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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하신 왕의 입성 (마태복음21:1~11)
백종선 2026-03-30 추천 0 댓글 0 조회 10
[성경본문] 마태복음21:1-11 개역개정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겸손하신 왕의 입성

성경 / 마태복음 21 : 1 ~ 11

 

오늘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던 날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것은 단순한 방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시고, 사랑과 섬김으로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하려 함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주로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셨습니다. 3년간 갈릴리 지역에서 활동하시다가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한 주간을 보내시며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시고,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사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사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에 이 장면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다가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 두 제자에게 맞은 편 마을로 가서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지시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나귀 새끼를 끌고 왔고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깔고, 예수님이 그 위에 타시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서부터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향하십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무리가 예수님의 가는 길에 그들의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며 큰 소리로 예수님을 찬양하며 환영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은 돈키호테가 연상됩니다. 돈키호테는 낡은 갑옷을 입고, 늙고 마른 말을 타고, 낡고 오래된 무기를 들고 산초라는 하인을 데리고 다닙니다.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제자들이 깔아놓은 겉옷을 안장 삼아 앉고, 왕이 행차하는 것처럼 입성합니다. 퍼포먼스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 자연스럽게 예수님께서 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까요? 4,5절입니다.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구약의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9:9절에서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하였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왕이 임하실 것이라고 하며 그는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으로 자신이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왕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을 통하여 세상 통치자들과는 다른 겸손한 왕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이전에 예루살렘에 들어간 왕이 있습니다. 세계 정복의 야욕을 품은 왕들이 다른 대륙에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침략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을 무너뜨린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해 침략하였고,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예루살렘을 정복하였고, 이후에 바벨론을 무너뜨린 바사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습니다. 예수님 이후에도 헬라와 로마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습니다. 이들은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들어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나라를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이들과 전혀 다릅니다. 칼과 창을 들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시고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기독교 저술가인 닉 페이지 Nick Page’는 그의 저서 가장 길었던 한 주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로마 총독 빌라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비교하였습니다. 빌라도는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소요를 대비하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옵니다. 그들은 말을 타고, 반짝이는 갑옷을 입고,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독수리 문양의 깃발을 들고 들어옵니다. 이들의 행군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낄 만큼 위압감을 주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의 입성은 평화롭습니다. 위압감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악의 세력에 짓눌린 자들을 구원하고,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며, 어떤 통치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이 세상에 속한 왕과는 전혀 다릅니다. 18장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하시며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속한 나라의 왕으로 등극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세상 나라는 군사력, 경제력, 정치적 권력으로 다스리지만, 예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섬김으로 다스립니다. 세상의 왕은 권력의 정상에 올라 지배하고 군림하지만 예수님은 연약한 백성들을 섬기셨고,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를 통하여 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섬김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으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을 섬기는 나라입니다.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고 서로 대접하며 베푸는 나라입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섬김으로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서로 사랑하며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20:26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으로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교회라 하더라도 예수님의 다스림을 따라 사랑하고 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 통치자들처럼 권위를 내세우고, 지배하고, 군림하며, 장악하려 한다면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고, 세상 나라와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무리가 소리 높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며 외쳤습니다. 이렇게 외쳤던 무리들이 예수님이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 위의 앉을 자리에 겉옷을 깔아드렸던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다 도망가고 예수님의 곁에서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행동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요? 자신들이 기대했던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는 지도자입니다. 예수님이 강력한 능력으로 로마를 물리치고 유대에 독립과 자유를 주길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의 왕의 자리에 오를 것이며 자신들은 2인자 3인자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 기대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자 실망하여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오해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임하는지 몰랐습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예수님을 오해하면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없고, 구원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목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때 마지막 주님 재림하시는 날에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지 않으면 마지막 날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임하실 왕을 예언한 스가랴 선지자는 슥9:10절에서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하였습니다. 나귀를 타고 임하실 왕은 병거와 말을 끊고, 전쟁하는 활도 끊고, 화평을 전할 것이며 그의 통치는 땅끝까지 이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메시아가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가 되면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를 주시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통치가 실현되어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모든 나라와 백성이 전쟁이 없는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평화를 원합니다. 하지만 평화를 이루는 방법에 있어서는 생각이 다릅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힘에 의한 평화입니다. 강력한 힘으로 세계를 제압하여 전쟁이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힘에 의한 평화가 이루어진 때가 있었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때입니다. 로마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되자 어떤 나라도 로마에 대항할 수 없었습니다. 로마의 눈치만 살피고, 로마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힘에 짓눌려 잠잠하고 있을 뿐입니다. 압박과 눈물과 고통이 있는 거짓 평화입니다.

또 하나는 살롬의 평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입니다. 하나님이 사랑과 의로서 다스리시며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섬김으로 이루어지는 평화입니다. 이는 우리가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가능합니다. 육체의 소욕을 내려놓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샬롬의 평화입니다. 세상의 권력은 평화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킵니다. 나는 세상의 평화를 만드는 평화주의자라고 주장하던 사람이 군사력을 앞세워 전쟁을 일으키고, 다른 나라들도 전쟁에 참여하라고 압박합니다. 백기를 들고 항복하면 평화를 주겠다고 합니다.

과연 이런 방법으로 세계 평화가 가능할까요? 평화는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예수님과 같이 낮은 곳에서 사랑으로 섬기는 나라가 될 때 가능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실권을 장악하고 지배하려고 한다면 평화가 임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다툼과 분쟁과 분열이 찾아올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에서 겸손히 사랑으로 섬길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종려주일을 맞아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겉옷을 깔아드렸지만 그들의 속내는 권력을 탐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지도자였던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메시야가 오셨을 때 영접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 자신들의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라고 스스로 자신을 높이면서 교권을 탐하고 재물과 명예를 탐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또한 교계의 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세상 권력을 차지하고 힘을 행사하려고 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을 구원하고자 했던 예수님과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자칫 잘못 생각하면 예수님이 가신 길이 아닌 전혀 다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는 하나님과 뜻을 같이하지 않고, 자기를 우상화하고,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며, 다른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려 한다면 예수님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힘의 통치 앞에 굴복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자기 안위를 얻고자 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며 평화를 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종려주일,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구원과 평화를 주시기 위해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낮은 곳으로 가서 구원과 평화의 복음을 전하며 사랑과 평화의 나라를 건설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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