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예레미야33:14-1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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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여호와는 우리의 의(義)
성경 / 예레미야 33 : 14 ~ 16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대림절을 준비하려면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전한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의 몰락을 앞두고 있을 때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내용은 유다의 몰락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실 거라는 말씀을 듣고 이를 유다 백성들에게 전하였습니다.
33:4,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전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본문에 등장하는 ‘갈대아인’은 바벨론을 말합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침략했을 때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하나님은 얼굴을 가리고 유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유다의 악행 때문입니다. 유다는 우상숭배를 비롯하여, 하나님을 거역하여 거짓을 일삼고 불의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유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다는 바벨론에게 패배하여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잡혀가 70년간 포로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악에 대하여 분노하십니다. 악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이 악에 대하여 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이유는 악이 많은 사람을 고통과 불행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청소년 학교 폭력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로 회부된 학교 폭력 건수가 3배 이상 폭증하였습니다. 청소년 학교 폭력 사태의 예를 들면 언어폭력 및 집단 따돌림이 있습니다.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유형입니다. 금품 갈취를 하기도 하고 절도를 강요하여 상납하도록 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러한 폭력은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고, 지속적으로 가해집니다. 가해 학생들은 재미로 하거나 돈을 갈취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지만... 이들에게 당하는 학생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합니다. 스트레스 장애를 겪기도 하고, 공포심, 우울증, 분노감, 불안 등 다양한 형태로 고통을 겪습니다. 심지어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이런 일을 당한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가만두고 보시겠습니까? 분노할 겁니다. 응징을 할 겁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고민할 겁니다.
이런 문제는 학교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국가 간에도 이와 같은 악행이 있습니다. 힘을 이용하여 이권을 장악하고, 약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며, 군사적 위협을 하기도 합니다. 악인들의 횡포를 알면 정말 경악할 정도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며 눈물 흘리며 신음하는지 모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우습게 이런 짓을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악인들의 만행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분노하십니다. 응징하십니다. 심판하십니다. 유다에 악행이 만연하였을 때 하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그대로 두지 않고 응징하셨습니다.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를 통하여 죄악의 뿌리를 뽑아 이 땅을 치유하며 정의롭고 공의로운 나라를 세우십니다. 4,5절에서 유다의 악행에 대하여 심판을 말씀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6절에서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것은 악행으로 병든 이 세상을 치료하여 평안과 진실이 풍성한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부패한 상태로 역사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보다 쓰라린 몰락의 아픔을 겪더라도 죄악을 치료하여 진실하고 의로운 나라가 되어 진정한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렘29:11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생각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이 유다 민족을 심판하시는 것은 재앙이 목적이 아니라 그 재앙을 통하여 유다 민족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여 미래와 희망을 주고자 함입니다.
본문 14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준 ‘선한 말이 성취할 날이 이를 것이라’ 하였는데 그날이 어떤 날일까요? 15절에서 그날이 어떤 날인지 말씀합니다.
“그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날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시는 날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11:1절에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날’은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입니다. 그가 오시면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실까요?
이 세상에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것은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율법을 주셨지만 그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사람이 새로워져서 의롭게 될 때 정의와 공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의 정의롭고 공의로운 통치를 따를 수 있도록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셔서 구속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모든 죄에서 사하여 주시고,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의의 백성이 되게 하셔서 주님의 정의롭고 공의로운 통치를 따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다릅니다.
요3:20,21절에서 예수님은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고,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온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거듭나서 의롭게 되면 정의와 공의를 세우기를 원합니다. 믿음으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정의와 공의에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이 어둠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셔서 정의와 공의에 관심을 가지고 이 땅에 정의와 공의가 강같이 흐르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나라가 부패하고 부조리가 있더라도 문제 의식을 갖지 못하고, 자기 욕망을 채우고, 경제적인 부를 쌓는 것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탐욕스럽고 비도덕적인 인간으로 변질됩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탐욕스럽고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이고, 비인격적이라면 그 사회는 건강하지 못합니다. 서로 속고 속이며, 물고 물리며, 고통을 주고받는 지옥과 같은 세상이 되고 맙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북 이스라엘은(여로보암 2세 시대) 군사적, 경제적으로는 매우 부유하고 평화로운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은 부와 권력을 가진 소수 계층의 착취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은 형식적으로는 종교 의식(절기, 제사, 성회)을 열심히 드렸지만, 그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정의와 공의가 완전히 실종되어 가난한 자들이 억압당하고 재판은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암2:6,7절을 보면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힘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정의와 공의가 무너진 북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의인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가난한 자가 이용을 당합니다. 힘없는 자가 짓밟힙니다. 연약한 자의 인생길이 험난합니다.
하나님은 암5:21절에서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모든 종교적 행위를 미워하고 멸시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절기를 지킨다 하더라도 일상에서 불의를 행하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역겨워하십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요구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종교의식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명하십니다.
정의(正義)는 순리대로 법을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돈이나 권력, 인간관계 때문에 법이 왜곡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공평한 대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공의(公義)는 올바른 관계와 행동을 의미하며, 특히 약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를 뜻합니다.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하셨습니다. 물이나 강은 자연스럽고, 끊임없이 흐릅니다. 정의와 공의가 물과 강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되게 하고, 간헐적으로가 아닌 중단됨이 없이 끊임없이 지속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16절에서 “그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라고 합니다. ‘그날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유다가 구원을 받고,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살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날이 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정의와 공의로 다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구원의 날이 임합니다. 어둠의 권세가 무너지고, 거짓과 불의가 힘을 잃고, 정의가 물 같이,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16절 하반절에서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여호와는 우리의 의(義)”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그리스도가 의(義)의 왕이시며, 의(義)로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통치는 의(義)의 통치입니다. 예수님을 권력을 남용하거나 자기 이권을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의(義)로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의(義)’ 라고 하며,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우리의 의(義)’라고 부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하십니다. 로마서 5장을 보면 바울이 ‘한 사람 아담’과 ‘한 사람 그리스도’를 이야기합니다. 롬5:18절에서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하였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의(義)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셨고, 완전하신 예수님의 의(義)를 우리에게 전가(轉嫁)하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성경은 이신칭의(以信稱義)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의(義)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진리입니다. 이 외에 우리가 의롭게 되거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영접한 분은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영접하여 의롭게 되고 구원의 은혜를 입으실 수 있길 축원합니다.
의롭게 되고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면 의인의 길을 가며,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길 원하십니다.(15절)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중요한 이유가 우리를 통하여 정의롭고 공의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이는 오래전부터 하나님이 원하셨던 일이고,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일입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로 거듭나면 어둠에 속한 일을 미워하고, 공의와 정의를 간절히 바라며, 의로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길 원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이 마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강절을 보낼 때 단순히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정의롭고 공의로운 하나님 나라가 서도록 기도하며 자신이 이 열매를 맺는 생명의 씨앗이 되도록 다짐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이를 이루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의 의로운 통치가 실현되도록 의인의 길을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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