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이사야2:1-1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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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5.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6.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7.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8.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9.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10. 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11.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여호와의 빛에 행하라
성경 / 이사야 2 : 1 ~ 12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과거 즐거운 기억을 회상하고, 이번 성탄절에도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은 생각을 합니다. 성탄절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므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뻐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탄생이 어떤 의미가 있고,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은 이사야가 받은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사야가 활동했던 시대에 유다는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악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이와 같은 영적 암흑시대에 놓여 있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본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유다 왕국의 현재와 미래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본문 6~9절에서 유다의 현재 상황을 보여줍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유다의 현재 상황은 동방 풍속이 가득하여 블레셋 사람들같이 점을 치고,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고 언약하였습니다. 금은보화가 가득하고 말과 병거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기보다 자신들이 쌓아둔 금은보화를 의지하고 말과 병거를 방패로 삼고, 자신들을 위하여 만든 우상을 경배하였습니다.
이 시대를 다섯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미신, 사대주의, 물질숭배, 무력 강화, 우상 숭배입니다. 6절 상반절에서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을 버리셨다”고 했는데 유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2절 이하에서 보여줍니다. 2~4절입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말일에 나타날 미래의 모습은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섭니다. 열방의 많은 백성이 여호와의 산에 올라 하나님의 전으로 모여듭니다. 이들은 시온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고 판결하시므로 더 이상 무기를 만들지 않고 전에 있던 칼을 보습으로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를 치거나 전쟁을 연습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말일에 이루어질 평화롭고 영광스런 모습입니다.
유다 백성은 현재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합니다. 점을 치며, 강대국을 의존하고, 물질을 숭배하고, 군사력을 강화하고, 우상을 숭배합니다. 이러한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미래의 평화롭고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미래의 평화롭고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주시며 유다 백성들이 무엇을 소망하고 추구해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십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재 모습이 유다 백성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점을 칩니다. 물질을 모으는 데 집중하고, 강대국을 의존하고, 군사력을 강화합니다. 우상을 가리지 않고 섬깁니다.
백성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안전하고 현명한 줄 알고 여기에 집중합니다. 군사적 대치 상황과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치열한 경쟁 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군사력 강화와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것이 전부라면 현재의 모습이 반복될 뿐 하나님이 제시하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없습니다.
목표와 방향을 바로 설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목표로 삼고 방향을 설정한 대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에 잘 적응하고 대처하여 자기 실속을 챙기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영광스런 미래를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을 바라보며 그 목표를 향하여 나아갈 때 영광스런 미래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2절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하나님께서 말일에 이루실 모습은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서며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 만방이 그리로 모여듭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권이 다른 모든 통치권 위에 있게 될 것임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만왕의 왕이 되셔서 모든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우리가 꿈꾸어야 할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의로우며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할 때 이상적인 하나님 나라가 서게 됩니다.
이 세상에 많은 통치자가 있지만 완전한 통치자는 없습니다. 권력을 잡으면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거나 백성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려 하기보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한 힘을 행사하려 합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손에 쥐고, 백성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 합니다. 자신을 위한 국가를 만들려 합니다. 이런 통치자에 의해서는 이상적인 하나님 나라가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보호하십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과 공의로 다스립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착취를 당하는 사람이 없이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며 참된 복을 누리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그 통치가 우리 안에서 실현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떻게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될까요? 3절 하반절입니다.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하나님이 통치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하십니다. 말씀을 가르치시고, 말씀대로 행하도록 하셔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찬양곡 가운데 김두완 씨가 작곡한 ‘하나님의 교회’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찬양의 가사를 보면... 1절에서 “아름다운 교회는 하나님의 집” 으로 시작하고 3절 가사 마지막에서 교회를 “이 땅 위에 하늘나라” 라고 끝맺음합니다.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의 교회는 이 땅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합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시편 19:7~10절에 하나님 말씀이 지닌 능력을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우리의 영혼을 살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결하고, 진실하고, 의롭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말씀을 순금보다 더 사모하며,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따를 때 우리의 영혼이 살고, 우리가 지혜롭고, 정결하고, 진실하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온전해질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가 꿈꾸며 이루어야 할 세상은 하나님이 높임을 받는 세상입니다.
11절. “그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영적으로 타락한 사람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미신, 사대주의, 물질숭배, 무력 강화, 우상 숭배를 합니다. 이를 하는 이유는 자기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설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가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눈이 높은 자를 낮추시며, 교만한 자를 굴복하게 하십니다.
교만하고 자고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자기를 높이려고 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을 낮추어야 합니다. 자기가 올라서려고 하면 다른 사람을 짓밟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병들게 합니다. 많은 다른 사람을 고통에 빠뜨립니다.
나를 높이고 내가 올라서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높여야 할 분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고 경배를 받아야 할 분입니다.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습니다. 교만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내가 높임 받고, 내가 올라서려고 하는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으시고 인간의 몸으로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사랑으로 연약한 인간을 섬기지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여기에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섬김과 희생으로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만을 높일 때 예수님의 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높이고자 하면 사랑과 섬김 희생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을 높일 때 예수님의 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셋째,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비전은 하나님이 의로서 다스리시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4절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열방 사이에서 판단하시며 백성을 판결하시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다시는 전쟁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준비하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은 공의가 확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힘의 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전쟁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정당한 이유 없이 침략을 당하여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의(義)로서 다스리시면 전쟁을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준비하고 힘써야 할 일은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만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열방 사이에서 판단하시며 백성을 판결하시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생명을 빼앗는 도구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도구로 전환됩니다.
전세계적으로 군사비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모릅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를 비롯한 주요 기관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전세계 국방비 예산의 총액이 약 2조 7천억 달러(USD)입니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3,700조 원이 넘는 규모입니다. 이 돈을 생산적인 곳에 투자한다면 이 세계는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친구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아 살이 찢기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뼈가 부서지고, 물과 피를 다 쏟으시기까지 고통을 당하셨지만 무한한 사랑으로 이를 녹이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영광스런 새로운 미래를 열게 하였습니다.
5절에서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고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보여주신 이 빛에 동참하길 원하십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할 때 하나님과 함께 영광스런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여호와의 빛에 행할 수 있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우리에게 평화와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을 소망하며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겸손하게 응답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예수님이 보여주신 빛의 길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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