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새벽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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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23:13~26
백종선 2026-04-03 추천 0 댓글 0 조회 2
[성경본문] 누가복음23:13-26 개역개정

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7. (없음)

18.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 / 누가복음 23 : 13 ~ 26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연행된 후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심문을 받으시고 산헤드린에서 재판을 받았다. 산헤드린 재판정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모독한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다. 산헤드린은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기에 예수님을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로 데려간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고 판정한다. 그러자 산헤드린과 무리들이 더욱 강력하게 예수님이 소동을 일으킨 자라고 하며 처벌을 요구하였다. 빌리도의 입장이 난처하게 되자 예수님을 헤롯에게로 보낸다. 헤롯 역시 분명한 의사를 밝히지 않고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한 후 다시 빌라도에게 보낸다.

 

본문은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2차로 재판받는 장면이다. 13~16절에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한 후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은 후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나에게 끌고 왔으나 내가 심문한 결과 너희가 고발한 건에 대하여 죄를 찾지 못하였다. 헤롯 역시 죄를 찾지 못하여 나에게 도로 보내었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다한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사형을 받을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고 선고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나야 한다. 그런데 빌라도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다.

16절에서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한다. 예수님을 처형할 죄를 발견하지 못하였음에도 때린 후 놓아주겠다고 한다. 흥분한 산헤드린과 무리의 요구를 반영한다는 뜻에서 이런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건 분명 잘못되었다. 죄가 없음에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태형을 선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빌라도는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정당하게 판결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움직인다. 이런 우유부단함이 그의 약점으로 노출되었다. 그러자 산헤드린과 무리는 빌라도를 더 거세게 몰아붙인다. 빌라도를 강하게 압박하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8절을 보면 무리들이 일제히 소리 지르며 이 사람을 없이 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하며 더 거세게 요구한다. 갑자기 바라바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누가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17절 생략된 부분이 나온다.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는데 바라바예수님을 놓고 누구를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 이에 대한 반응이 본문 18절에 나온다.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한다. 이들이 이런 주장을 한 것은 그들을 배후에서 조정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무리가 이렇게 외치도록 배후에서 조정한 사람이 누군지 밝히고 있다. 그는 대제사장이다. 대제사장이 무리를 선동하여 이렇게 외치도록 하였다.

바라바가 어떤 인물인가? 19절에서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라고 한다. 바라바는 민란을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빌라도의 입장에서 보면 바라바가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인물이다. 바라바와 예수님을 놓고 누구를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고 물으면 무리가 당연히 예수님을 놓아주라고 할 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조정을 받은 무리는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였다.

20절을 보면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 주고자 재차 무리에게 말한다. 무슨 말을 했는지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아마 앞에서 말한 대로 예수님이 죽일 죄를 짓지 않았으니 태형으로 처벌하자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리의 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하며 외친다.

22절을 보면 세 번째로 무리를 설득한다.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으니 때려서 놓겠다고 한다.

세 번씩이나 설득했음에도 무리의 소리는 줄어들지 않고 계속해서 큰 소리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외친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대제사장이 무리를 선동하여 예수님을 처형하도록 배후에서 조정하였다는 사실이다. 대제사장들에게는 예수님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부담스러운 존재다. 예수님을 그대로 두면 자신들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이를 숨기려고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한다. 무리는 대제사장들의 이런 의도를 모른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대제사장을 추종하며 대제사장이 조정하는 대로 행동한다. 이들은 유대 권력의 실체를 모른다. 이들이 주도하는 유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대제사장은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만 이들은 이용을 당하면서도 이용당하는지 모르고,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무리를 이런 식으로 조정하는 대제사장들이 아주 나쁘지만 이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무리도 결과적으로 보면 나쁜 일에 가담하고 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거다.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분별력이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나쁜 일에 휩쓸린다.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 교수가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는 말을 한 이후에 빌리 그레함을 비롯한 많은 목회자들이 이 말을 인용했다. ‘한 손에 성경이라는 말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한 손에 신문..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균형을 잡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적용할 수 있다. 세상을 모르면 이용당하기 쉽고, 성경을 모르면 맹목적인 신앙이 된다. 말씀을 알고 세상의 실체를 아는 이 균형이 잡힐 때 분별력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실현할 수 있다.

 

빌라도가 세 차례에 걸쳐 무리를 설득하였으나 무리의 요구가 중단되지 않고 더 강해지자 결국 빌라도가 굴복한다. 23절이다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빌라도는 결국 무리가 요구하는 대로 언도한다. 그들이 요구한 대로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한다.

이런 재판은 문제가 많다. 재판은 철저하게 사실관계를 따지고 법에 근거하여 판결을 내려야 한다. 무리가 강하게 요구한다고 하여 판결을 뒤집는 것은 재판의 권위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판사의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다. 헌법 103조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로 되어 있다. 법관은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이 조사한 결과를 가지고 법에 근거하여 판결을 내린다. 재판권을 바로 행사할 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빌라도는 재판관으로 자격 미달이다. 재판권을 가진 로마 총독의 신분을 가진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사도신경을 할 때마다 빌라도의 이름을 언급한다. 불명예스런 이름이다. 삐뚤어진 권세는 사회의 해악이 될 뿐이다.

 

26절은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2차로 재판을 받은 후 채찍에 맞으신다. 그리고 그 상한 몸으로 골고다 언덕을 오른다. 빌라도 관저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약 400~500m에 이른다.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십자가를 직접 지고 올라가야 한다. 경사진 언덕길을 십자가를 지고 4·500m 거리를 오르는 것은 힘들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아 몸을 가누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로마 군인이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불러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오르게 한다. ‘시몬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구레네에서 예루살렘으로 왔다가 로마 군인의 눈에 띄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 시몬은 얼떨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까지 올라가는 수고를 하였지만 이로 인해 온 가족이 구원을 받는 큰 은혜를 입었다. 마가복음에서 시몬을 알렉산더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소개한다. 로마서를 보면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후 마지막 문안 인사할 때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한다. ‘루포는 시몬의 아들이다. 바울은 시몬의 아내를 내 어머니라고 부른다. 이를 보면 바울이 이들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시몬의 가족이 예수님을 믿어 믿음의 형제가 되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둘러싼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재판을 맡은 빌라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무리,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 이들의 역할이 다르다. 이들 중에서 가장 영광스런 역할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 구레네 시몬이다. 그는 비록 시켜서 십자가를 졌지만 가장 값진 역할을 하였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을 직접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큰 영광이다.

9:23절에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하셨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영광스런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주님을 위한 헌신, 교회를 위한 봉사,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은 비록 고되고 힘들지만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영광스런 일이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어떤 발자취를 남기길 원하는가? 앞서가신 신앙의 선배 중에서 어떤 분이 가장 빛나는 삶으로 기억되는가? 부귀영화, 명예, 지위.. 이런 것은 빛이 될 수 없다. 아름다운 향기가 되지 못한다. 주님을 위한 수고와 헌신과 봉사는 영롱한 빛이 되고,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우리 마음을 밝히고 아름다운 향취를 발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될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으로 거룩한 빛으로 아름다운 향기로 영원히 기억되는 삶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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