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 말씀과기도 >
  • 주일낮예배설교
회심의 은혜 (데살로니가전서1:5~10)
백종선 2024-10-21 추천 0 댓글 0 조회 60
[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1:5-10 개역개정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회심의 은혜

성경 / 데살로니가전서 1 : 5 ~ 10

 

지난 주간에 유튜브에서 한 청년이 인터뷰를 하면서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청년은 우리나라가 심각하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출산율 꼴찌, 자살률 1.. 이 지표가 보여주듯이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하며 우리 국민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면 가족, 사회, 관계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한국은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게 이상하다고 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뒤로 물러나 있고 돈에 미쳐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숫자로 본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는 부유한 데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정치에 의해서 또는 환경에 의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소멸되지 않고 변화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청년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중요한 게 맞는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할 때 무엇을 간구합니까? 여러분이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마 여러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여러분이 가장 원하고 바라는 것을 기도할 겁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것이 여러분이 원하는 축복일 겁니다. 건강이 중요합니다. 물질이 중요합니다. 가정과 자녀가 중요합니다. 사업과 직장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 근본적인 것이란? 영생과 연결된 삶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면 한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고 높이 평가받는 것이라 하더라도 영원과 연결되지 않으면 잠시 피었다 지는 꽃과 다름없습니다. 여러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영생과 연결되어 있을 때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영생과 연결되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회계하여 죄에서 구원받는 겁니다. 죄에서 구원받지 못하면 영생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렸다 하더라도 영생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 부귀영화와 권세는 일장춘몽에 불과합니다.

죄에서 구원받아 영생에 이르려면 회심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경험한 회심을 이야기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회심을 경험하였습니다. 본문에서 보여주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모습은 회심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7절에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3주간이라는 짧은 기간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여 개척한 교회입니다. 유대인들의 심판 핍박으로 인해 바울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베뢰아로 갔지만 3주라는 짧은 기간에 바울이 전한 복음이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우상을 섬겼던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회심하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후 데살로니가 교회는 건강하고 든든한 교회로 성장하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있는 좋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본문 5절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어떻게 복음의 역사가 나타났는지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의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바울이 전한 복음이 말로만 아니라 능력성령큰 확신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1:16절에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하였습니다. 복음에는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죄인으로 하여금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복음을 알기 전에는 자신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모릅니다. 죄를 밥 먹듯 지으면서 죄의 심각성을 모릅니다. 죄악의 낙을 즐깁니다. 죄악을 삶의 수단으로 삼습니다. 죄가 자신을 파멸로 빠뜨리고 멸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복음을 들으면 비로소 자신의 죄를 발견하게 되고, 그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습니다. 죄에 대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지은 죄를 뉘우치며 슬퍼합니다. 그리고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신 예수님께 나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바로 여기서 삶의 대전환이 일어납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성령이 도우심이 없으면 죄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영접하지 못하고, 복음이 어리석고 미련하게 생각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복음을 통해 삶이 새로워지는 변화를 경험합니다.

 

사도행전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선교의 역사는 성령께서 주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이 지혜가 있고, 언변이 뛰어나고, 설득력이 있어서 놀라운 세계 선교의 역사를 이룬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어부로서 많이 배우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높은 학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은 어눌하였습니다. 고후11:6절에서 바울은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세계 선교의 초석을 놓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로 회심을 경험한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들은 누가 뭐라해도 자신이 직접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였기에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은 믿음의 증거가 나타납니다. 3절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나타난 증거를 열거합니다. 이들에게는 믿음의 역사가 있고, ‘사랑의 수고가 있고,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믿음의 증거를 보고 4절에서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합니다.

 

9~10“...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이 역시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회심의 증거입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는 회심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씀 하였습니다. “앞으로 언젠가 돌아서겠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거나 결심하는 것은 회심이 아닙니다. 실제로 행동으로 돌아서는 것이 회심입니다. 말씀이 그 심령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혁명이 있어야 합니다. 낡은 보좌는 사라지고 새로운 왕이 즉위하셔야 합니다. 우상을 버리고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간절히 추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어떻게 회심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회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처럼 복음을 듣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회심을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해야 합니다. 설교자가 회심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오직 성령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회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돌이켜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거룩한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살전2:13절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말을 들을 때 어떤 마음으로 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전하는 말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중요한 말을 합니다. “이 말씀이 너희 믿는 자 가운데 역사하느니라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 가운데 역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생각으로 들어야 하고, 그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사도행전10:33절을 보면 고넬료가 자신의 집을 찾아온 베드로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는 베드로의 말을 들으려고 가족, 친지, 동료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고넬료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고 합니다. 고넬료가 베드로가 전하는 말은 어떤 마음의 자세로 듣는지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전하는 말을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러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회심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됩니다. 9절 하반절입니다. “...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형식적인 종교활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통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이런 삶을 통해 하나님 안에 거하며 영적인 기쁨을 충만하게 누립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영광을 드립니다.

 

우리가 회심할 때 영생과 연결되는 의미있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회심이 없으면 죄 가운데 살면서 무익한 자로 살아갑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죄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사회에 유익을 줄까요 해악을 끼칠까요? 죄의 본질이 자기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이용하려 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회에 유익을 주지 못하고 해악을 끼칩니다. 그러면서도 이에 대한 죄책감이나 양심을 가책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이면 어떻게 될까요? 천국이 될까요? 지옥이 될까요? 세상은 점점 병들어가고, 이 세상은 삭막하게 변하여 지옥과 같은 세상이 됩니다. 죄가 많아지고 악해질수록 이 세상은 험악한 곳이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된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통치합니다. 선하고 의로운 통치를 하십니다. 그리하여 거룩하고 평화롭고 영광스러운 나라를 만드십니다.

우리가 회심할 때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살아갑니다. 거룩하고 선하고 평화롭고 영광스런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영생의 삶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회심이 없는 가운데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는 삶은 지옥을 앞두고 진수성찬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이 영생과 이어지는 삶인지 영생과 단절된 채 죄와 더불어 일시적인 세상 즐거움을 누리는 삶인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회심하여 영생에 이르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길 바랍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믿음에 대한 바른 이해 (로마서1:16~17) 백종선 2024.10.30 0 59
다음글 이 세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요한일서2:15~17) 백종선 2024.10.14 0 67

630823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앵지밭골1길 59-25 (회원2동 740-1) TEL : 055-247-7328 지도보기

Copyright © 희망촌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4
  • Total61,756
  • rss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