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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 노아 (히브리서11:7)
백종선 2025-11-02 추천 0 댓글 0 조회 37
[성경본문] 히브리서11:7 개역개정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믿음의 사람, 노아

성경 / 히브리서 11 : 7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리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 거듭나며, 믿음으로 구원받으며, 믿음으로 선한 일을 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긋나지 않고 바르게 신앙 생활하려면 믿음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하고, 믿음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11:1,2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소망과 다릅니다. 소망은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줄 확신하는 겁니다. 저분이 좋은 분일거야 훌륭한 분일거야 하고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믿고 신뢰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아시고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며, 품은 뜻을 이루십니다.

 

11장은 믿음장입니다.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을 이야기하면서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깨우쳐주려면 믿음에 대한 정의나 이론보다 믿음으로 산 증인을 제시하는 게 더 분명합니다. 믿음은 삶으로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주장해도 자신의 삶으로 증거하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삶으로 증거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말씀하면서 믿음의 증인들을 제시하였습니다.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노아를 제시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믿음으로 노아는으로 시작합니다. 노아가 믿음의 사람임을 먼저 인정하고 들어갑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믿음의 사람 노아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믿음의 사람 노아가 믿음으로 무엇을 했는지 그가 한 일을 이야기합니다. 노아가 방주를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경고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경고의 내용이 창세기 6:13~18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경고의 내용은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하여 홍수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로 심판하시겠다는 경고와 더불어 노아에게 이에 대비하여 방주를 준비하라 하였는데 노아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 순종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겠다고 경고하시며 방주를 만들라 하셨을 때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는 설마 그렇게까지 하시겠는가? 하며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이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하며 묻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큰 방주를 만들라니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하며 손사래 치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두말없이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방주를 건조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번도 지어본 적이 없는 큰 규모의 배입니다. 그 크기가 엄청납니다. 방주의 크기는 길이 삼백 규빗, 너비 오십 규빗, 높이 삼십 규빗입니다. ‘규빗이라는 단위가 생소하게 들릴 겁니다. 1규빗이 약45cm입니다. 미터로 환산하면 길이가 134m, 넓이가 22m, 높이가 13m 가량됩니다. 엄청난 크기의 선박입니다. 누군가 이런 배를 만든 적이 있다면 이를 참조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훨씬 수월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누구도 시도하지도 않은 이런 큰 규모의 배 건조를 처음 시도하면 배 이상으로 힘듭니다. 지금처럼 도구가 발달하지 않았고, 기술력도 발달하지 않은 때입니다. 배를 만들 수 있는 조선소 같은 시설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거대 선박을 만드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노아가 방주를 건조하는데 걸린 시간이 백 여년입니다. 정말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었습니다. 웬만한 인내심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힘든 일을 노아는 거절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노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믿음의 증거가 순종입니다.

순종이 없는 믿음은 진정성이 없습니다. 야고보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며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증거가 없습니다. 보여줄 것이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자에게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하였습니다.

 

순종하는 믿음이 행함이 있는 참 믿음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이 행함이 없는 믿음, 순종이 없는 믿음입니다. 아무리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한다 하더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행함이 없다면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실체가 없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순종이 없는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런 체험이 없습니다. 영적 체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영적 체험하면 신비체험을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 신유의 은사만 영적 체험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영적 체험은 내 삶이 변하는 겁니다. 인격이 변하고, 삶의 목적이 새로워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말과 행실이 달라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순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순종의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으면 믿음의 역사를 이룹니다. 노아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방주를 만들어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펼칠 수 있었던 것처럼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노아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노아는 방주를 건조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경외는 존경하고 공경하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가지는 마음입니다.

노아는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일하였기에 그 힘든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수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품어야 하는 바른 마음의 자세가 경외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바르게 섬길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으면 하나님을 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립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고,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며, 주장하는 자세를 취합니다. 이런 수고는 헛된 수고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그 섬김이 본이 되고, 교회에 덕을 세웁니다.

 

하나님이 홍수 심판을 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은 당시 인류가 죄악으로 심히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6:5,6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심판을 작정하십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노아가 백 년에 걸쳐 방주를 지으며 당시 사람들에게 준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벧전3:20절을 보면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고 합니다. 방주를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돌이키도록 백여 년을 기다렸습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노아가 심판을 대비하여 방주를 짓는 것을 보면서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죄악에 치우친 사람들이 돌이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죄악에 치우친 사람들은 죄를 범하는데 대범합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경고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지나가기만 했을까요? 아마 방주를 짓는 노아를 비난하고 조롱하였을 겁니다. 노아가 어리석은 일을 한다고 손가락질했을 겁니다. 노아를 따돌렸을 겁니다.

신앙에 있어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는 사탄에게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12:30절에서 예수님은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하였습니다. 백 년간 이들은 노아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노아를 이상한 사람처럼 취급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행동을 통하여 자신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순종의 아들임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었습니다. 자신들의 머리에 진노를 쌓아갔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으며 그 시대 사람에게 주는 메시지와 이들이 노아에게 보이는 반응이 매우 대조적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노아를 비난하고 조롱하고 따돌렸지만 노아는 한결같이 방주를 지으며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경고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강력한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결과는 홍수 심판이 시작되는 날 방주의 문은 닫혔고, 방주에 몸을 실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물에 수장되어 죽었습니다.

 

6:9절에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말씀합니다. 그 시대에 유일하게 의인을 길을 가며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에 치우쳤던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하나님과 동행한 의로운 노아를 구원하시고 그를 통하여 새로운 인류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7:13,14절에서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하였습니다.

믿음의 길, 생명의 길, 의의 길을 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지만 죄인의 길,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은 많습니다. 이 세상은 죄악이 관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죄악에 치우쳐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죄와 타협하고 거짓을 일삼는다고 하여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죄인의 길을 가면 많은 사람과 함께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노아와 같이 바른 믿음의 길을 가면 많은 사람이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비정상인 사람으로 몰아갑니다. 여기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믿음의 길, 의인의 길은 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노아처럼 비난과 조롱을 받기도 합니다. 여기에 흔들리면 안 됩니다.

우리가 가야하는 길은 믿음의 길입니다. 순종의 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십자가의 은혜, 구원의 은혜, 의롭게 하시는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이 은혜를 입을 때 믿음의 길, 순종의 길을 갈 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믿음의 주가 되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로 가고 있습니까?

넓은 길입니까? 좁은 길입니까? 순종하는 믿음의 길입니까? 행함이 없는 헛된 믿음의 길입니까?

노아의 본을 따라 순종하는 믿음의 길을 갈 수 있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입어 노아와 같이 의롭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구원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 우리 희망촌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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