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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강해 6 (딤후2:5~9)
백종선 2014-05-08 추천 0 댓글 0 조회 118
 

성경 / 디모데후서 2 : 5 ~ 9

제목 / 충성된 일꾼

 

지난 시간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충성된 사람들을 가르쳐 그들이 또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라고 요청했습니다. 교회의 역사가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를 이끌고 갈 일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사명을 이어나갈 일을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하며, 그 충성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3가지 모델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 좋은 병사입니다. (3~4)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어떤 병사가 좋은 병사입니까?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 병사입니다. 병사로 소집이 되었으면 그 이후부터는 군대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군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생활을 우선시한다면 병사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좋은 병사는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훈련되지 못한 병사는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영적 군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나를 부르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훈련, 순종과 섬김의 훈련, 묵상훈련 등을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손에 유용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영적인 좋은 병사가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운동선수입니다.

5절입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좋은 운동선수가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요건이 있습니다.

순발력, 지구력, 근력, 집중력, 유연성 등이 있습니다만 오늘 본문에서는 법대로 경기해야 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경기에서 실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시합을 하다가 규칙을 어겼을 때 적용되는 벌칙입니다.

쇼트랙 경기를 보면 실격 처리가 적용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앞서서 결승선을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경기하는 과정에서 파울을 범하면 등수에서 제외됩니다. 지난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여자선수들이 쇼트랙 3000미터 계주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우리나라의 뒤를 이어 2등으로 들어온 나라가 중국이었는데, 중국은 은메달을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경기 도중 이탈리아 선수에게 파울을 범하여 실격처리 된 것입니다.

 

쇼트트랙이 아닌 다른 모든 경기에 파울 규칙이 있습니다. 이렇게 파울 규칙을 두는 이유는 정정당당하게 공정한 시합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스포츠 정신 중에 중요한 것이 정정당당하게 경기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입니다. 페어플레이 정신을 어기면 경기를 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운동경기를 하는 근본적인 목적이 스포츠 교류를 통한 화합과 체력증진에 있습니다.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이기려고 하면 결국 스포츠의 근본 목적인 친선과 화합의 의미는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 역시 정직과 의를 겸비한 인물이어야 합니다. 불법을 행하고 거짓을 일삼는 사람은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의 자격으로 부적합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원하시는 나라가 하나님의 선한 통치가 이루어진 의의 나라입니다. 불법과 착취, 부조리와 부패가 사라진 공의로운 세상,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평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셔서 의인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은 의롭고 정직한 사람이어야 하며, 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의로운 일인가? 내가 지금 하는 방법이 의로운 방법인가? 의에서 벗어난 일은 아무리 큰일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허사로 돌아갑니다. 1등으로 결승전을 들어온 선수가 파울을 하여 실격처리된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은 방법과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이 방법과 과정을 무시한 채 최대한의 수익만 올리려 하다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이와 같이 방법과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현상이 만연해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잘못된 관행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과정이 좋아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정직하고 바른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방법입니다.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의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수고하는 농부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말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초점은 수고하는 농부입니다.

수고하지 않고, 땀 흘리지 않는 농부가 풍성한 결실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단순한 진리가 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수고한 대로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을 할 때 가져야 할 생각이 있습니다.

대가를 바라기 보다는 일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일 그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대가를 목적으로 하면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식이 되어버려 일이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일 자체에 의미를 두고 그 일을 통하여 좋은 뜻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은 의욕이 넘칩니다. 열정이 살아납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야든 적어도 10년 이상은 열정을 품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일정한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적당히 쉽게 하려고 해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일정한 경지에 오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나에게 이런 거룩하고 영광스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맡겨 주신 것을 감사히 알고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려고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일 해도 대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나를 알아주지도 않는다고 손을 놓으면 구경꾼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대가나 인정을 받는 것에 개의치 않고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기뻐하시며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소유를 목적으로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목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소유를 목적으로 하면 사랑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반대로 사랑을 목적으로 하면 소유가 힘들어 집니다.

 

사랑은 나누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자기의 것을 베풉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자기의 것을 풀어 나눕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밥을 사고 커피도 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에는 선물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랑을 하다보면 지갑은 얇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소유하려면 나눌 수 없습니다. 써야 할 것을 쓰지 않아야 모을 수 있습니다. 필요한 대로 쓰면 모을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도, 아내에게도, 남편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이웃들에게도 나누지 못합니다. 최소한 생존에 필요한 것만 쓰고 나머지는 꽁꽁 모아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소유가 불어납니다. 그러나 사랑을 나눌 수는 없습니다.

 

사랑을 목적으로 사는 인생과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인생 중 어느 편이 더 나을까요?

아무리 많은 소유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히 내 것이 되지 못합니다. 죽는 순간 그 소유는 내 손에서 벗어납니다.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갑니다. 집 안에 금 궤짝을 만개를 두어도 내 것이 되지 못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두어도 내 것이 되지 못합니다. 이전에 왕들은 죽을 때 무덤 속에 장신구와 보물들을 함께 묻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무엇을 하고, 무엇을 남겼는가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 많은 재산을 남긴 것이 귀한 일이었다고 생각될까요?

내가 어떤 지위를 가진 것이 귀한 일이었다고 생각될까요?

이 때 귀하게 생각되는 것은 사랑한 일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사랑한 사람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한 사람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쓸쓸하게 떠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평생 사는 동안 헛된 욕심 다 내려놓고 사랑할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여러분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본문 7절을 보십시오.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바울은 앞에서 말한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러면 주께서 범사에 총명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충성된 일꾼의 세 가지 모습, 즉 좋은 병사, 규칙을 어기지 않는 운동선수, 수고하는 농부의 모습을 생각하면 총명하여 져서 충성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럭저럭 흐지부지 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엄청난 재능과 가능성을 주셨는데 소보다 못한 인생을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빛나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으로 거룩한 사명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별과 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인생을 가꾸어 가시길 바랍니다.

 

8절을 주목하십시오.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바울이 무엇을 기억하라고 합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어버리거나 흐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이 분명한 사람은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다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만남이 너무 영광스러워서 만삭되지 못한 나에게도 보여주셨다는 표현을 하며 그 감격스러웠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을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로 알고 이들을 색출하고 뿌리 뽑기 위해 앞장섰습니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허구를 기독교인들이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고 나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람들의 상상이나 관념 속에서 이야기되는 부활이 아니라,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실존하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때서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정신수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를 닦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살아나신 생명의 주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시고 구원하시는 능력이 되시는 구원의 주를 믿는 것입니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혼이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이 복음은 믿어야만 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한 이후에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열심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자신의 일생을 바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9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바울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죄인과 같이 매이게 되었으나 여기에 굴하지 않고 복음을 사수하였습니다.

 

9절 하반절을 보면 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자신은 비록 지금 로마 옥중에 매여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리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살아 있는 한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둘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아계셔서 친히 구원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기독교를 탄압하고 복음 전파를 훼방하는 세력은 모든 시대에 있었지만 이들이 복음을 막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가한 벌이 가벼워서가 아닙니다. 복음을 훼방하고 탄압하는 세력들이 시퍼런 칼날을 들고 이를 막았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둘 수 없고, 제거할 수 없기에 주의 복음은 더 넓게 확장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잊지 말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능력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있는 한 복음의 역사는 계속 이어질 것이며, 마지막에는 그리스도께서 죄악의 권세를 완전히 정복하시고 승리하실 그 날이 올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끝까지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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