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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한 성도 (시편16:3)
백종선 2025-05-02 추천 0 댓글 0 조회 48
[성경본문] 시편16:3 개역개정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존귀한 성도

성경 / 시편 16 : 3

 

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존귀한 자라고 생각합니까? 하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자신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자신을 존귀한 자로 생각하면 존귀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자신을 하찮은 자로 생각하면 하찮게 살아갑니다.

 

자신이 존귀한 자가 되기를 힘쓰며 존귀한 자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존귀한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아마 모든 부모는 자녀가 존귀한 자가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배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합니다. 자녀만큼은 존귀한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한 편의 시를 쓸 때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그냥 쓰지 않습니다. 무엇을 쓸지 주제를 정하고, 어떤 내용을 담을지 소제를 준비하고, 이를 어떤 단어로 어떻게 표현할지 단어 선택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문장에 느낌과 감정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다듬고 또 다듬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손댈 것이 없을 정도로 완성이 되면 한 편의 시가 나옵니다. 시 뿐만 아닙니다. 명품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은 한 개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도자기를 만들고 깨뜨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화가는 하루 종일 붓을 들고 화폭에 그림을 그립니다. 오랜 기간 수없이 많은 습작을 한 후에 어떤 경지에 오르면 작품을 출품합니다. 작곡가가 노래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쓰고 지우고를 반복합니다. 베토벤이 작곡한 운명 교향곡의 처음 나오는 두 마디를 쓰기 위해 50번 이상을 쓰고 지웠습니다.

명품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정성과 심혈을 기울이며 산고의 고통 끝에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결코 쉽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간을 분석해 보면 신묘막측합니다.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최고의 작품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매우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신의 형상을 담았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하고, 다른 사람과도 교제하며, 자연과의 교제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며 관리하도록 하셨습니다.

시편8:4~9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필요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쓸모없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곧게 자란 나무는 목재로 사용되고, 과실 나무는 과일을 맺는 용도로 사용되고, 옻나무는 약재로 사용되고,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나무는 산을 지키며 산을 푸르게 하고 그곳에서 많은 동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쓸모없이 만들어진 인간은 없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발견하고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면 빛나는 인생이 됩니다.

 

존귀한 인간을 무가치하고 추하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입니다. 영광스럽게 지음 받은 인간이 죄를 범하면 어떤 피조물보다 추하고 무가치한 존재가 됩니다.

시편 49:20절에서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하셨음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죄악 가운데 살아간다면 멸망하는 짐승과도 같은 존재가 됩니다.

불행하게도 하나님께 지음 받은 인간이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지음으로 타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존귀함을 잃어버린 육신이 되어버렸습니다. 육신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가 원하는 본능을 따라 살아갑니다. 타락한 인간에게서 존귀함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존엄성을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은 잃어버린 존귀함을 되찾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사하셔서, 잃어버린 영혼을 다시 찾아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습대로 존귀한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라고 합니다. 이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해보시길 바랍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입니다” “나는 존귀한 자입니다

 

19:6절에서 하나님은 언약 백성들을 항하여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하셨습니다. “너희는 제사장 나라이며, 거룩한 백성이라하시며 자신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의식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우리가 누구인지 말씀하셨습니다. 벧전2:9절에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체입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며, 왕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이를 꼭 기억하고 의식하며 존귀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존귀한 존재임을 망각하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거나, 직장을 잃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면 자신의 인생이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생각하고 자신이 존귀한 존재임을 망각하기 쉽습니다.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하여 아는 것이 없어 사람들이 무시할 때 자신이 존귀한 존재임을 망각하고 자신을 하찮게 여기기 쉽습니다. 사고나 육신의 질병으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되었을 때 자신이 존귀한 존재임을 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환경을 넘어서서 존귀한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19세기, 20세기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오지에 선교하러 들어간 선교사님들의 손에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돈이 소용없습니다. 돈이 있어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학력이 소용없습니다. 말이 잘 안 통하고, 아무리 좋은 지식을 가르쳐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선교사님들이 풍토병에 걸려 죽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그럼에도 선교사님들은 존귀한 자로 사셨습니다. 선교사들의 삶을 존귀하게 한 것은 그분들의 재력이나 학력이 아닙니다. 사랑과 섬김으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한 삶이 존귀한 인생이 되게 하였습니다.

오래전 브라질에 선교지 탐방을 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초창기에 선교사로 들어가셨던 강성철 선교사님을 만나서 그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한국교회가 선교사님들에게 선교비를 후원하지 않을 때입니다. 1970년대에 가족들과 함께 들어갔는데 한국이 브라질보다 가난할 때입니다. 가진 것이 없고, 말도 통하지 않고, 인종도 다릅니다. 집도 없이 거리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들어가 그들을 섬겼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은 선교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기들보다 더 어려운데 자기 살길을 모색하기보다 자신들을 섬기며 도움을 주며 사는 것을 보고 왜 저렇게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잠시 저러다 말겠지 생각하고 지켜보았으나 수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자신들을 섬기는 것을 보고 선교사님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였고, 선교사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브라질에 복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되었고, 이후로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하며 제가 방문했을 때는 브라질 상파울로에 남미 교회를 담임하며 30개가 넘는 지역 교회를 세우고 돌보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존귀한 자로 살아가는 것은 별개입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어도 존귀한 자로 살지 않는 사람이 있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존귀한 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뭔가 큰일을 해야 존귀한 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작은 섬김이라 하더라도 선한 일을 위해 살아가면 존귀한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존귀한 성도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43:21절에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하였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고귀하고 아름다울 수 있고, 악하고 비천할 수 있습니다. 조폭들과 어울려 범죄를 도모하고, 쾌락을 즐기는 사람과 어울려 술과 마약을 하며,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행동을 한다면 악하고 비천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성도들과 선한 일을 도모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빠지는 유혹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기보다, 나의 기쁨을 먼저 생각하는 겁니다. 무엇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가를 기준으로 선택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배하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됩니다. 주일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나들이 가자고 하면 무엇을 선택하십니까? 자기 즐거움을 생각하면 나들이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예배를 선택하게 됩니다.

육신의 즐거움을 위해 살면 존귀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즐기는 것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 할 때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존귀한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삼상2:30절에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 엘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비느하스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제사를 소홀히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가로채서 자신들이 먼저 취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입의 즐거움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제사장 가문의 영광을 상실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눈앞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소홀히하면 존귀한 인생이 될 수 없고, 몰락의 길을 가게 됩니다.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존귀한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행동으로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행위는 구원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여 의롭게 하고,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여 거룩한 하나님 나라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행위가 위대하고 영광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인을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도록 전도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받들어 복음을 전하면 우리의 삶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삶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이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럽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나라 위하여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럽습니다. 52:7절에서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하였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대기업의 총수가 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존귀한 것은 사람을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는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야 말고 가장 영광스럽고 존귀하다 할 수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보여주신 영광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 일이야말로 가장 존귀하고 영광스런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맡기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할 때 우리의 삶도 예수님처럼 존귀하고 영광스런 삶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한 존재로 지으셨고, 우리가 존귀한 자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하심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존귀한 자로 살아가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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