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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영성 (로마서5:8~11)
백종선 2026-02-23 추천 0 댓글 0 조회 44
[성경본문] 로마서5:8-11 개역개정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구원의 영성

성경 / 로마서 5 : 8 ~ 11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첫째 주일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새벽기도회에서 예수님의 공생애를 집중해서 살펴보려 하고, 주일예배에서는 영성을 주제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이 무얼까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반응하는 영적인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입니다. ‘영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삶과 분리해서 영성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성은 삼위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이 저술한 영성의 길에서 영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에 근거하고 예수님을 주로 모신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과정이다

 

기독교 영성은 구원에서 시작합니다. 구원받는 순간부터 영성의 길을 갑니다. 구원은 영성의 길로 들어서는 출입구와 같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음으로 삼위 하나님과 연결이 되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구원이 필요하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의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 구원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 사람이 구원의 하나님을 찾고, 구원의 진리를 알게 되었을 때 값진 보화를 발견한 것처럼 기뻐하며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누가 구원을 간절히 바랄까요? 누가 구원에 대한 갈급함이 있을까요? 죄의 심각성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죄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지 못하면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죄의 심각성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의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인간을 성찰하고, 세상을 깊이 관찰하면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됩니다. 죄가 얼마나 큰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주는지 알게 됩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역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신앙 생활하지 않다가 결혼한 후 아내가 가져온 책 두 권을 읽게 됩니다. 이 책을 읽는 중에 천국과 지옥,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게 되었고 죄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습니다. 존 번연이 자신의 죄에 대하여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하였는지는 그의 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거의 2년간 기도문 형식으로 자신의 죄를 고민하여 아파하는 심정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말씀의 빛 앞에 설수록 몰랐던 자신의 죄가 드러나고,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위선적이고 추악한 죄인인지, 뼛속 깊이 죄에 오염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이 깨달음이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고, 겸손히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오게 합니다.

 

고후7:10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고, 세상 근심이 있습니다. 세상 근심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을까? 를 놓고 근심하는 것이며 이런 근심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죄에 대해 고민하는 겁니다. 구원에 대해 고민하는 겁니다. 이런 근심은 회개에 이르게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근심을 하였습니까? 세상 근심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까? 우리가 진지하게 해야 할 고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죄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이 고민이 있을 때 회개의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C.S.루이스는 우리 시대 최대의 문제는 진지한 구도자가 없는 것이다하였습니다. 구원의 길을 진심으로 찾는 사람이 없는 것이 이 시대의 최대 문제라고 합니다. 구도자가 없다는 것은 구원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죄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시대가 구도자가 없다 하더라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되지 말고 진지하게 구원의 길을 찾는 구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구원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7:7,8절에서 예수님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대로 구도자의 심정으로 하나님께 구하고, 구원의 문을 두드리고, 구원의 진리를 탐구하여 구원의 진리를 발견하고 구원의 길에 들어서길 바랍니다.

구원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많은 사람이 죄짓지 않고 양심껏 살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자신이 얼마나 타락한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실체가 잘 드러나는 곳이 가정입니다. 특별히 부부간의 관계에서 잘 드러납니다. 남편과 아내 앞에서 나는 문제가 없고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자신의 의()로움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 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혼란스럽고 공허하며 흑암이 짙은 카오스의 세계를 질서 정연하고 밝게 빛나며 아름다운 코스모스의 세계로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아름다운 인간을 지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죄 가운데 살며 고통과 슬픔 가운데 처한 인간을 다시 재창조하여 회복하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인간 스스로는 창조의 능력이 없습니다. 회복의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우리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죄의 심각성을 알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구원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보내신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알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구원의 은혜를 입을 수 있길 바랍니다.

 

구원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변화와 회복이 있습니다. 구원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변화와 회복을 구원의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기 전과 구원을 받은 후의 삶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은 고후5: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하였습니다. 구원을 받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째, 의롭게 됩니다.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구원의 은혜를 입으면 의롭게 됩니다. 3:4절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새로운 의()의 옷을 입히십니다. 이것이 바로 칭의(稱義)입니다.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고 새사람이 됩니다. 구원받기 이전에는 죄인의 신분으로 온갖 죄를 지으며 죄 가운데 살아가지만 구원을 받으면 의인이 됩니다. 죄된 삶에서 벗어나 의인의 길을 갑니다. 죄악의 낙을 즐기던 것에서 선한 열매를 맺으며 기쁨을 느낍니다. 어둠의 그늘에서 벗어나 빛 가운데에 거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영성입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 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인간은 그 인생이 헛됩니다.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말씀한 것처럼 모든 것이 헛됩니다. 솔로몬은 최고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솔로몬과 같은 영광을 누린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누린 영광이 헛되다고 합니다. 만물의 근원이시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으면 그 인생이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삶이 공허합니다.

헛되고 공허한 인생을 살아가던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입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입습니다.

본문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말씀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입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때 헛되고 공허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안녕과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립니다.

10절에서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아서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구원받은 사람 안에 예수님이 거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구원은 단회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신 주님과 매일 동행하며 그분의 생명이 내 안에서 역사합니다. 구원의 영성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오늘 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을 때는 로서 살아갑니다.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제, 오늘, 내일의 삶이 변화가 없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나로서 살다가 나로서 끝납니다.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임하는 순간부터 예수님이 내 삶을 주관하십니다. 이전에 나에게 없던 사랑이 살아납니다.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빛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거룩한 향기를 발합니다. 이것이 구원 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영성입니다.

 

넷째,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합니다.

11절에서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합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은 기쁨이며 복입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셔도 부모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최소한의 도의적인 책임만을 감당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부모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님은 한결같이 자녀가 잘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늘 자녀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십니다. 부모님과 친밀한 관계를 나누며 사는 것이 복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각양 좋은 것으로 베풀어주시길 원하십니다.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가면 품어주십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가 낙심할 때 용기를 주십니다. 시험을 만났을 때 극복할 힘을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맺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야말로 큰 복입니다.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성의 정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즐거워하십니까? 아니면 복 주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합니까?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 이 작성한 그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평균 이상의 고소득자가 저소득자들보다 행복감이 높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행복감이 증거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돈이 주는 행복은 한계가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부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좋으면 행복한 나날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실망을 줄 때가 있습니다. 상처를 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영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이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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