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Ⅰ서4:7-1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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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사랑의 영성
성경 / 요한일서 4 : 7 ~ 12
오늘은 사랑의 영성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존재가 새로워지고 삶이 새로워져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영성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영성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자신은 기도를 많이 하고, 영적 은사가 많다고 주장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을 닮지 않은 가짜 영성에 불과합니다.
고전13:1~3절에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합니다.
사랑이 없는 영성은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진정한 영성은 사랑으로 증명됩니다.
사랑의 영성을 이해하려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이해와 느낌이 다릅니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말하면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많이 좋아하는 것을 사랑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좋아하는 것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과 소유욕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예뻐서, 잘 생겨서, 매너가 좋아서, 매력적이어서 그 사람을 차지하고 싶어 선택합니다. 이는 그 대상을 자기의 것으로 독차지하려는 소유욕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용의 가치가 있어서 선택합니다. 돈이 많아서, 능력이 있어서, 가능성이 있어서 배우자로 삼고자 합니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부유하게 살 수 있고, 상류 사회에 오를 수 있고, 자신의 위신이 올라갈 수 있기에 선택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재미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마음이 따뜻해서 좋아합니다. 지금까지 열거한 경우는 조건적인 사랑으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과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시고, 친히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본문 7,8절에서 ‘사랑의 기원’을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말씀합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의 기원, 사랑의 출처가 하나님이심을 천명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면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독생자를 주신 사랑입니다.
9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다고 하며...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만족을 구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통하여 내가 만족을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줍니다. 가장 귀한 것까지 아끼지 않고 줍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더 좋은 것을 주길 원합니다. 자식을 위해 헌신합니다. 자신이 고생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길 원합니다. 가정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한 달 열심히 힘들게 일하여 번 돈을 톡톡 털어 줍니다. 주면서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더 많이 주지 못하여 아쉬워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자신의 순결과 정조를 내어줍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줍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금은보화이겠습니까? 넓은 땅이겠습니까? 하늘의 별이겠습니까?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시는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외면하고 유산을 요구하여 그 돈으로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마음에 큰 아픔과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들을 마음에서 지우지 않습니다. 아들이 가진 돈을 탕진하고 거지 차림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외면하지 않고 품습니다. 기뻐하며 큰 잔치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선제적 사랑입니다.
10절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으나 이러한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면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할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가르쳐줍니다. 요15:9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고 하십니다. 사랑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독생자 예수님을 사랑하셨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이 사랑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선제적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할 사람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구분합니다. 나와 잘 어울리는 사람, 대화가 되는 사람,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을 사랑하고 수준이 떨어지거나, 부담이 되거나, 무익한 사람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차별하지 않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차별을 허무시고 모두를 사랑하셨습니다.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차별 없이 사랑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차별 없는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갈3:28절에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하였습니다. 골3:11절에서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차별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가 차별하면 안 됩니다. 차별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차별하는 사랑은 상처를 줍니다. 하나 되지 못하게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차별적인 사랑으로 인하여 상처를 받는지 모릅니다. 아들이냐 딸이냐에 따라서 차별적인 사랑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차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물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서 차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차별적인 사랑을 하는 걸까요?
이용의 가치를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딸보다 아들의 덕을 더 많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아들을 더 사랑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자식이 좋은 직장에 들어가 가정에 보탬을 줄거라 생각하기에 공부 잘하는 자식을 더 사랑합니다. 이런 계산적인 사랑은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어서가 아닙니다.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어떤 조건이나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음에도 놀라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한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뛰어나서입니까? 완벽하기 때문입니까? 모범이 되기 때문입니까? 성경에서 보여주는 제자들의 모습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실수도 많았습니다. 서로 높아지려고 다투기도 하였습니다. 믿음이 없어 예수님에게 책망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조건을 보고 제자들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주건을 따지지 않는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것은 내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차별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할 때 계산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사랑은 왜곡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차별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차별하지 않는 사랑이 모두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모두를 하나 되게 합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눅6:27,28절에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까지 하라고 하셨을까요? 이 사랑이 죄인을 구원하고, 타락한 세상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수많은 적을 두고 있습니다. 국가간에 적대 국가가 있고, 기업 간에 적대 기업이 있고, 개인에게도 적이 있습니다. 왜 이런 적대 관계가 형성된 것일까요? 인간의 탐욕 때문입니다. 함께 공존하는 길을 택하기보다 자신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서로 이익이 상충하여 적대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적대관계는 평화를 깨뜨리고, 불안과 두려움에 떨게 하며 긴장을 풀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 문제를 풀려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고,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죄인을 구원하고 타락한 세상을 회복하여 사랑과 평화와 공의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사랑할 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11,12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 사랑이신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면 사랑이신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프랑스가 낳은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이며 사상가인 ‘파스칼’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다. 그 구멍은 세상의 쾌락과 물질, 명예, 권세로는 채울 수 없다. 그것들은 오히려 실망과 불만족, 허무만을 남긴다. 그 구멍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끝없이 부어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실 때만 진실한 만족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떠한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무와 공허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로도, 쾌락으로도, 권력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여기서 벗어나려고 마약을 하고, 취하도록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그때 뿐이고 비어있는 마음을 채울 수 없어 갈급해 합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말로만 하는 사랑, 이론적인 사랑, 왜곡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고, 그들을 허무과 공허함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함으로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역사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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