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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사귐 (요한일서1:3~4)
백종선 2025-02-16 추천 0 댓글 0 조회 68
[성경본문] 요한Ⅰ서1:3-4 개역개정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성도의 사귐

성경 / 요한일서 1 : 3 ~ 4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관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부모 없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한 끼를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도 농사지은 농부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 쌀을 집까지 가져올 수 있는 것온 유통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 쌀로 밥을 지을 수 있는 것도 밥솥을 만든 사람과 전기가 가스를 공급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었습니다만 우리의 모든 삶이 다른 사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관계적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모든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모든 세계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근원이며 출처일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유지되고 움직이도록 하는 운행자이기도 하십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움직일 때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정상적으로 존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섭리를 따를 때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고 생명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돌아가 쉴 때까지는 결코 평안함이 없었나이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채 살면 우주 미아와 같이 정처 없이 방황하는 인생이 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관계가 성도와의 관계입니다. ‘성도와의 관계성도의 교제’, ‘성도의 사귐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의 핵심을 요약한 사도신경성도의 교제가 나옵니다. ‘성도의 교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는 우리 믿음의 중요한 핵심 요소입니다.

또한 교회의 5대 사명이 예배, 교육, 선교(전도), 구제와 봉사, 교제입니다. 5대 사명 중에 하나가 교제입니다.

 

성도 중에 성도의 교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에 참석하지만 성도와의 관계를 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등록하지 않고 예배만 참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익명의 성도로 예배만 참석합니다. 교회의 소그룹 모임이나 선교회, 구역 모임에 참여하고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분들 중에도 서로 이름을 알고 인사를 나누며 표면적으로만 알고 지내지만, 마음을 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소수에 불과합니다. ‘성도의 교제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를 보면 성도의 교제가 아주 강하였습니다. 이들은 한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2:46,47) “이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며,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었습니다.”(2:44,45)

 

이렇게 돈독했던 성도의 교제가 언제부터 약화되었을까요?

기독교가 로마의 공식적인 종교가 되고 국교가 되면서 교회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가정에서 모였던 교회가 큰 교회 건물을 짓고 의전적인 종교의식이 행해지고, 교회가 거대한 조직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교회의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성도 간에 교제가 약화 되고, 대신 조직이 강화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교회가 크게 성장하고 부흥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교회의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중심이 아닌 조직 중심이 되었고, 성도의 거룩한 교제가 사라지고, 수직적인 체계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잃어버린 성도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성도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중요성을 발견해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교제와 다릅니다. 친구와 만나 재미있는 시간을 나누는 교제가 아닙니다.

 

성도의 관계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핵심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성도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축인 성도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바른 성도의 관계를 맺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바람직한 성도의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분 3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사도 요한은 이 서신을 기록한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서신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전하는 목적은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하며..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합니다.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이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하며 그 사귐의 핵심이 무엇인지 말씀합니다. 그 사귐은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삶입니다.

 

여기서 성도의 교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삶입니다. 진정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려면 먼저 성도 각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이상적인 성도의 교제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만 정상적인 성도의 교제가 가능합니다.

 

교제를 나누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교제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와 교제하면 술을 주고받는 술친구가 됩니다. 도박을 좋아하는 친구와 교제하면 도박을 하며 교제합니다. 나쁜 친구와 교제하면 나쁜 영향을 받게 되고, 그 교제가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좋은 친구와 사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좋은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습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에 마음이 통하고 서로에게 유익한 친구가 있다면 친구 복이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사귐을 갖기 힘든 이유는 이기적인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에 일정한 관계 이상을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또한 호감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자신은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했던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선을 넘는 무례한 행동으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킨십을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은 스킨십이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를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은 진지한 대화를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런 차이점이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줍니다.

좋은 사귐을 어렵게 만드는 이기적인 성향과 생각의 차이를 넘어서려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령과 더불어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을 때 참된 사랑을 깨달아 이기적인 성향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용납하고, 품어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의 능력이 부족합니다. 상대를 포용하고 품고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때 사랑의 능력을 힘입어 참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성도의 사귐을 가지려면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요일1:7절에서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라고 말씀합니다.

어둠의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어둠의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은 의기투합하는 목적은 하나입니다. 물질적인 부를 획득하고 출세하기 위함입니다. 삶의 목적을 물질과 출세에 그 자체에 두면 어둠의 일도 서슴지 않고 도모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자기 이익에 반하면 언제든지 돌아섭니다.

 

진정한 사귐은 빛 가운데 있을 때 가능합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어둠의 일을 도모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순수합니다. 정직합니다. 밝고 투명합니다. 그래서 신뢰가 형성됩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합니다.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자가 됩니다. 빛 가운데 계신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빛 가운데 거할 수 있고, 빛 가운데 거할 때 진정한 성도의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도의 사귐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모습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빛 가운데 거하며 사랑으로 하나 되어 거룩한 사귐을 가질 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상적인 성도의 사귐을 가지면 하늘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4절에서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가장 큰 기쁨은 사랑의 교제를 나눌 때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사귐을 가질 때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희망촌교회가 이 기쁨을 충만히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가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인간관계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5차원 전면 교육을 가르치는 원동연 박사가 이상적인 교육이 실현되려면 다섯 가지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다섯 가지가 지력, 심력, 체력, 자기관리능력, 인간관계능력입니다. 이 중에서 한 가지가 부족하면 이로 인해 온전한 자기 성장을 이룰 수 없고, 이 다섯 가지가 균형 있게 갖추어질 때 온전한 자기 성장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성도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경청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소통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갈 때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소통의 핵심은 경청입니다. 자기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일방통행식 대화는 관계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합니다. 경청하지 않으면 겉도는 대화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존중입니다.

상대를 존중할 때 상대가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것을 느끼고 그 역시 예를 갖추고 존중하는 태도로 다가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신을 무시하고 하대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바탕 하에서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7:12) 하셨습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면 대접받기 어렵습니다. 대접할 때 대접을 받습니다. 존중할 때 존중을 받습니다.

 

셋째, 공감과 관심입니다.

관심을 보일 때 관계가 가까워집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관계가 깊어질 수 없습니다. 관심을 보일 때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관심은 공감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냥 궁금하여 물어보는 식의 관심으로 끝난다면 관계의 발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관심의 표현에서 중요한 것이 공감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 겁니다. 감정의 교류가 있을 때 동료 의식을 갖게 되고, 친밀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넷째, 포용입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수와 잘못을 합니다. 이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실수와 잘못을 놓고 야단치고, 비난하면 상처를 줍니다. 하지만 실수와 잘못을 포용하고 품어줄 때 상대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 도움입니다.

상대방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면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면서 상대를 믿고 신뢰하게 됩니다.

친구들 중에 어려움이 있으면 이를 해결해주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움을 주는 일이 힘들 수 있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의 곁에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영향력도 커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성도의 사귐을 원하십니다. 성도의 사귐은 하나님 나라의 핵심 요소이며, 성도의 사귐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귐은 세상 사람들처럼 육신의 즐거움을 위한 사귐이 아닙니다.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사귐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빛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으로 하나되어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가족 공동체와 같은 사귐입니다. 우리가 이런 아름다운 성도의 사귐을 가지도록 힘써서 천국의 기쁨을 나누는 우리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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