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계시록21:22-2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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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 / 요한계시록 21 : 22 ~ 27
어제에 이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여준다.
22절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사도 요한이 새 예루살렘 성에서 보지 못한 것이 있다. 그곳에 ‘성전’이 없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성전’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며, 사죄의 은혜를 입는 곳이며,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함을 받는 곳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 ‘성전’은 심장과도 같았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 성에는 성전이 없다. 그 이유가 뭘까?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한다. ‘성전’이 무엇인지 정의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가 성전이라 한다. 그렇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계신 곳이 성전이다. 아무리 성전 건물을 궁전처럼 잘 지어놓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성전이라 할 수 없다. 성전의 핵심은 하나님이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성전 건물이 없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이 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새 예루살렘 성’이 곧 성전이다. 그래서 따로 성전 건물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23절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새 예루살렘 성은 해와 달의 비침이 쓸데없다 한다. 해와 달은 빛을 발하여 어둠을 밝혀준다. 해와 달이 없다면 빛이 없어 암흑의 세계가 될 것이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해와 달이 아닌 다른 빛이 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과 어린 양의 등불의 빛이다.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이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가 빛이라는 사실이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이 없다. 은밀하게 숨겨진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난다. 천국이 이와 같다. 이것이 타락한 이 세상과 크나큰 차이다. 타락한 이 세상은 어둠이 많다. 은밀한 곳에서 진행되는 음모가 있다. 거짓과 술수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어둠의 정체를 모른다. 그래서 속는 줄도 모르고 당한다. 그러나 천국에는 어둠이 없다. 숨길 수 없다.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이 빛을 비추고 있으므로 모든 것이 훤히 드러난다. 맑고 투명한 곳이다. 그래서 죄가 틈타지 못하고, 어둠의 일을 도모할 수 없다.
어둠의 권세가 힘을 쓰지 못하도록 하려면 밝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거짓과 불의, 음모, 술수가 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빛이 비치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진리의 빛이 비치면 거짓과 악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여 어둠의 일을 드러내야 한다.
24절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이 말씀은 이사야 60장 말씀의 성취다. 사60:1,3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만국’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말하고, ‘땅의 왕들’ 역시 앞의 20:4절 나온 말씀대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는 구원의 백성을 말한다. 구원의 백성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간다.
벧전2:9절에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 하였다. 이런 영광스런 신분을 가지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영광을 누리게 된다.
구원받은 백성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영광스런 신분을 가지고 있다. 거룩한 나라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왕같은 제사장이다. 이 신분은 천국에 들어가면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이미 이 신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영광스런 신분에 걸맞게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
25절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새 예루살렘 성의 문은 닫지 않고 항상 열려 있다. 보통 성문은 해가 뜰 때 열고 해가 지면 닫는다. 성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다. 밤엔 잘 보이지 않기에 분간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예 성문을 닫아 출입을 통제하여 밤을 이용해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 성문은 닫지 않는다. 거기에는 밤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악의 무리는 불못에 던져진 상태다. 그들의 침략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성문을 잠글 일도 없다. 그만큼 새 예루살렘 성이 안전하다는 말이다.
우리 교회도 안전한 곳이 되어야 한다. 안심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았는데 그것이 비난거리가 되고 상처로 돌아온다면 안심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를 믿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교회가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가족과 같은 곳이 되도록 하자.
26절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간다. 이는 만국 모든 백성이 영광과 존귀를 하나님께 돌림을 말한다.
이 세상은 영광과 존귀를 스스로 취하려 한다. 그래서 서로 이 영광과 존귀를 차지하고자 치열하게 경쟁하며 싸운다. 하지만 막상 영광과 존귀를 차지하면 이를 품위있고 선하게 사용하지 않고, 추악한 짐승처럼 악용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영광과 존귀를 스스로 취하려 하지 않고 모든 영광과 존귀를 하나님께 드린다. 하나님은 세세토록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하나님은 영광과 존귀를 악용하지 않는다. 자비롭고 선하게 통치하시며 우리 모두를 영광스럽게 한다.
27절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새 예루살렘 성에 누가 들어가지 못하는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
누가 들어가는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다. 계3:5절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는 흰옷을 입을 것이며,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이기는 자’는 믿음으로 거듭나 영생을 얻은 자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다.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지키는 자다. 가증한 일과 거짓말하는 자는 들어가지 못하고,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들어간다. 이를 명심하고 자신을 죄로 더럽히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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