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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에 이르라 (로마서6:23)
백종선 2024-03-04 추천 0 댓글 0 조회 65
[성경본문] 로마서6:23 개역개정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영생에 이르라!

성경 / 로마서 6 : 23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있습니다. ‘죽음입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하나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있을 영생또는 영벌입니다. 9:27절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이 맞이하게 될 엄연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진지하게 생각하려 않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우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죽음의 문제를 회피하면 안 됩니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이를 대비해야 합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자리에서 영원한 운명이 갈라집니다. ‘영생이냐 영벌이냐? 가 결정됩니다.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회피해 오셨다면 이를 피하지 마시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앞으로 살날이 많이 남았다고 미루면 안 됩니다. 우리 생명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곧 돌아가실 것만 같았던 분이 몇십 년을 더 사는 경우도 있지만 앞으로 살날이 창창하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구도 앞으로 남은 날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죽음이 어느 때 찾아올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항시 죽음과 심판을 대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려줍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먼저,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합니다.

은 일하고 받는 임금을 말합니다. ‘죄의 임금이 사망이라는 말씀은 노동하면 임금을 받는 것처럼 죄를 지으면 그 대가로 사망이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사망에 이르는 이유가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죽음을 언급할 때 세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분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사람을 죽었다고 말합니다. 2:1절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고 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육신적으로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던 때를 죽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나무줄기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가 죽은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사람역시 죽은 것입니다. 이 죽음은 영적 죽음입니다.

 

둘째, ‘육체적인 죽음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죽음입니다. 신체적 기능이 정지된 상태입니다. 호흡이 끊어지고, 심장 박동이 멈추고, 뇌 기능이 완전히 정지된 상태입니다. 성경에서는 몸에서 영혼이 떠났다고 합니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상태입니다.

 

셋째, ‘둘째 사망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둘째 사망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둘째 사망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못에 던져지는 것을 말합니다. 최후의 심판에서 영벌에 처하여 불못에 던져져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망은 육신의 죽음만을 말하지 않고, 이 세 가지 죽음을 다 포괄합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사람이 죽으면 생명이 끝나고, 육신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죽는 순간 몸과 영혼이 분리됩니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혼은 하늘로 오릅니다. 3:20,21절에서 짐승이나 사람이나 죽으면 다 흙으로 돌아가지만 인간의 혼은 위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길 원합니다. 의로운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일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은 그 이후에 심판이 있습니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두려움을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잠재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죄지은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이유도 마찬가집니다. 잠재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죽음 이후의 심판을 대비해야 합니다. 이를 방치하고 무시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입니다.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앞에서 말한 대로 죄의 삯이 사망입니다. 죄의 결과로 심판을 받아 불못에 들어가는 영벌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대비하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가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가 무엇일까요? 보통 하면 국가가 정한 법을 어기거나 사회적 윤리를 거스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과녁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삶의 자리가 하나님 안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에게 속합니다. 모든 만물과 모든 인간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지음 받은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이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관계를 단절된 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 인간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입니다. 누구도 나는 아닙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자기 욕심대로 살아갑니다. 내 본능이 원하는 대로 하려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않고 자기를 중심에 둡니다. ‘를 위해 삽니다. 모든 기준을 자기에게 두고 자기 좋은 대로 행동합니다. 이런 자기 중심성, 이기심이 죄입니다. 이에서 예외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진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인간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모릅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해주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인간의 한계입니다.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러한 암울한 운명에 처한 인간에게 오늘 말씀에서 놀라운 희망의 소식을 전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하십니다. 영생의 길을 가르쳐줍니다.

앞에서 사망이 우리가 지은 죄의 결과라고 말씀드렸는데 영생하나님의 은사로 주어집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고, 공로를 쌓아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의의 삯은 영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진 은혜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능력이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100층이 넘는 건물을 짓습니다. 바다 밑으로 해저터널을 뚫어 도로를 만듭니다. 우주를 향해 로켓을 발사해서 별에 접근하여 사진을 보내옵니다. 인간 문명의 발달을 보면 인간의 업적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능력을 가졌지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영생을 주지 못합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오직 하나님만이 줄 수 있습니다. 오직 희망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복음 중에 복음입니다. 최고의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시는 영생을 얻으려면 먼저 영생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영생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죽지 않는 불멸의 생명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벌을 받는 사람도 죽지 않고 영원합니다.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17: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영생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면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눕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는 삶이 영생입니다.

 

영생의 삶은 이 땅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죽는 순간부터 영생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시작하여 죽음 이후로 연결됩니다. 이 땅에서 영생의 삶을 시작하지 못한 사람은 죽음 이후에도 영생에 이르지 못합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시는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있는 자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주 안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안’, ‘주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떠나 살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2:20절 말씀처럼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가 나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며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고 말합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랍비라 하며,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고 말한 것에서 그가 예수님을 왜 찾아온 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예수님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보면 니고데모는 배움에 적극적인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은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 알고 율법을 잘 지키는 자들도 유대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그가 예수님께 배우려고 찾아온 것을 보면 그가 말씀을 더 잘 배우고, 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천사와 영의 세계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잘 지킴으로 의롭게 되고, 거룩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믿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거듭남을 말씀하시며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뭔가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켜 더 온전해지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방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태어남을 뜻합니다. 다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새롭게 태어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좀 더 철저하게 배워서 율법을 온전히 지킨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같이 오해하면 안 됩니다. 신앙의 경력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많은 일을 하였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태 신앙이라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남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 건축할 때 리모델링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있던 건물을 완전히 제거하고 새롭게 짓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옛 모습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생명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바른 신앙의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스펄전 목사님거듭나지 않는 사람은 말()이 천문학을 이해할 수 없듯이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스스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거듭나게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자신을 거듭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나는 전적으로 무력하고 무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소서, 나를 거듭나게 하옵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거듭날 수 있습니다.

 

거듭날 때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거듭날 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거듭날 때 천국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나서 영생의 삶을 시작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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