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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심는 자가 되라 (로마서8:18~25)
백종선 2025-07-07 추천 0 댓글 0 조회 29
[성경본문] 로마서8:18-25 개역개정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소망을 심는 자가 되라

성경 / 로마서 8 : 18 ~ 25

 

불완전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고통과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안고 살아야 하는 삶의 한 부분이며,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자기 삶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인간이 겪는 고통의 양상은 다양합니다. 육체적인 고통, 경제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사회적 고통 등이 있습니다.

질병, 사고, 신체적 장애, 노화로 인해 겪는 육체적 고통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은 다른 생활에 영향을 끼칩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거나 신체적 활동에 어려움이 있으면 다른 모든 생활에 제동이 걸립니다. 그래서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경제적 고통이 있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 물질입니다. 돈이 있어야 먹고, 입고, 자고, 이동하고, 배우고, 원하는 바를 할 수 있기에 돈을 벌기 위한 경제 활동을 합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면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 제약이 따릅니다. 미래가 불안합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몸이 망가져도 일해야만 합니다.

정신적 고통이 있습니다. 소외로 인한 외로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인한 충격,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 그 외 다양한 이류로 불안과 두려움, 우울함을 겪기도 합니다.

사회적 고통이 있습니다. 각종 차별로 인해 겪는 갈등이 있고, 불평등으로 인해 겪는 불이익이 있고, 사회적 약자이기에 겪어야 하는 억울함이 있고, 인간을 도구화하는 비인격적인 사회에서 겪는 삭막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이런 다양한 고통은 세상과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비롯되었고, 이 모든 것의 뿌리에는 죄가 있습니다.

 

세상과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겪게 되는 고통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며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양한 고통이 있는 세상에서 고통을 최소화하고 자신의 안위를 확보하고자 살길을 찾아 나설 수 있고, 어차피 세상살이는 고통스러운 것이니 이를 감수하며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체념하듯 살아갈 수 있고, 고통의 원인이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기초를 놓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을 선택하고 가고 있습니까?

 

죄악으로 무너진 세상과 인간의 부패로 인해 겪는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지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고난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죄악으로 무너진 세상과 인간을 회복하여 영광의 날이 오도록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죄악으로 무너진 세상과 인간을 회복하는 일은 말씀 한마디로 되는 게 아닙니다. 죄를 대속하는 피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새 생명으로 거듭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거룩하게 변화되는 성화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거룩하고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성화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모든 백성을 다스리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입은 우리는 이제 고통이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본문 앞의 17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셨기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는 영광의 날이 도래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예수님이 가신 고난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지 않으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지 못합니다. 농부가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려면 이른 봄부터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합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거둘 수 없습니다. 수고의 땀을 흘려야 수확의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확을 원하지 않는다면 수고의 땀을 흘릴 필요가 없겠지만풍성한 수확을 원한다면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합니다. 영광의 날을 맞이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바라는 마음이 없으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겁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모두가 행복한 가정을 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행복한 가정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왜 그럴까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수고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면 가정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가장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가정을 만들기 위한 아내의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은혜를 알고 부모님의 수고와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배움에 힘써야 합니다. 가족들이 이렇게 자기 역할에 충실할 때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수고와 헌신, 성실함이 없이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광의 날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영광의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영광의 날을 간절히 소망해야 합니다. 간절한 소망이 없이는 어떤 일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간절한 소망이 있을 때 이것이 동기가 되어 영광의 날을 바라보며 영광의 날을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광의 날을 위하여 고난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난 없이 위대한 역사를 만들 수 없습니다. 위대한 뜻을 이루려면 이에 상응하는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두 번에 걸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구약에 나오는 출애굽 구원 사건이고, 또 한번은 신약에 나오는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역사입니다.

구약을 보면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류가 멸망의 길로 갈 때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려고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의 후손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부터 아브라함에게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그들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비전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비전이 이루어질 줄 믿고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은 낯선 곳입니다. 생소한 곳입니다.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약속하는 것을 믿고 힘든 나그네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이삭, 야곱, 요셉 역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소망하며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그 길이 험난한 길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을 바라보며 좁을 길을 갔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 거룩한 나라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신약에 나오는 구원의 역사 역시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셨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이 분부하신 대로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며 고난의 길을 갔습니다. 이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었고, 세계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구원의 역사는 끝난 게 아닙니다. 우리도 복음의 사명을 이어받아 믿음의 선배들처럼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님을 따라 고난의 길을 갈 때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본문 18절에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합니다. 우리가 왜 십자가의 길을 가며 고난을 감당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줍니다.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고난이 따르지만 이 고난을 통해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스럽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배움의 과정이 쉽지 않지만 힘들게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배움을 통해 자신의 능력이 향상되고, 사회에 진출하였을 때 소중하게 쓰임 받기 때문입니다. 만약 열심히 공부하는 수고를 하였는데 사회에 진출하였을 때 별 차이가 없다면 공부를 열심히 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수고와 고난이 크다 할지라도 이를 인내로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장차 누리게 될 영광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비슷합니다. 힘든 일을 피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갖길 원합니다. 부담과 책임을 지는 일을 피하고 혜택은 누리고 싶어 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살면 어떤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희망의 날을 만들 수 없습니다.

 

기복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죄로 인해 감당해야 할 모든 고난을 감당하셨기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고난은 없고, 예수님이 베풀어 주시는 축복만 있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이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 길이 비록 좁고 힘들어도 그 끝에는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크고 넓은 길은 편하지만 그 끝은 멸망입니다.

넓고 편한 길로 갈지, 좁고 험한 길을 갈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으나 그 결과는 여러분이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의 길을 가는 자는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겠지만 현재 이 순간을 편하게 지내고자 십자가를 피하면 마지막에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의 날이 닥치게 될 것입니다.

 

22절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 다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피조물이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19절입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피조물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야 탄식과 고통이 끝나고 영광스런 날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절입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 피조물들이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를 수 있기에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길 고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이를 위해 기꺼이 수고하고 헌신하는 충성스런 구원의 백성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영광의 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 희망촌교회 성도들은 우리 교회가 영광스런 하나님의 교회가 되길 원할 것입니다. 죄악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리의 빛 안에 거하며 사랑과 거룩함과 화평함이 있고, 아름다운 사귐이 있는 교회가 되길 소망할 것입니다. 이를 소망한다면 소망을 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광스런 교회로 세우기 위해 기꺼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를 감당할 때 영광스런 하나님의 교회로 서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회피하고, 고난을 감당하지 않으면 영광스런 교회를 세울 수 없고,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희망촌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고 영광의 날을 소망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즐거이 헌신함으로 영광스런 희망촌교회를 세우고, 주님 재림하시는 날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에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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