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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코마이 (사도행전10:24~35)
백종선 2025-05-12 추천 0 댓글 0 조회 47
[성경본문] 사도행전10:24-35 개역개정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데코마이

성경 / 사도행전 10 : 24 ~ 35

 

기원전 3세기 무렵에 지구상에 대규모 두 종류의 토목공사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중국에서 만리장성을 쌓는 공사가 시행되었고, 하나는 로마에서 세계로 이어지는 도로공사가 있었습니다. 8km에 이르는 간선도로와 7km에 해당하는 지선도로를 놓았습니다.

이 두 종류의 공사 모두 수많은 인력과 재정이 투입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시공하였습니다. 이 두 공사가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놀랄만한 공사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성격은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로마는 지중해 연안 뿐만 아니라 서쪽으로는 영국, 동쪽으로는 실크로드, 남쪽으로는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토를 다스렸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길게 뻗은 도로망이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를 연결하는 도로였습니다. 이 도로 때문에 왕래가 용이하였고, 세계 문화가 활발하게 교류되어 로마 문화가 크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중국은 그들이 가진 기술력으로 만리장성을 만들었습니다. 성을 쌓는 것은 길을 닦는 것과 전혀 다른 일입니다. 성을 쌓는 것은 교류가 아니라 담을 쌓는 것입니다. 당시 중국은 자신들을 중화(中華)라고 여겼습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가장 우수한 나라라고 하는 중화사상을 심었습니다. 이들은 만리장성을 쌓고 성 안에 있는 자신들은 중화(中和)라고 하고, 다른 나라를 오랑캐(미개한 민족)라 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과 다른 민족을 차별하며 무시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로마가 놓은 도로와 중국이 쌓은 만리장성 중에 어느 쪽이 바람직하다 생각합니까?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만 관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로마의 도로가 훨씬 바람직합니다.

 

성을 쌓는 이유는 자신의 왕국을 강화하고 보호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담이 있는 큰 집을 짓는 사람도 이와 비슷한 심리가 있습니다. 집 안을 왕궁처럼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호화롭게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며 우리는 다른 사람과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하면 자신에 대한 긍지는 높아질지 모르지만 차별의식이 생겨나고 관계가 차단되고, 계층간에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자기 성을 높이 쌓으려고 하기보다 차별의 벽을 허물고 이웃과 소통하며 관계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일 때 갈등이 해소되고 적대관계가 사라지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벽을 허무시고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복음은 모든 벽을 허뭅니다. 이방인의 벽을 허물었고, 신분의 벽을 허물었고, 남녀차별의 벽을 허물었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 복음의 정신으로 벽을 허물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관계의 발전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본문은 베드로와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가 만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만남입니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이 특별하게 보이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아주 파격적인 만남입니다.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은 매우 높았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사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은 부정한 백성이라 생각하여 이방인을 만나는 것은 삼갔습니다. 이런 의식이 팽배했던 당시에 베드로와 이방인 고넬료가 만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큰 문제의 소지가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은 하나님이 주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대하여 특별한 경계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셨기에 매우 주도면밀하게 이 만남을 추진하십니다.

먼저,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하시며 베드로가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는 환상을 통하여 특별한 계시를 보여주십니다. 하늘에서 보자기처럼 생긴 큰 그릇을 내려옵니다. 그 안에는 각종 네 발 달린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큰 소리로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고 하는 음성이 들렸고, 베드로는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것을 먹을 수 없다며 거절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합니다. 이런 일이 세 번 반복된 후 보자기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베드로는 이 환상을 보았으나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 의아해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일행이 베드로의 집을 방문합니다. 전혀 알지 못하던 낯선 사람들 방문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베드로에게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성령은 베드로에게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마시며 함께 가라 하십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서 오게 되었는지를 묻고 백부장 고넬료가 천사의 지시를 받고 당신을 초청하였다는 대답을 듣고 다음 날 그들과 함께 가이사랴로 갑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 고넬료와 그의 친척들과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베드로 앞에 절하며 맞이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들을 일으키며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말합니다. 28, 29절입니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하는 것이 위법인 줄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위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이방인의 초청에 응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고 하셨기에 사양하지 않고 여기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넬료에게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는지 묻습니다. 고넬료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나흘 전에 하나님의 사자가 흰옷을 입고 나타나 네 기도와 구제를 기억하였다고 하며,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하셔서 초청하게 되었다고 대답하며 이제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하나님 앞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모인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열어 말합니다. 34,35절입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그 후에 고넬료를 만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나라와 민족의 장벽을 넘어 다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가 깨달은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발견입니다. 성경에서 베드로와 이방인 고넬료의 만남 과정을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비중 있게 다루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 복음이 이방으로 확장되고,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 결정적 사건이 이방인 고넬료의 회심 사건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유대인들은 이방인에 대하여 매우 폐쇄적이었습니다.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장벽이 높았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그만큼 이방인에 대해 철저하게 경계했습니다. 이 장벽을 허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초대교회가 부딪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옳으냐? 이 문제를 가지고 교회 내에 큰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 갈등을 푼 열쇠가 바로 고넬료의 사건입니다. 베드로는 이 고넬료와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나라와 민족의 장벽을 넘어 다 받으신다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았기에 베드로의 활약으로 이 문제를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교회 역사에 큰 전환점을 이루었습니다. 복음이 유대인의 장벽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깨어지지 않았다면 복음이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유대에 머물러 있었을 겁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나라와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어 다 받으신다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밝혀졌기에 세계 선교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34, 35절에서 베드로가 한 말씀입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받으신다는 말은 헬라어로 데코마이(δέχομαι)입니다. ‘환영하다’ ‘받아들이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걸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모두 다 받으십니다. 인격적으로 받아들이십니다. 그래서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우리와 동행하시며 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신데 반해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인데 반해 인간은 죄악의 악취를 풍기는 추악한 죄인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인간을 데코마이하신다는 것은 상상하기 조차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인간을 받으셨습니다. 인격적으로 받아들이시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를 받아 영광스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데코마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신 자를 우리가 거부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허무신 장벽을 우리가 다시 세우면 안 됩니다. 나와 다르더라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영접해야 합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되며, 분별해야 합니다. 35절에서 하나님은 누구를 다 받으셨습니까?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나라 사람이라도 회개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이라면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아들인 사람을 거부하면 안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큰 분열에 휩싸여 있습니다. 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분오열되어 갈라져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큰 숙제입니다. 한국 교회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하는 교회가 여러 교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각 교단 총회나 노회에도 세력을 형성하고 분쟁하는 일이 있습니다. 개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 간에 감정의 골이 깊이 패여 대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넘어서지 못하면 선교의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희망촌교회 교우 여러분! 성도 중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닫혀 있는 대상은 없습니까? 하나님이 받아들인 사람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간적인 편견을 내려놓고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임으로 우리가 하나 되고, 받아들이는 능력으로 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 이 지역사회를 복음화하는 우리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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