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누가복음15:1-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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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길 잃은 양을 찾아서
성경 / 누가복음 15 : 1 ~ 7
세계 1차 2차 대전 이후 지구촌에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도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 지금까지 격동을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떤 이는 세계의 흐름을 10년 단위로 각 세대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전쟁을 경험했던 50년대를 ‘허무의 시대’라 하였습니다. 전쟁에서 모든 것을 잃고 황량한 땅에서 살아야 했던 그 당시의 모습을 허무의 시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60년대를 ‘쾌락의 시대’라 하였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한 정국 속에서 지금 현재의 즐거움과 쾌락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70년대를 ‘히피의 시대’라 하였습니다. 삶의 의미와 분명한 방향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방황하며 뭔가 새로운 이상 세계를 동경하며 살았던 시대입니다.
80년대를 ‘개인주의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자본주의의 무한경쟁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자신이 가진 능력과 힘과 부가 중요시되면서 급격하게 개인화되어 가는 시대였습니다.
90년대를 ‘시장경제의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냉전의 시대가 끝이 나고 자유무역이 본격화되면서 글로벌기업, 다국적 기업이 세계를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2000년대를 ‘무관심의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그 어느 것에도 뚜렷하게 관심을 두지 않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이를 영어로 ‘Noism’ 이라고 합니다. 개인화, 시장화되면서 관계의 깊이가 약화되고, 평생 직장의 개념도 사라지면서 무책임, 무관심이 보편적인 정서가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2010년대는 스마트폰과 SNS의 보급으로 인해 자신을 증명하고 보여주는 데 혈안이 된 ‘전시의 시대’ 입니다. 진정한 관계보다는 ‘보여지는 나’ 의 이미지에 집중합니다. 사람들은 화면 속의 화려한 모습에만 관심을 둘 뿐, 그 뒤에 숨겨진 한 영혼의 아픔과 눈물에는 여전히 무관심합니다.
우리가 직면한 2020년대는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는 ‘격리와 파편화의 시대’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거리두기’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이웃의 생사조차 묻지 않는 고립된 개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두려워 문을 걸어 잠갔듯, 이제는 마음의 문마저 걸어 잠그고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타인의 존재가 서로에게 불편함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적 흐름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면 안 됩니다. 개인화와 무관심으로 인한 고립화 현상을 방치하면 안 된다. 이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며, 심각한 영적 질병 상태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돌아옵니다. 사랑과 관심을 잃어버린 것은 영적으로 뭔가 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이 진심 어린 관심입니다. 나를 영리의 수단이나 숫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로 대해주길 원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며 삶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을 원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진정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벗이 있습니까?
이런 차가운 세상 속에서도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지켜보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며 관심을 갖고 계신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목자와 양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이 어떤지를 보여주십니다.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일백 마리의 양을 치는 목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중 한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양을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목자는 그 양을 포기하지 않고 찾으러 나섭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양을 찾아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았다고 기뻐하며 이웃을 불러 잔치를 합니다.
이것은 잃어버린 한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비유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양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관심을 갖고 계시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사마리아의 ‘수가성’ 이라는 곳에 찾아가십니다. 사마리아 땅은 유대인들이 지나가지 않는 땅입니다. 멀어도 그 땅을 둘러 가면 둘러 갔지 그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에 찾아가셨습니다. 그 이유는 수가성에 있는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부끄러운 과거로 인하여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수치를 당했던 한 여인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다른 어느 날에 예수님은 여리고에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을 찾아가신 것도 한 사람을 위해서였습니다. 민족의 반역자, 친 로마주의자로 미움을 받고 외면당했던 세리장 ‘삭개오’ 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눅19:10을 보면 예수님께서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늘 보좌에서 내려오혀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입었고, 이 시간 예배의 자리에 나와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공생애 기간에는 예수님이 직접 찾아가셨지만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때로는 전도인을 보내어 부르기도 하시고, 때로는 마음에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고 싶은 마음을 주어 주님께로 나아오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에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사람들은 무관심하고, 마음을 닫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관심을 두시며 사랑하십니다.
사49:15,16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이런 관심을 보이시며, 긍휼을 베푸십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어미가 자식을 잊어버리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너를 결코 잊지 아니하고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십니다.
부모가 자식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생사를 확인하기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고 그 자식을 찾아 나섭니다. 하나님은 그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찾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늘 기억하고 여러분도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의 품 안에서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고, 풍성한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과 은혜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셨듯이 하나님은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도록 전해야 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니라”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은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말씀합니다. 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가 나서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이 기쁨을 드리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찾기를 원하시는 그 영혼은 어떤 영혼일까요?
1,2절입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나온 모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시며 음식을 나누시는 모습을 보고 비난합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을 비난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하여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관심을 쏟으시는 대상이 바로 그들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무엇보다 기뻐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세리는 그 당시에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로마 정부에 바치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저주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생각하는 ‘죄인들’은 창녀, 세리, 병자 등, 부정하다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의 눈으로 볼 때 이들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저주 받은 사람들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기꺼이 맞이하셨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외면당하고 버림받는 사람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그들을 치유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이탈리아의 베니스 미술 대학에 ‘파올로 베로니스 Paolo Verone se’가 그린 가로 13m의 대형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그림의 내용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어느 잔치석 상에 앉으신 그림으로 한쪽 구석에는 로마 병사들이 노닥거리고 있습니다. 반대편에는 어떤 남자가 술에 취해 코가 빨개져 있습니다. 주인 없는 개들은 사방을 휘젓고 다니고 군데군데 술 취한 사람들, 난쟁이들, 흑인들이 등장합니다. 이 그림으로 인해 베로니스는 불경죄로 종교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베로니스는 종교재판에 소환되어 이런 불경한 내용의 그림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았습니다. 베로니스는 ‘복음서를 기준으로 보건데 예수님은 그림에 나오는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라고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그의 변호를 들은 재판관들은 분개하며 그 그림을 성화에서 제외시키고 그림의 내용을 수정하라고 명했습니다. 베로니스는 그림에는 일절 손대지 않고 그림의 제목을 최후의 만찬에서 레위 가문의 잔치로 바꾸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세리였던 레위(마태)가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고, 그 자리에 많은 세리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베로니스는 이 구절을 근거로 “이 그림은 엄숙한 만찬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죄인들과 온갖 사람들이 모인 떠들썩한 잔치 장면이다”라고 주장하며 논란을 잠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같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목자와 같이 우리도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이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전도의 대상을 정할 때 편견을 가지고 선을 긋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저 사람은 불심이 강해서, 저 사람은 문제가 많아서, 저 사람은 가난해서, 저 사람은 평판이 좋지 않아서... 이런 저런 이유로 전도의 대상에서 제외합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가리면 전도할 대상을 찾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은 영혼을 우리가 제외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회에서 냉대를 받으며 외롭게 살아가는 분이 있다면 그분들이야말로 정말 구원이 필요한 분입니다. 자신의 시각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하길 원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을 찾아 교회로 데려올 때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으신 것처럼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서 구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목자는 그 양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리저리 찾아다녔습니다. 잃어버린 양을 사랑하기에 포기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찾을 때까지 다녔습니다. 우리에게 이것이 필요합니다.
한 영혼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목자가 가시덤불을 헤치고 험한 계곡을 넘어야 하듯, 우리에게도 인내와 수고가 필요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그 영혼을 꼭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전도하시길 바랍니다.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마음을 품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 영혼을 위해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통해 길 잃은 양이 돌아올 때, 하늘의 잔치가 배설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그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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