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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강해 9 (딤후2:20~26)
백종선 2014-05-29 추천 0 댓글 0 조회 131
 

성경 / 디모데후서 2 : 20 ~ 26

제목 / 하나님이 귀히 쓰는 그릇

 

지난 시간에는 충성된 일꾼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세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말다툼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다툼은 유익이 하나도 없고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느냐 하면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하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딤전6:3,4)

둘째,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할 줄 알고,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못하여 비진리를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도구가 아니라 이단의 도구, 사단의 도구가 되어 교회를 어지럽히고 혼란에 빠뜨립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되려면 자신의 직분과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일꾼이 되어야 하고, 거짓과 불의가 없는 정직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려야 합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은 악성 종양과 같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은 메스를 대어 잘라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를 건강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일꾼들은 어떤 사람인지를 말씀합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을 준비함이 되리라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 종류의 그릇들이 있을 것입니다.

큰 그릇, 작은 그릇,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 다양한 종류의 그릇들이 있습니다. 그릇의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접시 하나에 몇 백만 원짜리가 있는가 하면 몇 백 원짜리 까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릇을 구입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도들을 그릇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성도를 그릇에 비유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성도를 그릇과 같이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내 인생의 가치는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이냐에 달려있습니다. 쓸모가 많은 사람은 가치가 높습니다. 그러나 쓸모가 적은 사람은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가치를 높이려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이 처음부터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다보면 자신의 능력이 개발되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쓸모 있는 사람으로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고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꾸준히 성실하게 일할 때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쓰임 받는 사람이 되고자 할 때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고자 할 때 파하지 말고, 이사야와 같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써 주소서!”라고 응답하며 나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교인을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일꾼과 구경꾼입니다.

일꾼은 교회가 필요로 할 때마다 발 벗고 나서서 일합니다. 교회에서 쓰임 받는 것을 기뻐하고 교회가 원할 때 기꺼이 자원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반면 구경꾼은 한 발 떨어져서 뒷짐 지고 구경만 합니다. 말로만 잘하니 못하니 평가하고, 교회를 위해서 기여하기보다 교회가 나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민감합니다.

 

교회에 어떤 사람들이 모일 때 교회가 부흥할까요?

일꾼들입니다. 충성된 일꾼들이 모인 교회일수록 교회는 활기가 넘치고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이 되어 교회 부흥의 주역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러 종류의 그릇들이 나옵니다.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질그릇이 나옵니다. 여러 종류의 그릇을 두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용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간장 담는 종지에 밥을 담을 수 없습니다. 반찬을 놓을 쟁반에 국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릇마다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그릇을 둡니다. 어떤 그릇이라도 없으면 아쉽습니다.

 

교회에도 여러 일꾼들이 있습니다.

목사, 전도사, 장로, 집사, 권사가 있습니다. 교사, 구역장, 성가대원, 찬양대원, 차량봉사, 주방봉사, 미화봉사 등 다양하게 교회를 섬깁니다. 교회에 이런 다양한 직분과 직책을 둔 것은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은 귀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별로 귀하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고전 12장을 보면 여러 종류의 은사를 말하면서 이 모든 일은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직분은 성령께서 맡기신 거룩한 직분입니다. 어느 직분도 필요 없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눈이 손더러 쓸 데가 없다고 하거나 머리가 발더러 쓸 데 없다 하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몸의 지체 중에 필요 없는 것이 하나도 없듯 교회의 직분 중에서 필요치 않는 직분은 없습니다. 모든 직분은 하나님께서 필요하셔서 세운 거룩한 직분입니다.

 

오늘 본문에 여러 가지 그릇들이 나오는 데 그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여 가지라고 한다면 어떤 그릇을 가지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이 금 그릇을 택할 것입니다. 다른 그릇들보다 값이 많이 나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더 귀하게 보는 직업들이 있습니다.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과 같이 수입이 좋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전문 직종을 가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녀들을 이런 인물로 키우기 위해 교육에 투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직분을 맡았느냐? 어떤 직책을 맡았느냐를 가지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깨끗함과 거룩함입니다.

본문 21절을 보면누구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헌금을 많이 하는 분이 귀한 그릇으로 보입니다. 어느 정도 학력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있고, 교회의 중요한 일을 척척 해낼 수 있는 그런 능력 있는 분이 귀한 그릇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준은 얼마나 깨끗한가? 얼마나 거룩한가? 입니다.

 

왜 하나님이 깨끗함과 거룩함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죄악으로 인해 더러워지고 추해진 세상을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삼십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전도하기가 어렵습니다. 교회 성장이 중단되고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교회의 규모는 커졌습니다. 교회의 예산도 많아졌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명망 있고, 지명도가 높은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선교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일까요?

 

이전보다 교회가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말씀으로 바로 서기 보다는 점점 세속화되었습니다. 교회가 권력화 되고 기득권화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교회하면 착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 선한 일을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요즘에는 교회하면 큰 건물, 부와 권력을 지닌 기득권층, 독선주의와 같은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는 선교하기 어렵습니다. 교회가 회복해야 할 이미지는 깨끗함입니다. 거룩함입니다. 교회가 거룩하고 깨끗할 때 사람들이 교회에 소망을 두고 찾아옵니다.

 

교회가 지켜야 할 소중한 자산은 부동산이나 기득권이 아니라 거룩함과 성결함입니다. 그럴 때 교회가 교회로서의 제 역할을 바르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죄를 정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의와 사랑과 자유와 평화를 회복한 온전한 세계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거룩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하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을 상실하게 됩니다. 목적을 상실한 교회는 침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많은 일을 하려고하기보다 먼저 우리가 깨끗하고 거룩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하면 일을 할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뿐입니다.

 

본문을 보면 우리가 깨끗하고 거룩할 때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깨끗하지 않고 거룩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한 일을 하겠다고 나서면 과연 선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위선적으로 흉내는 낼 수 있을지 모르나 선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자신의 본모습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자주 강조합니다만 교회의 능력은 거룩함에서 나옵니다. 거룩할 때 의를 이룰 수 있고, 거룩할 때 선한 일을 할 수 있고, 거룩할 때 세상을 바르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거룩하고 깨끗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 22절을 보십시오.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무엇을 피하라고 합니까?

청년의 정욕입니다. 혈기가 왕성한 청년의 때에 인간의 욕망은 최고조로 달합니다. 세상의 영광, 물질의 욕망,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가장 강하게 나타날 때입니다. 이런 욕망은 강도가 차이 날뿐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고 깨끗하기 위해서는 이런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피하라는 말은 도망가라 벗어나라는 말입니다.

정욕을 좇아 사는 사람을 피해야 합니다.

정욕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들로부터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내 마음에 욕망이 다시 일어나 그 욕망을 채우고 싶어집니다. 그러므로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욕망을 자극하는 환경을 멀리해야 합니다. 욕망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화려한 것을 보면 마음이 빼앗깁니다. 그러므로 이런 환경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까이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입니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있으면 욕망의 마음이 사라지고 거룩한 모습을 닮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면 우리 안에 거룩한 능력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을 가까이 할 것인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나 막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까이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살펴보십시오.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주의 이름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사람인지 살펴보십시오.

먼저 여러분 자신이 주의 이름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가 되기를 힘쓰고, 더불어 주의 이름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를 가까이 하여 깨끗하고 거룩한 삶에 이를 수 있기 바랍니다.

 

23~26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거역하는 자들 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아는 줄 앎이라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변론을 버리라고 합니다. 변론은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를 잘잘못을 따지는 것을 말합니다. 희비를 가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는 좋지 않습니다. 희비를 가리는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나고 누가 옳다고 인정되던 마음이 상하고 관계는 나빠질 뿐입니다.

 

주의 종은 거역하는 자라할지라도 온유하며, 잘 가르치며,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참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양은 품어야 할 대상이지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싸워서 이길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습니다. 주의 종이 해야 할 일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서 깨우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25절을 보면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하라고 합니다.

부드럽게 훈계하여 깨우치라는 말입니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사랑의 훈계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훈계를 통하여 자신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훈계는 깨우치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권위를 내세워 꼼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주의 종을 거역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일로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을 거역하는 입장에 서면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말씀에 대한 부정적인 심리가 자리 잡습니다. 그러면 말씀이 거슬리고 의심을 품게 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말씀을 부인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탄이 틈타기 쉽습니다. 하와에게 했던 것처럼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부정하도록 만들어 결국 넘어뜨립니다.

 

주의 종도 인간인지라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종을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영혼이 삽니다. 말씀이 차단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주의 종이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그래야 주의 종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의 종이 노력하는 일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세워 선한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 일에 마음이 하나 되어 동참할 때 하나님의 선한 일꾼으로 쓰임 받는 하나님의 귀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어 거룩하고 깨끗한 하나님의 귀한 그릇으로 준비될 수 있도록 힘쓸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하나님의 손에 더욱 귀하고 아름답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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