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로마서1:16-1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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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믿음에 대한 바른 이해
성경 / 로마서 1 : 16 ~ 17
신앙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다양합니다. 방언과 신유의 은사를 사모하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하는 장소를 찾아다니는 분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집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는 분이 있고, 기독교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분도 있고, 정치적인 모임에 참여하여 거리에서 소리를 외치며 활동하는 분도 있습니다. 중세 시대 교인들은 성물을 숭배하고, 성인을 추앙하며, 성지를 순례하고, 힘든 고행을 자처하면서 공로를 쌓으려 했습니다.
왜 이렇게 다를까요? 보고 배우고 경험한 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는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에 따라 신앙하는 모습이 어느 정도 정해집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익숙해지면 그것이 자신의 신앙 패턴이 됩니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서울에 있는 순복음 교단에 속한 교회 집회에 참석했다가 낯선 경험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 서울로 가기 전까지 태어나서 한 교회만 다녔습니다. 전통적인 장로교회입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주보에 나온 순서대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설교 말씀을 듣는 식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다가 서울 신길동에 있는 순복음 교회 집회에 참석하였을 때 예상하지 못한 낯선 예배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군대 훈련병들이 박자에 맞추어 박수하며 노래하듯이 교회가 떠나갈 듯이 큰 소리로 박수치며 찬양하였고, 기도 시간이 되었을 때 교인들은 두 손을 들고 울부짖으며 큰 소리를 기도했습니다. 들썩들썩 박수하며 찬양하다가 갑자기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설교 시간이 되었을 때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는데 마이크를 들고 강대상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도 생소했지만 “귀신아 물러가라! 치유될지어다! 축원합니다!”는 말씀을 자주하였고 그때마다 성도들은 큰 소리로 아멘!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뭔가 이상하고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집회를 지켜보았습니다. 반대로 순복음 교회 예배에 익숙한 분들이 장로교회에 와서 예배하면 너무 조용하고, 생동감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예배를 드렸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배의 형식이나 신앙 생활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바른 믿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의 믿음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나?”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이 말씀에 근거한 것인지 생각해 보고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았다든지, 아니면 지금까지 자기 임의로 믿음 생활해왔다면 성경에 근거해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중세교회와 같이 잘못된 신앙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중세교회 성도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공로를 쌓고자 노력했으나 가장 중요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성경에서 벗어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바른 믿음이 중요합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마틴 루터가 중세교회의 잘못된 신앙관을 바로 잡기 위해 “오직 믿음으로”를 주창하였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가르쳐준 믿음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에 은혜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타락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어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의로운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응답한다는 것은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죄의 심각성을 알고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진심으로 통회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죄 가운데 살았던 옛사람의 모습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생명, 거듭난 새 생명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를 두 단어로 요약하면 ‘회개’와 ‘신앙’입니다. ‘회개’는 죄에서 돌이켜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을 의미하고, ‘신앙’은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의지와 결단이 있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의지의 결단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믿음의 결단을 하게 하고, 우리를 의롭게 하며, 거룩한 삶에 이르도록 이끌어주십니다.
믿음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대상을 믿고 따르면 안 됩니다.
중세교회는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교황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교황의 말을 하나님의 말처럼 생각했고, 교황의 말을 따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문제를 간파한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예수’를 강조하며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아야 함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두고 있는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생각이나 또는 다른 사람의 말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체크해 보아야 합니다. 그 대상이 목회자일 수 있고, 장로일 수 있고, 부모일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 대상이 누구든 예수님이 아니라면 믿음의 대상을 잘못 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으면 아주 위험합니다. 좋은 신앙의 모델은 본받을 필요가 있지만 그 사람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 자신을 강하게 주장하는 독선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말을 듣고 따르면 어긋난 길로 가게 됩니다. 이들은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믿음의 주는 ‘오직 예수’이어야 합니다. 바른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예수” “오직 예수”
다음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믿음의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기본적으로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기를 지시지 않았고,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 죄를 예수님이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대속 제물로 드렸을 때 내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내 죄가 남아 있을까요 없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내 죄가 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 죄를 씻었을 뿐 아니라... 죄의 권세로부터도 해방시키셨습니다. 죄의 올무에서 우리를 해방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습니다. 죄에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268장 찬송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죄를 지어도 되는 자유를 말하는 게 아니다.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고, 죄의 올무에서 벗어나 진리 안에서 자유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은혜가 임하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내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신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의 보혈이 죄에서 자유하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까? 죄의 종노릇하며 죄에 끌려다니던 삶에서 벗어나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이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롬6:5절에서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은 자는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하여 의에 대하여 살아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과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나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나와 연결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하여 의에 대하여 살아나게 됩니다. 이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누가 그렇게 살아야된다고 말하면 피식 웃으며 당신이나 그렇게 살라고 생각하며 그 말을 무시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구원의 능력이 내게 임하여 죄와 결별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로 결단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복음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난다고 합니까? ‘모든 믿는 자’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복음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의인이 되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립니다.
롬5:1절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고 합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가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죄 가운데 살면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온갖 죄를 범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멀리하며 살던 죄인이 예수를 믿어 거듭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을 가까이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어 거듭나게 되면 관심이 바귀고, 좋아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함이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삶의 유익을 경험합니다.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삶이 무엇인지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경험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더욱 소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완전한 나라가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며 사명의 길을 갑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복이 있다는 것을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믿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고 출입구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하였습니다. 마음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가지고 하늘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우리 희망촌교회 교우들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바른 믿음으로 거듭나서 죄에서 벗어나 진리 안에서 자유하며 하나님과 화목하여 친밀한 관계를 맺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하늘의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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