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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새벽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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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9:28~40
백종선 2026.3.27 조회 10

[성경본문] 누가복음19 : 28 - 40 | 개역개정

  •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본문 / 누가복음 19 : 28 ~ 40

 

본문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앞서가신다. 예루살렘으로 가신 것은 십자가를 지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시며 십자가를 지시게 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누군가에게 강제 연행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원하여 가셨다. 여기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은 예수님이 스스로 선택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때가 되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벳바게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 제자 둘을 보내시며 맞은편 마을로 가서 아무도 타 보지 못한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하시며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고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고 말하라 하신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지시하신 대로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려고 했을 때 나귀의 임자가 어찌하여 나귀를 푸느냐고 물었고, 제자들은 주께서 쓰시겠다고 말한 후 나귀를 끌고 왔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어떻게 나귀의 주인이 제자들이 나귀를 가지고 가도록 허락하였을까? ‘예수님이 쓰시겠다는 말을 듣고 내어주었다는 점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나귀가 있는 장소를 특정해 주신 것과 어찌해서 나귀를 푸느냐고 물으면 주께서 쓰시겠다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나귀 주인을 알고 있다. 예수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기꺼이 내어줄 사람인 것을 알았기에 이런 지시를 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어떤 지시를 내리실 때 확실하지 않은 것을 막무가내식으로 명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목적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 지시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라고 응답하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명하셨을 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는데 어떻게 땅끝까지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며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최선을 다해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그 결과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거되었다. 지금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고국을 떠나 이국땅으로 선교하러 가는 선교사님이 있는가 하면 가까운 이웃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무슨 차이인가? 순종과 불순종의 차이다.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되고, 불순종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거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펼치신다.

 

제자들이 나귀를 끌고 왔을 때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 여기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예수님이 타신 나귀가 나귀 새끼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지시하실 때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 하셨고, 제자들이 끌고 온 나귀는 나귀 새끼였다.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

왜 다 자란 나귀가 아니고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을까?

당시 왕이 성에 입성할 때 말이나 나귀를 타고 호위병들의 경호를 받으며 입성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왕의 입성을 의미한다.

스가랴 선지자는 슥9:9절에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루살렘 백성들아 즐거워하라하며 그 이유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는데 그 왕은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셔서 나귀 새끼를 타신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으로 자신이 바로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왕임을 보여주셨다.

 

18장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뭄는다. 예수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하시며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하신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속한 나라의 왕으로 등극하기 위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세상 나라는 군사력, 경제력, 정치적 권력으로 다스리지만, 예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진리와 의로서 다스리신다. 세상의 왕은 권력의 정상에 올라 지배하고 군림하지만 예수님은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연약한 자를 일으키려고 섬기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세상의 왕과 차별성을 보여주시려고 나귀 새끼를 타시고 겸손한 모습으로 입성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사랑과 진리와 의로서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다. 부귀영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 백성 역시 세상의 권력이나 부귀 영화가 아닌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나라를 추구하며 이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할 때 제자들의 행동을 유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35절에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님을 태운다. 그리고 나귀 새끼를 타고 가실 때 겉옷을 길에 펼친다. 37절을 보면 제자의 온 무리가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서는 영광이로다

제자들은 왕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찬양한다. 이 장면이 매우 감격스럽다. 당시 사람들은 로마 황제를 신처럼 숭배하고 찬양하였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며 찬양한다.

우리가 찬양하고 높여야 할 분은 예수님이다. 세상은 권력을 지닌 자, 부유한 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인정하고 칭송한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구원이다. 영생이다. 하나님 나라다. 거룩함이다. 이를 이루시는 분은 예수님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려야 한다.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찬양하며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따를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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