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에베소서2:11-2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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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에베소서 2 : 11 ~ 22
제목 /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라!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교회가 한국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독공보 9월 3일자 기사에 종교별 신뢰도가 나왔습니다. 어느 종교를 가장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불교가 27.5%, 가톨릭이 22.9%인데 비해.. 개신교는 16.3%에 그쳤습니다. 코로나 19사태에 대한 개신교의 대응을 두고 국민의 74%가 잘못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교회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함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를 더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교회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바른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진단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알아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조차 알지 못하면 회생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가진단을 하려면 먼저, 이상적인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교회의 모습이 이상적인 교회, 건강한 교회의 모습일까요?
공동체성이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천지창조의 기사가 나옵니다. 천지창조의 과정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이 엿새동안 창조하시는데 창조를 하신 후에 매번 반복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입니다. 그런데 딱 한 번 하나님이 좋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아담을 창조하신 후 그가 혼자 있는 것을 보셨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시고 함께 할 수 있는 하와를 만들어 짝지어 주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더불어 함께 지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하여 신앙 생활하도록 하셨습니다. 신앙 생활할 때 혼자서 조용히 신앙 생활하는 것이 편하고 좋습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갈등이 생기고, 상처를 받고, 부담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용히 교회에 나와 예배하며 은혜받고 돌아가는 것이 편하고 좋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신앙 생활하는 분이 많습니다. 큰 교회는 등록하지 않고 예배만 참석하는 성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생활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부딪치는 일 없이 혼자서 조용히 신앙 생활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물론 하나님과 일대일로 조용한 만남을 가지면서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성도들과 관계를 맺고 서로 교제하고, 교회의 일원이 되어 공동체 속에서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실 때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세례를 받으며 공적으로 그리스도를 믿습니다고 고백하는 순간 입교인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정식으로 소속하게 됩니다. 교회에 소속하지 아니한 하나님의 백성은 없습니다. 혼자서 하나님을 믿고 혼자서 예배하겠다는 말은 성립이 안 됩니다. 교회는 곧 공동체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교회의 표본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의해 설계되고, 성령에 의해 시작된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교회의 표본입니다.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알려면 사도행전에 나온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그들은 함께 하였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였습니다. 유무상통(有無相通)했습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습니다. 한 가족으로 지냈습니다. 같이 떡을 떼고 같이 음식을 먹고, 같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송하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삶이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고, 무엇을 말씀하시고 가르쳤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을 따랐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현하였습니다. 그들은 삶으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를 증거하였습니다. 곁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마다 이들의 삶에 크게 매료되어 칭송하였고, 이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많은 사람이 초대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기존교회와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존교회에 오래 몸담고 있던 분들은 초대교회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는 그만큼 기존교회가 교회의 표본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의 교회는 초대교회에 비해 ‘공동체성’이 약합니다. ‘친밀도’가 떨어집니다. 이는 교회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의 영향보다 세상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결과입니다.
세상은 이기적입니다.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 이익을 좇아 살아갑니다. 공동체성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과 가족처럼 지내지 않습니다. 육신의 소욕 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육신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성도의 관계는 남남이 아니라 한 형제, 한 자매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의 짐을 지고, 약한 자의 약함을 감당하는 한 가족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고,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지금 한국교회 모습은 어떠합니까?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한 가족처럼 지내기보다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서로의 짐을 지지 않습니다. 약한 자의 약함을 감당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보다는 세상을 많이 닮았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세속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을 깨닫지 못합니다. 교회의 이런 모습에 익숙해져 있어 이를 매우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혹시 누군가 여기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며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하면 엉뚱한 소리 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쉬울 겁니다. 교회가 지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이를 당연시한다면 교회의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 교회의 모습이 이상적인 모델이 아닙니다. 교회의 표본은 성경이 보여주는 초대교회입니다. 교회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이루신 놀라운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외인이었던 이방인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고,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구속의 은혜를 받기 이전의 모습과 이후의 모습을 비교해서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줍니다. 구속의 은혜를 받기 이전의 모습을 11,12절에서 말합니다. 그때에 이방인이있고, 무할례자이었고,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약속의 언약에서 제외되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던 자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 놓여 있던 이방인에게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어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19절을 보면 이제부터 외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니고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 되고,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신분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방인이었고,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약속의 언약에서 제외되었던 이방인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무너지고, 모두가 같은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같은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이 하신 일이 있습니다. 13,14절을 보면 멀리있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가까워지고, 이 둘이 하나가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자기 육체’로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 16절을 보면 십자가로 이방인과 유대인을 ‘한 몸’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둘 사이에 ‘원수되었던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습니다. 그 결과 이방인과 유대인이 ‘동일한 시민’이 되고, 같이 ‘하나님의 권속(가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로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한 백성’이 되게 하셨고, ‘한 가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로 이루신 일을 잘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참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알려면 에베소서를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의 교회론의 텍스트입니다. 에베소서에서 가르치는 교회는 하나됨을 이룬 교회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는 교회가 하나됨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교회가 한 가족 같이 하나가 되려면 서로 사랑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엡5:2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명령합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할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5:2절 하반절에서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교회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사랑할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엡5:22절 이하를 보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로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25절에서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할 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같이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28절에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남편과 아내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서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말씀함과 동시에 예수님이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자신과 하나로 여기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이러한 사랑으로 세워졌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같이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하나가 되고, 한 가족같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크레이지 러브(Crazy Love)’의 저자인 미국의 ‘프랜시스 챈’ 목사가 펼치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이 있습니다. ‘We are Church’(우리가 교회다) 운동입니다. ‘프랜시스 챈’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코너스톤 교회를 담임하던 목회자였습니다. 5천명이 넘는 대형교회였는데 이분이 교회가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고,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발견한 후에 교회를 사임하고 ‘We are Church’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의 본질이 한 가족처럼 한 몸을 이루어 서로 사랑하며 서로의 짐을 지는 공동체임을 알고 이런 교회를 세우는 운동을 하였습니다. ‘프랜스시 챈’ 목사는 다음과 말을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였습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증거하는 예수님을 잘 정리하고, 여러 신학에서 소개하는 예수님을 배워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증언은 교회의 모습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고,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사셨고, 그리스도께서 설계하신 교회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복음 증거의 방법입니다.”
‘프랜시스 챈’ 목사님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줍니다. 교회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하나 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공동체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전하려면 신구약 66권을 통하여 구원의 진리를 발견하고, 이를 잘 정리하여 확신을 가지고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그리스도가 주로 계신 교회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희생하며 한 가족처럼 하나가 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와 같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랑으로 하나가 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교회를 칭송하고, 교회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교회가 사랑으로 하나된 공동체를 보여주지 못하면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입으로 구원의 복음을 증거해도 실체를 볼 수 없는 공허한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20세기 복음주의 변증가로 잘 알려진 ‘프랜시스 쉐퍼’는 “교회는 기독교의 최후 변증”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느끼고 경험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물을 때 교회의 하나된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교회를 사랑하며 하나된 공동체를 이룰 때 교회는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증거하는 증인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교회가 공동체성을 잃어버리고 개인주의화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 나와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내 형제요 내 자매요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며, 한 지체입니다. 우리가 이를 알고 이런 관계를 맺어갈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소그룹 모임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각 가정에서 영상예배를 드리지만 이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구역식구들, 선교회원들에게 전화를 통해 안부를 묻고, 대소사를 함께 이야기하며 서로 위로하고 마음을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공동체성’입니다. 마음이 멀어지면 안 됩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울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어려울 때 함께 하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입니다. 어려울 때 함께 하는 교우가 진정한 교우입니다.
기독교는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공동체성을 더 강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으로 하나 되어 참된 교회를 세울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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