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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이사야58:1~12)
백종선 2024-02-26 추천 1 댓글 0 조회 64
[성경본문] 이사야58:1-12 개역개정

1.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3.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여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성경 / 이사야 58 : 1 ~ 12

 

오늘은 사순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에 시작해 부활절 전날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사순절 기간으로 정하고 금식과 절제와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가집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한 것을 따라 사순절을 지켰는데 사순절의 시작일인 재의 수요일은 종려나무를 태운 재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묵상하였습니다. ‘금식 규율은 초기에는 엄격하게 지켜졌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만 지키다 최근에는 이를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금식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본문 1절에서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네 목소리를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허물과 죄가 무엇인지 큰소리로 분명하게 알려주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허물과 죄가 있었기에 큰 소리로 외쳐 이를 알리라고 하셨을까요?

2절에서 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이 날마나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개역 개정 성경은 본문의 뜻을 오해하기 쉽습습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칭찬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공동번역 성경이 비교적 본문의 뜻을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나를 날마다 찾으며, 나의 뜻을 몹시도 알고 싶다면서, 마치 옳은 일을 해 온 백성이기나 하듯이, 자기 신의 법을 어기지 않은 백성이기나 하듯이, 무엇이 옳은 법인지 나에게 묻고 하느님께 가까이 나가고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뜻을 몹시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마치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해 온 백성인 것처럼,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은 백성이 된 것처럼.. 무엇이 옳은 법인지 나에게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갔다고 합니다. 이들은 겉으로 보면 종교적 열심이 흠잡을 데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가진 불만이 있습니다. 3절에서 우리가 금식을 하는데 어찌하여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괴로울 때 왜 우리를 알아주지 않느냐며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무관심하다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금식은 최고의 경건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식하려면 먹고 싶은 욕망을 절제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면 쉬워 보여도 직접 금식을 해보면 쉽지 않습니다. 성도들 중에 신앙적인 목적으로 하루라도 금식한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금식하려면 마음의 각오가 필요합니다. 강한 의지력을 가지고 절제해야 합니다. 이들은 이렇게 힘든 금식까지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알아주지 않고 무관심하다며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하나님은 3절 하반절 이하에서 답하십니다. “보라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너희가 금식한다고 하지만 금식하는 날에 오락하고, 하인들에게는 안식해야 하는 날에도 온갖 일을 시킨다고 합니다.

 

4절을 보면 이들은 금식하면서 논쟁하고, 다투고, 주먹다짐을 합니다. 이들이 왜 목소리를 높여 논쟁하고, 다투고, 주먹다짐까지 합니까?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입니다. 금식 중에도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챙기겠다고 논쟁하고 다툽니다.

 

이런 식의 금식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금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손히 자신을 깊이 성찰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단지 금식만 할 뿐입니다. 이들은 금식을 자기 공을 쌓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4절 하반절에서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금식하면 너희의 기도하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5절에서 이런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 아니라고 합니다.

5절 하반절에서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펼쳐놓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금식이 하나님께 열납이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는 것은 겸손한 자세를 갖추는 것입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바닥에 펼쳐놓고 그 위에 앉는 것은 극한 슬픔과 비탄한 심정을 표현하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이들이 금식하는 모습을 보면 외적으로는 너무나 겸손하고, 자신들의 죄를 비통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일뿐 그들의 마음은 겸손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이들의 금식은 위선과 가식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금식을 두고 이것이 어찌 금식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금식이 어떻게 하나님께 열납되겠느냐 하시며 책망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형식이 아닙니다. 마음의 중심입니다.

51:17절에서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6:17,18절에서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하셨습니다.

 

금식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적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는 외식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이들은 이미 상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하는 기도와 금식, 구제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인정하십니다.

 

6절 이하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를 말씀합니다. 6,7절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하시며 강한 긍정을 이끌어 내는 수사학적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은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는 같습니다. 힘이 있고 권세 있는 자들이 약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하며, 이런 행위를 하는 자들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유대 사회에 이런 억압과 착취가 자행되고 있다는 것과 이런 일이 있음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악행을 저지르거나 이를 방치하면서 금식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어 자유를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결박과 멍에를 끊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은혜를 입고서도 그들이 약자들을 결박하고 멍에를 지우고, 억압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적인 금식이 아니라 사악한 자들의 횡포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자들을 풀어주고 자유케하는 구원의 행위를 요구하십니다.

참된 금식을 한다면 자신들의 죄악된 행위를 끊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주린 자유리하는 자헐벗은 자를 돌아보며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특히 가족 친척 중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이들을 외면하지 말고, 이들을 돌보며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은 어떠한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기도회도 참석합니다.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지만 이것이 종교 행위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하면서 자기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며 다투고 싸웠던 것처럼 우리도 여전히 자기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면서 주린 자유리하는 자헐벗은 자를 외면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하며 힘써야 할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고, 이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의미가 있습니다.

 

8절 이하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8절에서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치고, 네 치유가 급속하고,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호위하리라고 합니다.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친다는 말씀은 어둠 가운데 거하지 않고 어둠이 걷힌 광명 가운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살면 어둠에 갇힌 것처럼 마음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어둠이 걷히고 마음에 환한 빛이 임합니다. 그래서 양심의 자유를 얻습니다. 의인이 경험하는 기쁨을 경험합니다.

네 치유가 급속하고이는 죄악으로 혼돈에 빠진 세상, 깨어진 인간관계, 영육의 질병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급속히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호위하리라이는 영적 안전과 보호를 의미합니다. 무엇이 앞에서 행합니까? ‘공의입니다. 무엇이 뒤에서 호위합니까? ‘여호와의 영광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행진할 때 여호와의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고 호위하였던 것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공의와 여호와의 영광이 그를 호위하여 안전하게 지켜주신다는 말씀입니다.

 

9절에서 네가 부를 때에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고 하십니다. 앞에서 외식적인 금식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기도해도 하나님께 상달될 수 없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는 자에게는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가 있고, 응답하지 않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사는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이들의 기도하는 내용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기에 이들이 구하는 것도 자기 욕망과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무조건 응답하지 않고 응답해 주셨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보십니다. 그 결과가 선하고 의로운 것이라면 응답하지만 그 결과가 탐욕에 눈이 멀게 하고 악한 결과를 낳는다면 응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선한 열매를 맺는 삶은 우리가 사모해야 할 최고의 축복입니다.

11절에서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고, 네 뼈를 견고하게 하고, 물 댄 동산 같을 것이라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사는 사람은 어떤 형편에서도 그 영혼이 만족하며 자족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심령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물 댄 동산같이 됩니다.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동산은 시절을 좇아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이 표현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축복을 지속적으로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변함없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이며, 그렇게 행할 때 어떤 축복이 임하는지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놀라운 축복을 영원토록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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