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태복음20:25-2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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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교회의 기초
성경 / 마태복음 20 : 25 ~ 28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계속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배워야 합니다. 구원이 무엇인지 배워야 합니다. 구원은 죄에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선택하신 구원의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성경 원어의 뜻을 분석하여 설명할 수 있고, 신학자들이 내린 죄에 대해 정의를 통해서 죄를 이해할 수 있으나 죄의 시발점이 되었던 아담과 하와가 지은 범죄에서 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아는 나무 열매를 먹은 것입니다.
창2:16,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을 수 있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하시며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이후에 뱀이 나타나 하와를 유혹합니다. 너희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줄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이를 금하신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입니다. 뱀이 말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금하신 걸까요? 선악을 알면 좋은 게 아닌가요?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선악을 아는 것과 하나님같이 되는 것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선악을 아는 순간 하나님 자리에 올라서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습니다. 자기가 기준이 됩니다. 자기 위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 합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권력의 의지가 있습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정죄하려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려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권력 기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면 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회, 헌법재판소, 대법원이 자신들이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하며 자신들의 최고의 위치에 있음을 드러내려 합니다.
이런 모습은 권력 기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부부간에 신혼 때는 꿀이 흐르는 달콤한 허니문 기간을 갖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 파워 게임이 시작됩니다.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배우자를 판단하려 합니다. 배우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판단하며 위에 올라서려 합니다. 부부간에 일어나는 권력 다툼입니다. 작은 단위로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크게는 국가와 세계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이 다툼이 발생합니다. 자신이 우위권을 쥐고 다른 사람들 판단하고 정죄하며 군림하려 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역사는 권력 쟁취를 위한 다툼의 역사입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 억압하고,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 세를 결집하고 확장하여 새로운 일을 도모합니다.
권력이란? 누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리를 차지하느냐 하는 것이고, 권력을 차지한 사람은 누구의 판단과 정죄를 받지 않고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며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이 자리를 탐냅니다. 그래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싸웁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범죄가 발생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행의 늪에 빠졌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고 타락하여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또는 권력의 자리에서 온갖 죄를 범하는 자들로 인해 불행의 늪에 빠진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선택하신 구원의 방법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인간들이 지향하는 권력의 길로 가지 않고, 자기를 비우시고 낮아지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셨고, 종의 형체를 가지고 섬기셨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본문 28절에서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섬기셨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타락한 통치자와는 달리 자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을 대속하기 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길을 가신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구원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셔서 섬김의 길을 가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이 길을 가야 함을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25~27절에서 예수님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방인 집권자의 통치 행위가 어떤지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임의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립니다. 하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고 하시며, 너희는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하고 인정받고 높아지는 길을 가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따라 섬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만약 교회에 와서도 대접받고, 인정받고,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한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세상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동일한 조직을 만들고, 동일한 방법으로 운영하면서 권력을 행사하며 군림하려 한다면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 속한 조직에 불과합니다. 교회가 권력 의지를 버리지 못하고 높은 자리를 탐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교회가 아니라 탈선한 겁니다. 교회는 주님을 따르는 공동체입니다. 높은 권력을 차지하려는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고 주님과 같이 사랑의 길, 섬김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뜻하신 구원이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권력의 의지를 불태우는 교회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정치 권력에 편승하여 힘을 가지려 합니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합니다. 이런 교회에서 구원의 역사가 가능하겠습니까?
최고의 권력을 장악하고 군림하며 지배했던 중세교회는 타락한 교회입니다. 겉모습은 화려하고,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중세교회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을 타락하게 만드는 죄악의 온상이었습니다. 유럽 교회를 탐방하며 중세교회에 지어진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 건물을 보고 감탄하고 부러워한다면 아직 교회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중세교회와 같이 힘 있고, 웅장하고, 세상을 지배하는 교회를 꿈꾸는 분이 있다면 예수님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길엔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권력의 욕망으로 무너진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이 있고, 서로 대접하며, 서로 세워주고 살리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교회에서 높은 자리 낮은 자리를 구분해서는 안 됩니다. 섬기는 사람 따로 있고, 대접받는 사람 따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는 지시하고 누구는 지시를 받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 이런 모습이 있다면 이는 교회의 참된 모습이 아닙니다.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집단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과 교회는 분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셨고,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 사람을 부르셔서 교회를 이루게 하셨고, 예수님을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누구도 머리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머리로 삼는 순간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 집단이 됩니다. 교회에서 파워 게임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특정인이나 소수를 중심으로 파벌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나고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면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수 없고, 하나님과 역행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권력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서로 경쟁하며 힘겨루기를 하지 않습니다. 권력의 의지가 사라진 곳,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모인 곳 이곳이 진정한 교회입니다.
죄성을 지닌 인간은 권력 의지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나, 어떤 모임에서도 권력을 차지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알력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민감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권력의 의지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습니다.
권력 의지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갈 때만 권력 의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 계기가 있었습니다. 본문 앞의 20~24절을 보면 세베대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려와서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나머지 열 명의 제자들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분히 여깁니다.
높은 자리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높은 자리를 두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하시며,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잔을 마셔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2인자의 자리에 3인자의 자리에 앉힐 것인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이 권력 의지에서 벗어나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다음 주일에 항존직 피택을 위한 선거가 있습니다. 장로 2인, 안수집사 3인, 권사 5인을 선출하는 선거입니다. 이 선거는 높은 자리에 앉을 사람을 뽑는 선거가 아닙니다. 교회를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을 뽑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의 직분을 권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뒤를 따라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제자들의 면모를 보면 이들 중에 뛰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배움이 부족합니다. 세상적으로 내세울 게 없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실력이 뛰어나거나, 배움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들은 부족한 점이 많고 실수투성이였지만 이들을 가르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사랑으로 섬기는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능력이 아닙니다. 학력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 섬기는 종의 자세입니다.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입니다. 사랑과 섬김과 희생이 교회를 세우는 기초입니다. 우리가 권력 의지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사랑하며 섬기며 희생할 때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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