않고, 죽지 않도록 영적인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거룩함, 정결, 정직, 의는 우리의 영혼을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영적 건강을 잘 지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온전한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말세에 나타나는 8가지 징조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징조들을 보면 지금이 말세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별됨입니다.
세속에 속한 사람들의 모습을 따르면 안 됩니다. 이들은 멸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거룩한 백성으로 세속에 물들지 않고,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찰스 스윈돌 목사는‘교회의 각성’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내 트럭에 장착된 네비게이션을 사랑한다. 가고자 하는 곳의 주소만 입력하면 알아서 안내해 주는데다 빠른 길도 알아서 찾아 준다. 때로 잘못된 길로 가더라도 네비게이션은 절대 화를 내는 법이 없이 내가 길을 잘못 들어도 친절하게 ‘재탐색’ 해서 명확하게 경로를 제시해 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인 네비게이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때 잘못된 길을 가던 것을 멈추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바른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재탐색의 기회로 삼아 어두운 세상에서 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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