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디모데후서 2 : 1 ~ 4
제목 / 충성된 일꾼을 세우라
하나님은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사람을 택하여 부르시고, 그를 가르치시고 훈련시켜, 준비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펼쳐나가십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사람을 세우는 일입니다.
교회가 우리 세대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로 계속해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 세대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여 많은 열매를 거둔다 하더라도 우리 세대로 끝나버린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를 이어나갈 사람을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 세대를 이끌어나갈 충성된 사람들을 세워 복음의 사명을 계속 이어가라고 명령하며 충성된 하나님의 일꾼은 어떤 사람인지 말씀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가운데서 강하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른 사람을 세우기에 앞서 네가 먼저 강하고 충성된 일꾼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충성된 일꾼을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을 세우는 자신이 강하고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키울 때 자기 이상의 사람을 키울 수 없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없고,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도록 할 수 없습니다.
훈련소에 가면 훈련을 시키는 교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범을 보이는 조교들이 있습니다. 훈련병들에게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칠 때 교관을 조교를 시켜 시범을 보입니다. 조교들이 시범을 보이는 모습을 보면 정말 절도 있고 완벽하게 합니다. 이들이 이런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 완벽한 자세가 나올 때까지 정말 많은 연습을 반복합니다. 그래야 훈련병들을 바로 교육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충성된 일꾼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르치는 자가 먼저 모범이 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바르게 가르칠 수 없습니다.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된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강해져야 합니다. 여기서 강해져야 한다는 말은 힘이 세어야 한다거나 고집이 강해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내 주장을 강하게 펼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강해져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가 형성되어 있을 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의 지시에 충성할 수 있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시련과 역경이 닥친다 하더라도 이를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인내력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 때 이를 이기지 못하고 물러서면 복음의 사역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강한 사랑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힘이 없이는 하나님의 일을 바르게 수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은 사랑이 동기이기 때문에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가져야 하는 강력은 의와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이 의와 거룩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꾼이 의와 거룩함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이런 강한 능력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1절을 다시 보십시오. 어떻게 강하게 된다고 말씀합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 있을 때 강해질 수 있습니다.
지난 전도대 교육 시간에 노아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며, 완전한 자였고,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창7:9)
그 당시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했을까요?
성경을 보면 그 해답이 나옵니다. 바로 앞의 구절을 보면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갖추어야 하는 강함은 내 자신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내 정신력을 강화한다고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의지력을 강화한다고 하여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갖추어야 할 강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바울은 고후 12장에서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하여진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임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을 때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3분만 산소공급이 중단되면 뇌사상태에 빠집니다. 몸의 체온이 1~2도만 내려가도 의식을 잃습니다. 사람의 체력도 한계가 있고, 정신력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강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때 강해질 수 있습니다.
삼손의 강한 힘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견고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분은 누구이십니까?
진정한 강함이 하나님께 있따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강함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약1:17절을 보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 온다”고 했습니다.
강한 능력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강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충성된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절입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라고 명한 바울은 이어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디도데에게 무엇을 부탁하라고 합니까?
“내게 들은 바”- 바울에게 들은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서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디모데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바울에게 들은 바’ 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바’ 를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을 세우라는 뜻이 있습니다.
매실나무를 심는 사람이 매실을 심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매실 열매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또 하나가 더 있습니다. 이 나무가 자라면 나무 가지를 잘라 접붙임하여 또 다른 매실 나무를 심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더 많은 매실 열매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사역도 이와 같은 원리로 해야 합니다. 서두에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 세대에서만 열심히 일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복음의 사역이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복음의 순수성을 잘 보존하여 전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게 들은 바’ 를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하였습니다.
택배 기사들이 배달할 때 받은 물건을 그대로 전달합니다. 중간에 물건이 바뀌거나, 빠지거나, 다른 것이 첨가되면 안 됩니다. 받은 그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복음의 일꾼을 세울 때 그들에게 전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은 사도들로부터 받은 순수한 복음입니다. 이것이 변질되거나 누락되거나 첨가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은 유의해서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왜 이단이 생겨나는 것입니까? 순수한 복음을 전승받지 못하고 중간에 변질된 내용이 전달되고 전달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험성은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수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교사가 되고 가르치는 자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목사를 세울 때 아무나 세우지 않습니다.
교회의 추천을 받은 사람이 노회고시를 봐서 신학교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얻고, 신학교 입학시험을 거쳐 신학교에 들어가면 3년의 교육을 거칩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 2년간 전임사역을 한 후에 또 다시 교회와 노회의 추천을 받아 목사고시를 보고, 여기에 통과해야 목사로 임직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기회가 되면 신학교에서 배우는 과정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과목을 배우는지 그리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보십시오. 배우는 내용이나 학습의 양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금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까다로운 절차를 밟고 힘들게 공부하는 이유는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경공부를 하거나 신앙교육을 받을 때 아무나에게 받아서는 안 됩니다. 정규과정을 거쳐 공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에게 받아야 합니다.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잘못된 내용을 접하여 잘못된 신앙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 함부로 선생이 되어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가르치면 변질된 이상한 복음을 가르쳐, 변질된 신앙인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교역자의 지도와 통제에서 벗어나 임의대로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거나 신앙지도를 하는 것은 금해야 합니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법입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신앙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않는 사람은 분별력이 없습니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바른지 그른지 모르고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나에게 가서 말씀을 배우면 안 됩니다.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배우고자 할 때 반드시 담임목사의 허락을 받으십시오. 잘못 배우면 영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질 수 있습니다.
순수 복음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진리의 복음을 바로 아는 사람은 거짓 복음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복음을 바로 알지 못하면 거짓 복음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복음을 바로 알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3~6절까지는 어떤 사람이 충성된 하나님의 일꾼인지, 그리고 충성된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3가지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제시된 모델을 살펴보고, 다음 시간에 두 번째, 세 번째 제시된 모델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고 하였습니다.
충성된 일꾼의 모델로 ‘좋은 군사’ 를 예로 듭니다.
좋은 군사는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합니다. 위험이나 난관이 있어도 도망치거나 회피하지 않고 용감히 싸워 임무를 완수합니다.
좋은 군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집니다. 체력 훈련, 정신 훈련, 기능 훈련 등을 통해 유능한 군사로 만들어집니다. 훈련하지 않고서는 좋은 군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훈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시험을 이기고 고난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연단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말씀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경건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묵상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제자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훈련을 피하지 말고 자원하여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오래했다고 해서 좋은 일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직을 맡았다고 해서 좋은 일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을 통해 좋은 일꾼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군사는 지휘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군사가 되는 순간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고 싶어도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하고, 하고 싶지 않아도 하라고 하면 해야 합니다.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것이 군인입니다.
군인이 되면 사생활은 사실상 사라지는 겁니다. 집안에 누가 생일이라고 해서 자리를 비우고 참여할 수 없습니다. 집안에 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해서 집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탈영을 하면 큰 벌을 받습니다. 모든 생활에 지휘관의 지시와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닙니다. 군대에 고용된 종입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려면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에게 종속된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군인이 국가의 부름을 받았으면 국가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국가가 요구하는 것을 이행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시지만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내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직접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일꾼은 누구를 기쁘게 해야 하는가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나를 일꾼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사사로운 자기 욕망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자기 생활에 얽메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고, 더 굳건하고 완전한 나라가 되어 이 안에 거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평화를 누리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좋은 일꾼은 좋은 군사와 같은 일꾼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 하나님이 바라시는 충성된 일꾼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굳건하게 지키며 평화롭고 행복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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