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베드로전서1:17-21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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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 / 베드로전서 1 : 17 ~ 21
본문에서 거룩한 삶을 위해 알아야 할 내용을 말씀한다.
첫째, 하나님의 심판이다.
17절.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이니 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움으로 지내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분명히 밝히며 경고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심판하신다. 심판의 기준이 무엇일까? 17절에서 ‘외모’가 아니라 ‘행위’라고 한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나그네 인생을 살아갈 때 행위를 바르게 해야 한다.
본문에서 “두려움으로 지내라” 한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하였느냐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므로 행실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이 땅에서의 유한한 삶’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에 있어 연속성이 있는 것이 있고, 연속성이 없는 것이 있다.
‘외모’는 연속성이 없다. 이 땅에서 우리가 가졌던 육신의 몸을 죽으면 사라진다. 한 줌의 재로 돌아간다. 천국에 가면 새 몸을 입게 된다. ‘재물, 사회적 지위, 권력, 사업’ 이 또한 연속성이 없다. 죽음으로 끝난다. 가지고 갈 수 없다. 죽음과 함께 다 사라진다.
연속성이 있는 것은 ‘믿음’이다. ‘행위’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행위를 보시고 심판하신다.
롬5:1,2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하였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믿음으로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고 한다.
요5:29절에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하였다. 선한 일을 행하였느냐? 악한 일을 행하였느냐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연속성이 없는 것을 위해 사느라 연속성이 있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연속성이 없는 재물, 사회적 지위, 권력, 사업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빛이나 보이지만 죽음 이후에는 소용이 없다. 하지만 연속성이 있는 믿음과 선한 행위는 이 땅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 가면 빛이 난다.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과 면류관을 받고 영원토록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둘째, 헛된 행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18,19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보룬 피로 된 것이니라”
너희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부모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부모의 삶을 이어받았다. 풍습을 이어받고, 종교를 이어받고, 전통을 이어받았다. 베드로는 그 물려받은 것이 ‘헛된 행실’이라 한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헛된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베드로는 너희가 이런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았다고 하며 그 대속함을 받은 것이 은이나 금값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라 한다.
어린 양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았으면 다시 헛된 행실로 돌아가면 안 된다. 다시 과거의 헛된 행실로 돌아간다면 예수님의 대속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는 피다. 그러므로 거룩한 피로 대속함을 받은 사람은 과거의 헛된 행실에서 벗어나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셋째,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21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는 누구를 믿는 자라고 말씀하는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믿음과 소망을 두어야 한다고 한다.
이 말씀에서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어디에 관심과 기대를 두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우리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시는 하나님,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관심을 두어야 한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는 여지없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에 연연하게 된다. 영원한 삶을 생각하지 않는다. 거룩한 삶에 힘쓰지 않는다.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는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 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려 했을 때 이를 극구 말렸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게 되어 복음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갔다. 그 길이 부활에 이르는 길이며, 영생에 이르는 길이며, 영광의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세에 대한 소망이 줄어들고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영생보다 현세에서 복 받고 잘 사는 것을 더 추구한다. 이렇게 살면 거룩함과 멀어지게 된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깨어있게 된다. 구원과 영생을 소망하며 십자가의 길을 가며, 거룩한 삶을 살며, 하나님 만날 준비한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독립운동을 하셨던 안중근 의사는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언도 받기 전날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예수를 찬미합니다.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이 불초자를 너무나 생각해 주시니 훗날 영원의 천당에서 만나 뵈올 것을 바라오며 또 기도합니다. (중생) 드릴 말씀은 허다하오나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온 뒤 누누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천국의 소망이 확실했다. 안중근 의사가 자주 썼던 글이 있다. 천당지목영원지락(天堂至福 永遠至樂)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는 뜻이다.
안중근 의사는 하나님과 천국을 소망하였기에 고난의 길을 가며, 거룩한 자로 살아갈 수 있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주님을 따라 사명의 길을 가며, 거룩한 자로 살아갈 수 있다. 거룩한 길이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그 끝은 영광인 것을 믿고 거룩한 길을 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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