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호세아6:3 개역개정
-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힘써 여호와를 알자
성경 / 호세아 6 : 3
본문을 기록한 호세아 선지자는 여로보암 2세가 북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을 때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본문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합니다. 호세아가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힘주어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타락의 길, 멸망의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4장 1절 이하를 보십시오. 1절에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며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진실이 없고, 인애가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면 진실하게 살고,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선하게 살려는 의지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자기 본능에 이끌려 욕심을 부리고 자기 만족과 쾌락을 추구하며 온갖 죄를 범하게 됩니다.
2절에서는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 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에는 ‘저주와 속임과 실인과 도둑질과 간음과 포악하여 피가 피를 부르는 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6절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온갖 죄악을 일삼았고, 이로 인해 망해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여로보암 2세 때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 2세가 죽은 이후 약 20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왕이 6번이나 바뀌는 큰 혼란을 겪었고, 마지막 왕 호세아 때에 앗수르에 의해 점령당하여 몰락하고 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점점 몰락해가고 있을 때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행위가 얼마나 악한지 알지 못하였고,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거룩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어 그들과 언약을 맺고, 율법을 주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여 거룩한 나라를 세우려고 하셨는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가나안 백성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온갖 죄를 저지르니 이를 지켜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실망스럽고 비통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특별한 지시를 내립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라”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세 명의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고멜은 가출하여 이 남자 저 남자의 품에 안기며 음란을 일삼습니다. 여러분! 이런 아내를 둔 남편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분노와 울분이 올라오지 않겠는가? 괴씸하게 생각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바람이 나서 음란을 일삼는 아내를 데려와서 사랑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호세아에게 음탕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시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은 후에도 음란을 일삼은 이 여인을 데려와 사랑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음란한 여인 고멜을 통하여 지금 이스라엘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깨우쳐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죄악의 낙을 즐기는 이스라엘이 바로 고멜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음란한 아내를 지켜보는 호세아의 심정이 곧 타락한 이스라엘을 지켜보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이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도덕이 무너지고, 음란하게 된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이스라엘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범죄하고, 타락하고,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교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에 참석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범죄하고 타락의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인류는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수 천 년 동안 나온 지식의 양보다 최근 1세기에 나온 지식이 더 많습니다. 지금은 인공 지능이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판단합니다. 지식으로는 인공지능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바둑이 경우 인공 지능을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최근에는 자율주행이 가능해졌습니다. 전면적으로 실시되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운전자가 없이 자동차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운행합니다.
지식의 발전이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지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갈수록 인간관계가 해체되고 있습니다. 관계의 깊이가 약해지고 있습니다. 개인주의화 되고, 고립되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양상을 보면 무기가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멀리서 미사일을 발사해도 목표물에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습니다. 깜깜한 밤에도 대낮처럼 지형지물을 파악하여 타격을 가합니다. 반면 방어하는 입장에서도 날아오는 미사일이 목표물에 도달하기 전에 공중에서 폭파시킵니다. 전쟁이 기술의 축약이라고 할 만큼 최고의 기술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기술은 발전했으나 사람을 죽이고, 시설을 파괴하는 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전쟁을 막지 못합니다.
지식의 발달과 함께 범죄도 지능화되고 있습니다. 기업의 전산망을 해캥하고 들어가 기업의 정보를 빼가거나 내부 업무를 방해합니다. 지식의 발전이 범죄를 막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살면 헛된 것을 추구하며 죄를 일삼다가 허무하게 끝납니다. 이런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시편에서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 하였습니다. (시49:6~13)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촉구하였습니다.
참된 신앙의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힘써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 멸망의 길이 아니라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교회문만 밟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하루아침에 알 수 없습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하나님을 알려고 힘쓸 때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려고 힘쓰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와 설교를 듣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교우 중에 새벽 기도회를 비롯하여 수요기도회, 전도대 교육 등 교회에서 진행하는 모든 모임에 참여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주일 예배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을 알아가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 겁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을 알고자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전혀 몰랐을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렸습니다. 선지자들이 활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 땅에는 진실이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고 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들이 머리로 만들어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항상 자신들의 편에서 승리를 주고, 위급할 때 SOS를 치면 도와주고, 필요한 것을 요구하면 채워주는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내팽개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창고에 처박아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하나님을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밝히 드러내셨을 때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주님을 죄인으로 몰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자신들이 기대했던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정치적 메시아입니다. 이스라엘을 로마의 속박에서 건져내고, 강대한 나라를 이루어 세계를 다스리는 나라로 세우는 메시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들의 기대처럼 행동하지 않자 예수님을 신성을 모독한 죄인으로 몰아 십자가형에 처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하면 이런 식으로 하나님과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믿으면 미신적인 신앙이 됩니다. 미신에는 말씀이 없습니다.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소원성취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이런 식의 신앙이 됩니다. 내 소원보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고, 소원 성취에만 관심을 둔다면 참된 신앙이 아니라 미신적인 신앙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장 애쓰고 힘써야 할 일은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두 가지를 힘써야 합니다.
첫째, 성경을 읽고 배우며, 성경에서 계시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지식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속성을 가지셨는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배워야 합니다.
배우려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말씀을 듣고, 배워도 머리에 남지 않습니다. 근성으로 듣고, 재미가 없으면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배울 수 있습니다. 성경에 줄을 그어가며, 노트에 메모하며, 신앙 서적을 읽으며 성경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야 합니다.
성경을 배우면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오류를 바로잡아 갑니다. 성경을 배우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우리가 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쌓는 것이라면, 두 번째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사귐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사귐을 가질 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영적인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십니다.
하나님이 새벽 빛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날을 여시는 구원의 하나님, 생명을 소생하게 하는 생명의 주가 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둠으로 가득했던 세상에 새벽빛이 비치면서 생명의 기운이 돌고 모든 만물이 활기를 찾습니다. 새들이 노래하고, 식물들이 고개를 들고, 잠들었던 생명들이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은 건기와 우기가 뚜렷합니다. 건기에는 비가 오지 않아 식물이 말라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기가 되어 비가 내리면 말랐던 식물들이 되살아나고 생명의 기운이 감돕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 새벽 빛이 임하는 것과 같이, 늦은 비가 내리는 것 같이 모든 것이 살아나 약동하게 됩니다.
죄악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멸망의 길에서 돌이킬 수 있습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11:9에서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거룩한 나라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에 충만할 때 이루어질 것임을 말씀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대로 힘써 하나님을 알아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