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디모데후서 1 : 9 ~ 14
제목 / 거룩한 부르심
교회에 대한 탄압이 점점 더 거세지는 분위기에서 바울의 투옥 소식은 디모데의 마음을 복잡하게 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위축되고 불안정하였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디모데의 이런 심리를 잘 알고 있는 바울은 디모데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6절 이하에서 권면합니다.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불일듯 하기 원하여 권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를 증언하다가 옥에 갇힌 나로 인해 부끄러워하지 말고 너도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라.”
이것이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6~8절의 내용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오늘 본문에서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이 어떤 것인지를 강조하며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할 것을 당부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바울은 이 본문에서 두 가지의 부르심을 언급합니다.
하나는 구원의 부르심이고, 하나는 거룩한 소명의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이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 되어졌다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시작은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계획하시고, 그 계획하신 바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시고, 그 구원의 자리에 저와 여러분을 택하여 불러주셨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의 백성으로 불러주신 것에 대하여 어떤 느낌을 갖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구원의 은혜를 받고서도 무감각한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너무 쉽게 받다보니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마저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고생하고, 내가 피나는 노력을 하여 얻은 구원이라면 아마 소중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이룬 구원인데 하며 이를 무엇보다 귀중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한 일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다보니 이 구원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구원의 감격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으려면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은혜가 사라졌을 때 어떻게 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할 때는 건강의 중요함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건강을 잃으면 그때서야 건강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부모가 곁에 있을 때는 부모의 중요성을 잘 모르지만 부모가 곁을 떠나고 나면 부모가 얼마나 소중한 분인가를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죄로 인해 멸망의 늪으로 빨려 들어갔을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도 의미도 깨닫지 못하고 방향 없이 우왕좌왕하다가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다가 힘들게 눈을 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비참한 운명에 놓여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위대하시고 높으신 하나님께서 진토와도 같은 저와 여러분을 기억하시고 택하시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는 결코 소홀히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느 것 하도고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소중히 여기며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기 바란다.
10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구원의 은혜가 어떻게 주어졌는지를 말씀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구원의 은혜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아들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흠이 없고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대속 제물로 피 흘리시며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구원의 은총을 입게 된 것입니다.
10절중반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이 무엇인지 말씀합니다.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렸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그에게“이 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간에게 사망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죽음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육신의 죽음이고, 또 하나는 영의 죽음입니다. 사람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영적인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영적인 생명을 잃어버린 인간은 육의 사람이 되어 육신의 본능과 욕망대로 살아갔습니다.
범죄한 인간의 역사를 한 마디로 말하면 타락의 역사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범죄한 인간은 그 후로 온갖 죄를 범하며 타락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음을 한탄할 정도로 온갖 죄를 일삼았습니다.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타락한 인간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성취하심으로 우리 인간을 사망에서 건져내시고, 잃어버린 영적인 생명을 다시 찾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의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은 부활의 새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이 생명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영생의 삶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썩지 아니하고,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이 새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이 주신 새 생명으로 영생의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가 구원으로의 부르심이고, 또 하나는 거룩한 소명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지금까지 구원의 부르심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고, 이어서 거룩한 소명으로의 부르심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거룩한 소명으로의 부르심’이 무엇일까요?
거룩한 부르심이란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사명으로의 부르심을 말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바울은 자신이 구원의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움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또한 복음 전파의 사명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내가 믿고 구원받았다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먼저 깨달은 사람이 아직 구원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파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구원의 복음을 모르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알아야 믿을 수 있고, 전하는 자가 있어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먼저 믿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지 못하면 그들은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믿지 못하여 결국 멸망 받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이 우리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바울은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고난을 받아 감옥에 갇혀 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돌에 맞아 죽을 위험에도 처하였지만 여기에 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였습니다. 바울은 맡은 복음의 사명이 얼마나 중차대한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사명을 고난을 당한다고 중단할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달려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울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 분이 마지막 재림의 날까지 의탁한 것을 지키실 줄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의탁하였다’는 것이 무엇을 의탁하였는지는 본문에 나와 있지 않아 명확하지는 않으나 바울이 꿈꾸던 것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바울이 하나님께 의탁한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바울은 “내가 믿는 자(예수)를 내가 안다”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친히 오셔서 십자가까지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고 주님께서 부탁하시며 내가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의 희생까지 감당하시고,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명령하신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 예수님께서 이 복음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바울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갈 길을 달려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확신을 이야기한 후에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너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내게 들은 말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너에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도 나와 같이 이런 확신을 가지고 성령께서 부탁하신 아름다운 것, 즉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보면 복음 전파자가 갖추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먼저 복음 전파자로서 합당하게 자신을 바르게 세우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의 거울이 되지 못하고, 복음을 부끄럽게 하는 모습으로 산다면 복음을 전파해도 효력이 없습니다.
복음은 입술로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신의 행실을 바르게 가다듬어 믿는 사람으로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이웃 사람들과 자주 다투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며, 본이 되지 못하면 오히려 복음을 전하면서 비난을 살 수 있습니다.
“너가 믿은 예수라면 나는 믿지 않겠다.” 이런 말은 듣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되기 전에 내가 먼저 복음에 합당한 자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본받아 지켜야 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고 하였습니다.
복음 전파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를 때 가능합니다.
사도행전의 별칭들이 있습니다. 전도행전, 성령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이 예수님이 분부하신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전도행전이라고 하고, 복음전파의 역사를 성령이 주도하고 있기에 성령행전이라고도 합니다.
사도행전의 주제 성구는 1:8절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제자들이 함께 모여 전심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바람 같고, 불같은 성령이 그들에게 강하게 임하여 그들이 권능을 받아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세계 선교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 전파는 성령의 주도하에 되어져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의 지시하는 대로 따를 때 복음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복음 전파의 사명은 교회가 감당해야하는 가장 중차대한 사명입니다. 교회가 하는 모든 프로그램이나 행사의 초점은 전도에 두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할 수 있을까?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구역 모임 때에도, 선교회 모임 때에도 가장 우선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사역이 전도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참 이웃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참 이웃이었습니까? 강도를 만나 거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 입니까? 아니면 그를 데려다가 돌보아준 사마리아인입니까?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한다고 생각합니까?
제사장과 레위인입니까? 아니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입니까?
우리가 이웃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행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새 생명을 전할 때 그들도 사망과 멸망의 늪에서 벗어나 우리와 같이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바울과 같이 최선을 다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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