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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의 출현
백종선 2020-07-09 추천 0 댓글 0 조회 458

수도회의 출현

 

12세기 말 거지 수도사들이 출현하였다. 수도사의 시작은 가난한 신자들이었다. 이들은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맨 바닥에서 자고, 선물이나 사례를 일체 받지 않았다. 이들의 목표는 이단자들을 개종시키는 것이었다. 수도사의 출현은 13세기 도미니크 수도회와 프란시스코 수도회로 이어졌다.

도미니크는 1170년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상당한 수준의 인문과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20살 때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이단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수도원을 세우고 설교하였다. 그는 무엇보다 신앙의 골격인 교리가 분명해야 방황이 없다는 것을 알고 바른 신앙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는 1214년에 자신의 이상을 따르는 사람들과 조그만 공동체를 결성하였다. 이들과 함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주로 하였고, 이들은 오직 사랑, 동정, 봉사만을 무기로 하여 전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이들은 설교사는 수도사로 불려졌고, 이들은 설교하기 위하여 공부하였고, 연구와 가르침이 그들의 주된 업무였다. 이들은 중세 최초로 학문을 토대로 해서 이루어진 수도회이다. 이들은 여러 대학의 교수로 활약하였고, 지금까지도 가톨릭 대학은 도미니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는데 학문을 통해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해서였다.

프란시스의 본명은 지오반니이다. 이탈리아에 거주하였지만 어머니가 프랑스인이고 아버지도 프랑스와 사업을 하였다. 친구들이 지오반니를 프랑스인이라는 의미의 프란치스코라고 불렀다. 그래서 프란시스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를 좋아했다. 그는 숲 속으로 들어가 가난과 함께 수도를 하였다. 그의 수도회의 규칙은 단순했다. 수도사는 복음서대로 생활한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수도회에 가입하려는 자는 자기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어야 한다. 프란시크는 설교나 학문의 중요성을 거부하고 누구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말없이 행함으로 본을 보였다. 구제가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며 보상을 받지 않고 노동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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