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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대학
백종선 2020-07-23 추천 0 댓글 0 조회 455

중세의 대학

 

대학은 중세로부터 시작되었다. 중세 대학은 시대의 정신을 이끌어갔다. 중세 문화는 각 지역의 기독교인들이 만들었고 그 문화의 정신적인 면의 상층부에 중세대학이 있었다.

십자군 운동을 통해 동방의 문물이 들어왔다. 이로 인해 이슬람 문화와 헬라 고전이 서방 지성계에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서의 사상이 유입되어 스콜라 철학의 꽃이 피고 문예부흥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그 문명의 전환기에 새 학문을 받아들이고 활용하게 한 것이 대학이었다. 대학은 이러한 학문을 흡수해 발전시킨 대가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교수가 곧 학교였다.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보다는 누구에게 지도를 받았느냐가 학생들의 자부심이었다. 학자의 권위가 높아지면서 학위에 대한 선망도 보편화되었고 도시들은 대학을 유치하려고 열정을 쏟았다. 학자들의 권위가 올라가면서 학교의 명성도 높아지고 대학 교육이 지성의 꽃으로 피어나게 되었다. 학부에서는 문법, 논리 수사학을 가르쳤고, 대학원에서는 음악, 수학, 기하학, 천문학을 가르쳤다. 14세 이상이면 입학할 수 있었고, 강의는 라틴어로만 했다. 학문의 정상은 신학이었고, 스콜라 철학의 기초는 신학이었다.

학문은 책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책값이 엄청나게 비쌌다. 가장 싼 책이 14만원 정도였는데 당시 교수의 1년치 봉급이다. 신구약성경은 700만원을 넘었다. 문법책 하나가 집 한 채 값이었다. 서적들은 쇠줄로 책상에 묶여 있었고 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교수들과 대학원생뿐이었다. 100권 이상의 도서를 소장하는 도서관은 많지 않았다. 책은 대부분 라틴어로 기록되었고, 평민들은 매우 무지했다. 대학에서의 강의는 교과서를 수업 시간에 큰소리로 낭독하고 교수가 자신의 의견을 논평과 함께 첨가하였고, 학생들은 그 내용을 석판에 기록하였다. 학문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암기였다. 강의에 의존하는 교육방법 때문에 여러 가지 학위와 칭호가 생겨났다. 학사, 석사, 박사 외에도 교수라는 칭호가 만들어졌다. 대학생들은 출신 고장의 자부심이었다. 지역 유지와 단체는 뛰어난 학생을 지원하였고 우수한 학생을 자랑하였다.

중세의 가장 유명한 대학은 파리대학이다.교회와 교황의 지원으로 중세의 가장 영향력있는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13세기부터 종교개혁 시대까지 신학연구의 본산지가 되었다. 특히 소르본느 대학교가 신과대학으로 편입하면서 학적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볼로냐 대학은 파리대학교보다 일찍 세워졌다. 1180년 로마법에 정통한 대학자 이르네리우스를 중심으로 만들어졌고, 가장 뛰어난 법과대학이 되었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은 1200년경에 시작되었고 당시 3천명의 학생수를 자랑하였다. 이 학교에서 1209년 떨어져 나온 일단의 교수들과 학생들이 세운 학교가 캠브리지 대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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