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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1:16-25
백종선 2015-02-03 추천 0 댓글 0 조회 237

성경 / 빌레몬서 1 : 16 ~ 25

제목 / 변화의 능력

 

사도 바울이 쓴 대부분의 서신서 들은 당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관례대로 더디오와 같은 대필자들을 통하여 기록하였는데 빌레몬서는 바울이 친필로 기록한 편지입니다. 19절을 보면...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신의 양식을 보면 교회에게 공적으로 보낸 편지이지만 내용으로 보면 오네시모와 관련된 사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직접 친필로 기록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면 빌레몬서가 과연 성경의 66권 목록에 오를 수 있는 책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성경은 적어도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계시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하나님의 법이나 명령, 교훈, 비밀... 이런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빌레몬서가 성경 66권에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이 빌레몬서에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중요한 복음의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자유케 하는 복음이 들어 있습니다.

16절입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하여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고 합니다.

 

오네시모의 원래 신분은 종, 노예입니다. 빌레몬의 집에서 노예로 지내던 자입니다. 그것도 무익한 종이었습니다.(11)

18절을 보면.. 오네시모는 주인에게 불의를 행하고 재산적인 피해를 입힌 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아예 주인의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 당시 정서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겁니다. 처형을 하고도 남을 만한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하여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고 합니다. 주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도망쳐 나온 그런 노예를 어떻게 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까?

 

바로 여기에 놀라운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복음입니다.

 

세상의 법을 기준으로 하면 주인과 노예의 신분은 분명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노예에게 적용되는 법이 있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입니다. 목숨이 주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주인에게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주인의 말을 거역하면 처벌을 받습니다. 주인의 것을 훔치거나 도망치는 것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법은 다릅니다. 주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계급과 신분을 철폐합니다. 3:28절을 보면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하였습니다.

3:10,11절을 보면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은...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2:8,9절에서는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고전7:22절에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주 안에 있는 자는 모두가 자유인입니다. 누구도 사람의 주인 노릇할 수 없고, 누구도 사람의 종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가 주 안에서 평등합니다. 돈을 많이 가졌다고 사람들 위에 설 수 없습니다. 많이 배웠다고 다른 사람들 위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의 머리는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세상은 계급을 만듭니다. 신분을 만듭니다. 주인과 종을 구분 짓습니다. 그래서 사람 위에 사람을 두고, 사람 밑에 사람을 둡니다. 그래서 사람을 굴복시키고 사람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이런 제도는 누가 만드는 겁니까?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자들입니다. 죄악의 세력들이 만들어 놓은 올무입니다. 이런 계급과 신분의 차별을 두는 것은 정당하지 못합니다.

 

주 안에 있는 사람은 세상이 만든 계급이나 신분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군림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하여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적용시켰던 것이지요.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은 자유케 하는 복음의 법입니다.

먼저 교회 안에서 이 법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부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차별이 사라져야 합니다.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 사이의 차별이 사라져야 합니다. 오래 출석한 자와 새로 입교한 자와의 차별이 사라져야 합니다. 어떤 차별의 벽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고, 만약 이런 벽이 이미 있다면 허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한 가족처럼 하나가 되어 지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세상에서도 이 법이 적용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변혁시켜야 할 대상입니다. 교회는 교회, 세상은 세상, 이렇게 구별하고 세상에 대하여 손을 떼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법에서 벗어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죄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바르게 고쳐 나가야 합니다.

 

이 법을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데모를 하거나 과격하게 투쟁하며 세상을 뒤집어버리는 이런 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깨우쳐서 그리스도의 법을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심한 저항에 부딪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방법대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변화가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유케 하는 복음의 법이 교회와 이 세상에 실현될 때까지 기도하며, 복음으로 살아가며,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힘쓸 수 있기 바랍니다.

 

두 번째, 빌레몬서에 들어있는 중요한 복음의 내용은 대속의 메시지입니다.

 

18,19절입니다.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오네시모가 너에게 불의를 행하고,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내가 갚을 것이며, 네가 내게 빚진 것을 말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오네시모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오네시모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네시모의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라고 합니다. 그를 대신하여 갚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정신이 발견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그 죄과를 돌리지 아니하시고 자신이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신 것처럼, 바울이 오네시모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빌레몬에게도 네가 내게 빚진 것을 없는 것으로 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대속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대속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던 자들입니다. 대속의 은혜가 있었기에 우리가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런 대속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대속의 은혜를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을 사도바울이 실천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자신의 잘못을 보상할 방법이 없습니다. 로마로 도망치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몰라도 주인의 것을 훔쳐서 달아났습니다. 그가 주인에게 끼친 손해를 스스로는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도 바울이 대신하여 갚아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성경은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함을 감당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에 대하여 우리가 모른 척 하지 말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생명의 불씨를 꺼뜨리면 안 됩니다.

 

미국에서는 응급환자가 들어오면 우선으로 치료를 해야 합니다. 법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병원이 치료를 우선으로 하지 않고 치료비를 먼저 요구하면 법에 걸립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그런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의 생명입니다. 최소한 생존은 가능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으로 너와 나를 구분하여 사는 것은 비인간적입니다. ‘너와 나는 하나라는 이 의식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을 나와 상관없는 사람처럼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생각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갈 때 이 세상이 사랑과 정이 오가는 인간적인 세상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여 주신 것은 우리를 남으로 보지 아니하고, 우리를 자신과 하나로 보셨기에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이웃들을 남으로 보기보다 하나 된 관계로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누구하나 실의에 빠지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고 사랑으로 하나 되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가 되어야 하고, 우리의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고민이 우리의 고민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고민이 나의 고민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우리가 하나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서로를 위하여 대속하는 삶이 가능합니다. 바울이 보여준 모습처럼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본받아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며,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빌레몬서는 오네시모라고 하는 한 사람이 교회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세워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노예였습니다. 무익한 자였습니다. 주인에게서 도망친 도망자였습니다. 주인에게 불의를 행하고 피해를 입힌 가해자였습니다. 이러했던 오네시모가...

사도바울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속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그는 새로워졌습니다. 노예에서 한 형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무익한 자가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도망자였던 그가 바울의 충실한 심복이 되었습니다.

 

고대교회의 위대한 순교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이그나시우스라는 사람이 에베소 교회로 편지를 보낸 것이 있는데 이 편지의 수신자가 오네시모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에베소교회의 감독이었던 오네시모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오네시모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네시모는 감독으로서 교회를 섬기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바로 이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틀 통하여 오네시모와 같이 변화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희망촌교회가 바로 이런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은혜의 복음으로 한 생명을 낳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잘못한 사람을 정죄하고 처벌하는 교회가 아니라 용서하며 품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계급과 신분을 뛰어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영혼들이 자유케 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대속의 정신으로 다른 사람들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며 이런 교회로 만들어갈 때 우리 희망촌 교회가 새로워지는 사람, 희망을 찾는 사람, 믿음의 훌륭한 인재들을 배출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며 목격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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