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18-21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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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고린도전서 1 : 18 ~ 21
성경 / 하나님의 지혜, 십자가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종교의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종교가 있습니다. 왜 종교가 있는 것일까요? 인간의 삶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일을 겪습니다. 가난, 질병, 자연재해, 우환, 사고, 죽음 등 삶의 위기를 겪기도 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 여기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지고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게 됩니다. 그래서 특별한 힘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대상을 신으로 생각하고 그 앞에 가서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며 도움을 요청합니다. 어떤 사람을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고, 어떤 사람은 달을 숭배하고, 어떤 사람은 큰 산이나 바위, 나무를 숭배하고, 어떤 사람은 가축을 숭배하기도 합니다. 종교가 발달하면 신상과 신전을 만들어놓고 제례 의식을 행하고, 종교법전이나 신화를 기록하여 가르치며 전수합니다.
지혜가 발달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종교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섰다 생각하고 종교를 심약한 사람이 스스로 설 수 없어 신에게 기대는 도피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반 종교는 이러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는 이유가 불완전한 인간이 겪는 삶의 위기에서 도움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심약한 자들의 도피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믿는 것은 일반 종교와 차원이 다릅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신을 만들어놓고 신을 찾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찾아오셔서 구원을 베푸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이 부패하여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막고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기독교가 일반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기독교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따릅니다.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임을 믿습니다. 만약 교회를 다니지만 십자가의 도를 알지 못하고, 다른 종교처럼 도움을 받기 위한 것이 교회를 다니는 이유라면 기독교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많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할 때 붙들어 주십니다. 위기를 면케 하십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은 믿는 궁극적인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입니다.
총신대학교 총장으로 지내신 김의환 박사가 한국교회를 걱정하며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외적인 부흥을 자랑하지만 내적인 수술을 필요로 하는 중병을 앓고 있다. 구속의 복음과 십자가를 외면하고 물질, 건강, 명예, 권력과 같은 세속적인 번영을 강조할 때 교회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세속화의 물결에 휩쓸려 소멸되고 말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물질, 건강, 명예, 권력과 같은 세속적인 번영을 바라고 교회를 다닌다면 기독교의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며 기독교 신앙의 위기를 초래할 겁니다. 이건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입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본문 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합니다.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미련한 것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 합니다. 십자가의 도를 어떤 사람이 미련하다고 합니까? 멸망하는 자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까? 구원받는 자들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지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십자가의 도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왔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로는 깨닫지 못합니다.
고전2:7절에서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합니다.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합니다. 감추어졌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합니다. ‘만세 전’ 영원 전이란 말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유한한 인간은 이를 알 수 없습니다.
2:8절에서는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롭다고 여기는 통치자들도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도’를 알지 못하기에 인간의 지혜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인간의 지혜는 우리를 새롭게 하지 못합니다. 온전하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중세사회를 주도했던 중세교회 가톨릭이 부패하였을 때 많은 사람이 실망하고 가톨릭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중세시대가 저물고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인문주의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인간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고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중요시하는 시대입니다. 그들은 신을 믿지 않아도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공장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런 변화를 경험하면서 인간의 지혜를 신뢰했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유토피아와는 달리 약탈과 착취의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세계 열강들은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국가 간에 전쟁이 빈번하였으며, 1·2차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을 겪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지금은 인간의 지식과 능력이 최고조로 달하였습니다. 컴퓨터, 인터넷, AI로봇, 쳇GPT 등이 나오면서 무한한 지식과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집에서 책상에 앉아 세계 모든 지식과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자동차 공장을 대규모로 지었는데 그 공장에는 직원보다 로봇이 많다고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로봇으로만 자동차 생산이 가능한 시설을 갖추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기술력이 이렇게 발달하였음에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유토피아와 같은 세상이 만들어졌습니까? 경쟁이 더 치열해졌습니다. 갈수록 더욱 치열해질 겁니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은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경제는 어떻습니까? 더 어려워졌습니다. 경쟁력이 있는 대기업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지만 경쟁력이 없는 중소상인과 중소기업은 문을 닫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위기에 몰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복되게 하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복된 삶은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도’의 능력을 깨닫고, 십자가의 도를 따를 때 가능합니다.
신학자 ‘위르켄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란 그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 기독교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기독교가 기독교가 될 수 있는 그 독특성이 무엇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기독교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가장 강력한 능력입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이 수긍이 가십니까?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가 과연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걸까요?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죄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죄인은 죄를 범합니다. 죄인에게서 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선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죄입니다. 이런 상태로서는 복있는 인생을 살 수 없고, 저주 아래 놓이게 됩니다. 타락한 죄인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본질적인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의인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옛 사람을 새 사람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둠을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한 사람 예수님만의 죽으심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죄와 허물을 짊어지시고 죽으셨고, 사흘만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연합한 자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로 살아납니다. 옛사람에 대하여 죽고 새사람으로 살아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연합하면 새롭게 거듭날 수 있습니다. 벧전2:24절에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 가운데 살던 사람을 의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바울이 복음의 증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백성의 혈세를 빨아먹던 삭개오가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는 사람으로 변하였습니다. 주인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던 오네시모가 바울을 돕는 복음의 협력자로 변화되었습니다. 폐륜아였던 어거스틴이 교회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성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민족과 국가를 변화시킵니다. 폴란드 독재자 ‘야루젤스키’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군 출신으로 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거쳐 폴란드의 당서기장의 자리에 오른 그는 1981년에 계엄을 선포하고 물리적으로 국가를 지배하려고 하였을 때 폴란드 교회가 일어나 나라를 지켰습니다. 이때 폴란드 교회가 외친 구호가 “십자가가 없이는 조국 폴란드도 없다”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가난한 국가들이 빈곤에서 벗어나고, 독재 국가가 민주국가로 바뀌고, 노예제도가 사라지고, 술과 마약과 음란함으로 타락한 사회가 깨끗한 사회로 바뀝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능력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죄에 깊이 물들어 있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진정한 사랑을 할 줄 모릅니다. 사랑을 상실한 인간은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정말 불행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병든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상실한 인간은 많은 무리 가운데 있어도 우주의 미아가 된 것처럼 고독합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이를 잘 보여주는 예화가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고 싶어하는 랍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천국과 지옥을 보여달라고 하자 흔쾌히 허락하였습니다. 랍비가 문을 열고 보니 식탁에 다양한 음식이 먹음직스럽게 진열되어 있었고,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식탁을 두고서도 배고파서 소리를 지르며 괴로워하였습니다. 이들의 손에는 긴 숟가락이 들려 있었는데 너무 길어서 자기 입에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요리가 그들 앞에 있었지만 먹지 못해 괴로워하였습니다. 그 다음 장소로 옮겨갔을 때 앞에서 본 식탁과 똑같은 음식이 진열되어 있었고, 사람들의 손에는 긴 숟가락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웃음소리를 만발하였습니다. 이들은 똑같은 긴 숟가락을 가지고 있었으나 팔을 뻗어 서로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고 있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이 천국이고, 사랑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사랑이 없는 부부, 사랑이 없는 가정, 사랑이 없는 교회 행복할 수 없습니다.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은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죄인을 사랑한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려면 욕심을 제어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본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으로 사랑할 때 우리 삶이 아름다워지고 기쁨이 가득한 천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온 나라와 세계가 평화를 누리며 함께 노래하는 이상적인 세계가 될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에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사랑의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죄의 권세를 이기는 승리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를 마음에 새기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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