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영성 (데살로니가전서5:15~18)
- 백종선 2026.3.16 조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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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5 : 16 - 18 | 개역개정
- 16. 항상 기뻐하라
-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제목 / 일상의 영성
성경 / 데살로니가전서 5 : 16 ~ 18
사순절 기간에 ‘영성(靈性)’을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주까지 구원의 영성, 성화의 영성, 언어의 영성을 말씀드렸고, 오늘은 ‘일상의 영성’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영성(靈性)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거듭난 사람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영적인 삶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인으로 거듭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름으로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내적인 변화는 우리의 일상으로 나타납니다.
존재가 행동을 결정합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이냐에 따라 생각하는 것과 판단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사과나무가 사과 열매를 맺고, 포도나무가 포도 열매를 맺고, 복숭아나무가 복숭아를 맺는 것처럼 자신이 어떤 존재냐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결정됩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던 사람이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던 사람이 성령의 인도함을 따릅니다.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예수님을 닮게 되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름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 변화는 성품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속사람이 변화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는 성품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남으로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본질적인 변화는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성품의 변화는 삶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교회를 다니며 신앙 생활하지만 이를 놓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배에 열심히 출석하고, 봉사도 하고, 헌금도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곤 하는데 성품의 변화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성질을 부리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욕심을 부립니다. 이는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새로운 존재가 되지 못했습니다. 주일 성수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런 변화가 없으면 신앙생활이 무의미하고 헛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사업처럼 하는 분이 있습니다. 교세를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다단계 방식처럼 조직을 세우고 사람들을 끌어들여 교회의 몸집을 키우려 합니다. 그러나 거듭남이 없고 변화가 없다면 생명이 없는 집단에 불과합니다.
또는 감성에 호소하는 예배에 집중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물론 감격이 있는 예배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감정적인 교류를 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고, 예수님을 닮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인격적인 변화가 없다면 그 예배는 감성에 호소하는 퍼포먼스(공연)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위선적인 신앙입니다. 진실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신앙입니다. 이 함정에 빠지면 언젠가 신앙에 회의가 찾아옵니다. 신앙생활이 무의미하게 느낄 때가 옵니다.
하나님과 진실하게 대면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신앙에 있어 지성과 감성, 의지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지성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벧후3:18절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내가 상상하는 신을 섬깁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한 채 막연한 상태에서 교회만 오고 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 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성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하여 하나님이 느끼시는 감정을 같이 느끼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행해야 합니다. 행동하지 못하는 신앙은 영적인 지체 장애를 가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영성은 삶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 번째, 항상 기뻐하라! 두 번째, 쉬지 말고 기도하라! 세 번째, 범사에 감사하라! 입니다.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는 말씀 앞에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가 있습니다. 이는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일상화’하라는 말씀입니다. ‘영성의 일상화’입니다.
영성은 일상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매 순간의 삶이 영적이어야 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을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일상이 무의미하게 지납니다. 일상에서 모든 순간을 아름답고 값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영성의 일상화에서 첫 번째가 “항상 기뻐하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자녀이든, 연인이든, 부모이든, 누구든지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함께 놀아주기도 하고,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사 주기도 합니다. 연인들은 애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애인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전화를 걸고, 찾아가기도 하고, 선물을 해 드리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기쁨을 나누는 것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자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구원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구원의 은혜를 입기 전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신음하고 고통당하였던 것처럼 악한 권세에 짓눌려 신음하며 고통 가운데 살았을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인생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립니다.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그 끝은 절망과 불행입니다. 하지만 바른길을 선택하면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어떤 길이 축복된 길인지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바른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을 따르면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11: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롬12:1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게 살아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고, 동시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가족, 친구, 교우, 이웃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고, 힘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기쁨을 주는지를 생각하며 기쁨을 주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지 불편함을 주고 부담을 주는지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기쁨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얼굴 표정을 환하게 하면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밝은 표정으로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과 굳은 얼굴로 심각한 표정을 짓는 사람을 대할 때 느낌이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얼굴이 굳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무표정하게 다른 곳을 주시합니다. 친절한 문화가 정착한 나라를 가보면 낯선 동양 사람임에도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냅니다. 그러면 덩달아 미소를 짓고 인사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쁨을 주는 자가 되면 내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고 눈물짓게 하면 자신의 삶도 기쁨을 잃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를 대할 때 여러분으로 인해 기쁨이 활짝 피어나는 기쁨의 통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영성의 일상화에서 두 번째가 “쉬지 말고 기도하라!”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생명을 유지하려면 호흡을 해야 합니다. 호흡이 멈추면 생명도 끝납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호흡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기도의 생활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하루 종일 기도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말합니다. 기도가 중단되면 영적인 삶은 어렵습니다.
이슬람의 경우 하루에 다섯 번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엎드려 기도합니다. 기도 시간을 정해놓고 철저하게 기도 시간을 준수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점심시간에, 오후 3시에 기도합니다. 수도원에서는 하루에 일곱 번 기도 시간을 가집니다. 개신교 전통에서도 성무일과가 있습니다. 많게는 하루에 8번 적게는 하루에 4번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 시간을 정해놓은 이유는 하루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께 봉헌하며, 일상을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최근 들어 기도의 습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바쁘게 살다보니 기도할 시간을 따로 내기 어려워서 기도 시간을 따로 가지지 않습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하루에 3번, 5번, 7번 이렇게 기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순간 순간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나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고 짧은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출근할 때도 차 안에서 짧게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내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고, 출근하면 “저의 역할과 책임을 잘 감당하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동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감정이 상하는 일이 발생하면 “제 마음을 지켜주셔서 평화를 되찾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따로 5분 10분 시간을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순간 순간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하나님과 함께 하루를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짧은 순간의 기도라 하더라도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킬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경우 아침, 낮, 저녁 하루 세 번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있는 곳은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에서 왕의 일을 돕는 중요한 직책으로 아주 바쁘게 살았으나 기도하는 일을 멈추거나 미루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기도의 습관을 지켰기에 이방 땅에서도 자신을 구별하여 지켰고, 선지자로서 동족을 바르게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가 일상이 될 때 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고,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순간 순간 기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일상화로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길 바랍니다.
영성의 일상화에서 세 번째가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한 멋진 신사가 공원에 고급자가용을 세워놓고 바로 옆 벤치에 앉아 며칠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궁금하여 왜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그곳에 머무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신사는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며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에게는 돈도 있고, 멋진 집도 있고, 예쁜 아내도 있는데 내 집이 어디에 있는지, 내 돈을 어디에 두었는지, 내 아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감사를 모르면 그것의 가치를 알지 못하여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합니다. 감사를 아는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가치를 알고 값지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공부할 기회를 가진 것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아는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며 자신의 미래를 준비합니다. 직장을 가진 것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일을 사랑하고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여 자기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기회를 살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갖지 못한 것 때문에 불평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감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고,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감사합니다.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불만을 터뜨립니다. 누가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하는 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에 감사하면 하나의 행복이 찾아옵니다. 두 개에 감사하면 두 개의 행복이 찾아옵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범사에 행복이 찾아옵니다.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되어 범사가 잘 되는 축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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