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야고보서1:13-1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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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야고보서 1 : 13 ~ 18
제목 / 유혹을 대처하는 방법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과 함께 거룩하고 아름다운 영생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직 자신의 영광만을 구하며 소비적인 인생을 살다가 멸망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원인을 밝혀줍니다. 본문 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망’은 육신의 죽음을 뜻하지 않고 영적인 죽음, 멸망을 의미합니다. 죄가 영적 죽음과 멸망을 가져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몰락하게 하고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죽음에 이르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영생의 삶을 살지 못하고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멸망에 이르지 않으려면 죄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 죄를 범하게 되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죄를 범하도록 유혹합니다. 틈만 보이면 유혹의 손길을 뻗칩니다. 세상은 온갖 유혹으로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지 아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사탄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유혹을 받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죄의 유혹을 받았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유혹을 받으면 그 순간 마음이 흔들립니다. 호기심이 발동하고, 갈등이 일어납니다.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일입니다. 이때 유혹에 넘어가면 죄를 범하게 됩니다. 유혹을 받는 것이 죄가 아니라 유혹에 넘어갈 때 죄를 범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을 받았을 때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었고, 넘어가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은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들이 죄를 범한 것은 선악과 열매를 따서 먹은 순간입니다.
사탄의 유혹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유혹에 넘어가느냐 넘어가지 않느냐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유혹을 받을 때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유혹을 받을 때 유혹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죄를 범하기 이전의 아담과 하와의 모습과 죄를 범한 이후의 아담과 하와의 모습은 크게 다릅니다. 범죄하기 이전에 이들의 모습은 자유하였습니다. 평안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허물없이 지내며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하지만 범죄한 이후 이들의 모습은 구차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나님을 떳떳하게 대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피하여 자신의 몸을 숨깁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찾아가서 왜 하나님이 금하신 열매를 먹었느냐고 물으셨을 때 아담이 어떤 대답을 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자신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합니다. 하와가 그 나무 열매를 주지 않았다면 먹지 않았을텐데 하와가 주어서 먹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뿐 아닙니다. 하와를 가리켜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라고 합니다. 그 책임을 하나님에게까지 전가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깁니다.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죄의 책임을 다른 대상에게 돌립니다. 책임을 회피한다고 해서 죄의 책임이 다른 사람에게 전가되지 않습니다. 죄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본문 13절에서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악의 시험을 받지 아니하시고, 아무에게도 나쁜 의도를 가지고 시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죄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시험을 주지 않았다면 죄를 짓지 않았을텐데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시험을 주어 죄를 범하였다는 이런 핑계를 대서는 안 됩니다. 죄의 책임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여 죄를 범하도록 하지만 하나님은 유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하도록 유도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악을 행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죄의 함정에 빠뜨리려 합니다. 시험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탄의 도구가 되어 사탄에게 이용당하면 안 됩니다. 사탄에게 넘어가면 사탄의 도구가 됩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탄의 종노릇합니다. 계12:10절을 보면 사탄을 가리켜 “형제를 참소하는 자”라고 합니다. ‘참소’는 남을 해치려고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고소하는 것을 말합니다. 참소하는 자는 사탄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이리저리 떠보고, 약점을 찾고, 비난하는 일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시험을 받았을 때 시험에 걸려드는 이유는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는 이유는 다름 아닌 욕심 때문입니다. 마음에 욕심을 품고 있으면 마귀가 시험할 때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욕심을 품는 것을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욕심을 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동의하십니까? 선한 욕심은 필요합니다. 신앙인이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려고 하는 욕심, 학생이 공부를 잘하고 싶은 욕심, 운동선수가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은 욕심은 필요합니다. 선한 욕심이 아니라 ‘육신의 욕망’과 ‘지나친 탐욕’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욕심이 있을 때 유혹에 쉽게 넘어집니다. ‘사탄의 유혹’과 ‘인간의 욕심’이 만났을 때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유혹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욕심에 사로잡혀 있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이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욕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죄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죄를 방어할 능력을 상실합니다. 본문 13절에서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면 죄를 범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삶의 동기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욕심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욕심에 사로잡힌 마음은 죄를 짓게 하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유혹이 있을 때마다 대응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죄가 쌓입니다. 죄가 장성합니다. 그 결과 사망에 이릅니다. 영적 죽음과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인생은 도박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착실하게 사는 방법으로는 다람쥐 챗바퀴 돌 듯이 먹고 살기 위해 분주하게 살아가다가 끝나는 인생이 되니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도박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박이 무엇입니까? 여러 사람이 돈을 걸고 게임을 해서 이기는 사람이 다 가지는 것입니다. 운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런데 도박해서 돈을 번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도박이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여기에 메달리는 이유가 무얼까요? 욕심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욕심에 이끌리면 마음이 조급해져서 착실하게 일하지 못합니다. 일정하게 저축하며 목돈을 마련하는 과정이 답답하게 느껴져서 기다리지 못합니다. 뭔가 빨리 결과를 얻으려고 합니다. 대박을 노립니다. 일확천금을 노립니다. 망하는 길입니다.
욕심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으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부정과 불법을 범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빨리 가지려 합니다. 이를 선택하는 순간 죄에 걸려들게 됩니다.
13,14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욕심이 복을 주는 게 아닙니다. 욕심으로 행하면 죄를 범하고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욕심을 부려야 복을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속지 마십시오. 참된 복은 욕심을 부린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참된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야고보는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에게서 온다고 합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누구에게 이런 복을 주십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빛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이 빛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무엇입니까? 진리 안에서 누리는 자유함입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화목한 관계에서 경험하는 평강입니다. 죄의 짐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품에서 경험하는 안식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되는 영생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빛의 자녀로 살아갈 때 얻는 하늘의 복입니다.
18절입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여러 피조물 중에서 우리를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무엇을 하셨는지 말씀합니다. 여기서 ‘첫 열매’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구원의 백성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우리가 ‘첫 열매’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 일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이며 복입니다.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북유럽과 같은 발전된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과 가난한 아프리카의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의 질이 차이가 납니다. 부족함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나서 생계가 보장된 복지 국가 국민으로 사는 것과 먹을 양식이 부족하여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각종 질병에 노출된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 가난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 국민은 삶의 질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것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평화의 나라입니다. 의(義)의 나라입니다. 기쁨의 나라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 영생을 누리게 된 것은 큰 축복입니다.
우리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서,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때 빛 가운데 거하며,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약1:25절 말씀에서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26절에서는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합니다.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절제하지 않고 입으로 말하는 자는 자기 마음을 속이는 자이고,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합니다. 참된 경건은 입으로 하지 않고, 몸으로 실천합니다. 이런 사람이 행하는 일에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욕심에 이끌려 죄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을 정하시길 바랍니다. 욕심을 이루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욕심에 치우쳐 죄의 유혹에 빠지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진리의 말씀을 따라 실천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파스칼이 쓴 ‘팡세’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사람은 인생을 두고 도박을 하는데, 하나님(천국)이 계신다는 데 거는 사람과 하나님(천국)이 안 계신다는 데 거는 사람의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따지지 않고 아무렇게나 살고 심지어 양심을 어기면서까지 악한 일을 한다.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고 후세에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공평하고 정직하며 신의를 지키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힘들어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른다.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고 일생을 살았던 사람은.. 죽어서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서 망연자실하여 절망의 나락 속으로 떨어진다. 반면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고 살았던 사람은.. 영원한 행복과 영생을 누릴 환호와 기쁨을 누린다.”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는 사람과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일생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잘 보여줍니다. 물질을 소유하는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은 하나님 말씀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며, 사랑을 실천하며,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축복을 영원히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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