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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길을 여시는 하나님 (이사야43:14~21)
백종선 2022-04-03 추천 0 댓글 0 조회 1022
[성경본문] 이사야43:14-21 개역개정

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이사야 43 : 14 ~ 21

제목 / 새 길을 여시는 하나님

 

길이 막혀 곤란을 겪은 경험이 있습니까? 운전하시는 분들은 이런 경험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겁니다. 오래전에 겪었던 일입니다. 결혼식 주례를 맡아 신랑의 부모님과 함께 예식장으로 이동하는 중 길이 심하게 막혀 예식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상황이 되어벼렸습니다. 결국 도중에 퀵 서비스를 불러 오토바이를 타고 예식장으로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차가 막혀 꼼짝하지 않을 때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인생의 길을 가다가 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앞뒤가 꽉 막혀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또는 어떤 인생의 길을 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머뭇거릴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은 바벨론 포로생활 중에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잃고 포로로 잡혀가 오랜 시간 동안 힘든 고역에 시달렸지만 여기서 벗어날 길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힘들고 고달픕니다. 그러나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고통의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놀라운 소식을 전하십니다. 14절입니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바벨론 백성)들이 배를 타고 도망가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유다를 사로잡고 있는 바벨론을 무너뜨리시겠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무너지면 유다는 그들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희망의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이야기하십니다. 16,17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바다 가운데 길을 내고,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일시에 엎드러지게 한 적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홍해 도하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홍해 바다 가운데 길을 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나가게 하시고, 뒤쫓아 오는 애굽의 마병들을 물에 수장시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사히 애굽을 빠져나오게 하신 일을 상기시키십니다. 홍해 도하 사건은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누가 홍해 바다를 갈라 건너갈 것이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하나님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군대의 손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홍해 도하 사건을 말씀하시다가 18절에서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갑자기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홍해 도하 사건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놀라운 경험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홍해 도하 사건을 중요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홍해 도하 사건을 이야기하시다가 갑자기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과거의 역사 속에 기억되는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구원 사건을 기억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 구원의 역사를 펼치신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구원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펼치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또한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과거를 회상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 옛날이여~’ 하며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는 이러이러했었는데 하며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립니다. 신앙에 있어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물론 과거의 아름다웠던 기억은 기쁨을 줍니다. 하지만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됩니다. 과거보다 더 아름다운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 70·80년대 일본은 경제 호황기를 누렸습니다. 일본에서 만든 전자제품, 자동차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 수출이 잘되었고 무역흑자를 내며 큰 부를 쌓았습니다. 일본인들은 자국의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컸습니다. 미국이 위협을 느낄 정도로 일본의 경제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일본 경제는 20년 전으로 퇴보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에서 생산되는 제품 중에 주목을 받는 것은 자동차 외에 거의 없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나라보다 적습니다. 일본이 이런 지경에 놓이게 된 것은 과거에서 벗어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디지털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아날로그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디지털 제품보다 아날로그가 더 우수하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전환을 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자신들이 이룬 업적에 취하여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일본의 쇠퇴가 시작되었습니다.

 

과거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과거의 향수에 젖어있어서는 안 됩니다.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십니다. 홍해 도하 사건을 통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펼치신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구원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그러므로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변함없이 구원의 역사를 펼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함께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19절에서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겠다하시며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출애굽 때에는 홍해에 길을 내셨지만 이제 포로된 유다 백성을 위하여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을 강을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포로 백성들을 위하여 구원의 길을 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려면 광야를 통과해야 합니다. 사막을 지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어예루살렘 귀환의 길을 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길을 내시는 분입니다. 길이 없는 곳에 새로운 길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새 길을 내신 하나님은 광야와 사막에도 길을 내셔서 구원의 길을 여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사면초가와 같이 앞뒤가 꽉 막혀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여십니다. 구원의 길을 여십니다. 길이 보이지 않고 앞이 막막할 때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하나님께서 길을 내셔서 새날을 맞이하게 하십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으로 팔려 갔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살았습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갔을 때 앞이 캄캄하였습니다. 아버지의 품 안에서 편하게 지내던 시간은 끝났습니다. 고된 일과 시련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의 인생은 이것으로 끝장이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새 길을 여셔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 자리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막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길을 여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신 새 길을 가기 위해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따라야 합니다.

 

본문 15절에서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신 분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 그와 언약을 맺으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을 창대케 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언약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된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라고 하십니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주권자이심을 밝히십니다.

 

이스라엘이 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다시 민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겸손히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것은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사람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따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새롭게 여신 구원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14:6) 예수님이 구원의 길입니다. 광야와도 같고 사막과도 같은 험한 인생길을 가다가 앞이 캄캄하고 막막한 지경에 놓이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님 외에 구원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여 예수님을 따르면 구원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근원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부차적인 문제에 집착하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4장에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섯 번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을 잘 만나면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 여인은 무더운 날씨에 물이 없어 목이 마른 것처럼 인생의 갈증이 심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내려준 문제의 해결점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고 하시며, 그 샘물이 예수님 자신임을 밝히셨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 동안 해결되지 못하였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의 뿌리에는 죄가 있습니다. 죄는 많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죄는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고 우리의 인생을 병들게 합니다. 죄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문제의 뿌리가 되는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속죄의 제물이 되어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완전한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고, 막힌 길을 열 수 있습니다.

 

둘째, 거룩한 길로 가야 합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소개합니다. 15절에서도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강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므로 너희도 거룩해야 함을 말씀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고 하셨습니다.(11:45)

 

하나님이 내신 구원의 길을 가려면 거룩해야 합니다. 35:8절에서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내신 길은 거룩한 길이므로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고, 구속함을 입은 거룩한 자가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거룩한 길을 결정해야 합니다. 돈이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되지만 돈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한 길을 선택할 때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견고한 인생의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거룩함이 기초가 되지 않은 인생의 집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풍파가 일면 쉽게 무너집니다.

거룩한 길은 거룩한 사람이 갈 수 있습니다. 죄인은 거룩한 길을 가지 못합니다. 거룩한 길을 가려면 내가 먼저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거룩할 때 거룩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거룩한 삶의 능력이 내게는 없습니다. 거룩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수 있으며, 거룩한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17:17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우리가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고 거룩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21절에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길을 인도하시고, 사막에 강을 내어 마시게 하신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함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우리를 거룩한 길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을 따를 때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이 내신 거룩한 길을 선택하여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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