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의 영성 (야고보서3:1~12)
- 백종선 2026.3.9 조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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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야고보서3 : 1 - 12 | 개역개정
-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제목 / 언어의 영성
성경 / 야고보서 3 : 1 ~ 12
우리의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언어’입니다.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때 언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누군가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 가장 적절한 방법이 말입니다.
인류가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언어의 사용입니다. 언어를 통하여 지식을 전달하고,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기에 놀라운 발전이 가능했습니다.
사람은 언어로 사고합니다. 어휘력이 떨어지면 사고의 능력도 떨어집니다. 어린아이들은 어휘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표현이 단순하고 동시에 생각도 단순합니다. 어린 아이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웃고, 울고, 짜증 내면서 표현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거나 표현하지 못합니다. 말을 배워야 자기표현이 가능합니다. 어휘력이 높아질수록 생각이 깊어지고, 이해력이 높아지고, 설득력도 커집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어휘력을 높이는 언어훈련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좋은 책을 많이 읽혀주는 것이 아이의 어휘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언어는 사고의 능력을 키우고, 삶의 질을 높이는 유익한 도구지만 동시에 언어는 파괴적인 힘이 있습니다. 원자력이 에너지를 공급하는 매우 유익한 자원이면서 동시에 매우 파괴적인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처럼 언어도 이러한 이중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어의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경건 생활에 있어서도 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12:34절에서 예수님께서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하였습니다. 어떤 내면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집니다. 성숙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과 미성숙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이 다릅니다. 역으로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내면에 영향을 끼칩니다. 좋은 말을 하고, 유익을 끼치는 말을 하면 내면이 성숙해집니다. 하지만 나쁜 말을 하고, 독기가 서린 말을 하면 내면이 병듭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고운 말, 바른말을 사용하도록 가르칩니다.
본문 2절에서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말의 실수가 많다고 하며 만약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실수’는 발음이 정확하지 않거나, 버벅거리거나, 말이 매끄럽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 폭언, 틀린 말, 상처 주는 말, 욕설 등 거칠고 나쁜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온전하다’는 것은 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라 성숙하다는 뜻입니다. 성숙할수록 말의 실수가 적습니다. 거칠고 나쁜 말을 삼갑니다.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하였는데 자신을 통제하는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언어 사용에 있어 자제력이 필요합니다. 해야 할 말인지 하지 말아야 할 말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분별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쏟아내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특히 손아랫사람에게 말실수하기가 쉽습니다. 내 자식이니까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말을 가리지 않고 쏟아붓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들이 들어야 할 말이라 생각하여 말하지만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의 의도와는 달리 상처를 받고, 자존감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대화를 피합니다. 소통의 단절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때부터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속에 있는 말을 해야지 속이 후련하기 때문에 가리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는 자기감정만 생각하고 상대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독단에 해당합니다. 주먹으로 한 대 갈겨야 속이 시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먹으로 한 대 갈기면 상대에게 폭력을 가한 것이 됩니다. 아무리 한 대 갈기고 싶어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속이 후련하려고 말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는 것은 언어폭력에 해당합니다. 내 감정이 중요하듯이 다른 사람의 감정도 중요합니다. 상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말은 삼가야 합니다.
본문 3~5절에서 말의 위력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야고보는 말의 위력을 이야기하기 위해 세 가지를 예로 듭니다.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 배의 키, 작은 불입니다.
첫째, 재갈에 비유합니다. 몸집이 큰 말을 조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말의 힘이 사람의 힘보다 셉니다. 말의 힘은 성인 남성 수십 명과 맞먹습니다. 바퀴가 달린 수레는 평지에서 1천~2천 kg을 가뿐히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힘이 센 말에 재갈을 물리면 말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둘째, 배의 키에 비유합니다. 큰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장치가 ‘키’입니다. 배의 크기에 비해 ‘키’는 매우 작지만 그 작은 키가 배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셋째, 작은 불에 비유합니다. 가끔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방송에 나옵니다. 건조한 날씨에 산불이 발생하면 불길이 급속도로 퍼져서 그 피해 규모가 엄청납니다. 모든 화재는 작은 불씨에서 시작합니다. 그 작은 불씨가 점점 번져서 대형 화재가 됩니다.
야고보는 말의 위력이 어떠한지를 말하기 위해 세 가지(말의 재갈, 배의 키, 작은 불)를 예로 들었습니다. 이것의 공통점은 작지만 큰 위력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혀의 위력이 이와 같은 위력이 있습니다. 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큰 유익이 되기도 하고, 큰 화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말은 주의해서 잘 사용해야 합니다.
말을 잘 사용하면 사람을 살립니다. 용기를 줍니다. 인생을 바꿉니다. 큰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을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죽입니다. 기를 꺾습니다. 실족하게 만듭니다. 인격을 파괴합니다.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말의 위력이 큰 만큼 말을 가려서 잘 사용해야 합니다.
좋은 말을 좋은 들음에서 시작합니다. 언어는 들으면서 배웁니다. 듣지 않으면 언어를 배울 수 없습니다. 말을 잘하던 사람도 귀에 이상이 생겨 듣지 못하면 시간이 갈수록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
이사야 50:4절에서 이사야는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학자의 혀’를 주시기 위하여 ‘학자의 귀’를 주셔서 학자들처럼 알아듣게 하십니다. ‘학자의 귀’를 가진 사람이 ‘학자의 혀’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말을 하려면 좋은 말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말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 있지 않으면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영성 훈련에서 매우 중요한 훈련과정이 있습니다. ‘침묵의 훈련’입니다. 침묵의 훈련이 중요한 이유가 침묵할 때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좋아하면서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주장을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의 주장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듣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듣는 것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침묵입니다. 입을 닫고 말을 멈추면 소리가 들립니다. 여러분! 언제 시계 소리가 들립니까? 잠자리에 누웠을 때입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들리지 않던 시계 소리가 들립니다.
열왕기상 19장을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싸워 승리하였을 때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작정합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야가 힘을 잃고 로뎀나무 아래에 있을 때 천사가 가져다준 떡과 물을 먹고 기력을 회복하여 호렙산으로 갑니다. 여기서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바람과 지진과 불 속에서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하게 들려옵니다.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침묵하여 조용히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주 홀로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적한 산에 오르셔서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이사야53:7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예언한 것처럼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여 심문을 받으실 때 침묵하셨습니다. 마27:12~14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예수님은 죄가 있어서 잡히시고 심문을 받으신 게 아닙니다.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으나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님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져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예수님을 붙잡아 심문하고 죄를 뒤집어씌워 처형하려 하였습니다. 이런 억울한 일을 겪는다면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나는 결백하다. 죄 없는 나를 이렇게 죄인으로 몰아가느냐며 항변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잠잠하셨습니다. 침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두말없이 십자가의 길을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의 실수를 하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실족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 내 생각을 말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영성’은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서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생각이 너무 많고, 자신이 할 말이 너무 많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예배 시간에 나와 말씀을 들어도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 말씀을 듣고도 쉽게 잊어버리고 기억에 남은 말씀이 없이 성전을 떠나가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듣고자 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듣고도 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마음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침묵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침묵하면서 어떤 소리를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침묵할 때 나쁜 생각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분노의 감정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악한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를 잘 걸러내야 합니다. 우리가 들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선하고 정결해지게 되며, 우리의 말이 생명을 살리고 덕을 세울 수 있고, 우리의 삶이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무엇으로 창조하셨습니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2절을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살아가면 구원의 은혜를 입어 우리의 삶이 회복됩니다. 죄악에 물든 이 세상이 하나님 나라로 회복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분별력이 생기면 자기를 주장하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파괴적인 말은 삼가고 살리는 말,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엡4:29절에서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입술을 기도의 도구, 찬양의 도구, 격려의 도구로 드려야 합니다. 내 말이 하나님의 성품을 담아내고 있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자신의 생각입니까?
여러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입니까? 자신의 영광입니까?
여러분의 입술에서 어떤 말이 많이 나옵니까?
비난과 불평입니까? 감사와 축복입니까?
시편 141:3절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를 드리며 우리의 언어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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