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기13:1~12
- 백종선 2026.2.19 조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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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13 : 1 - 12 | 개역개정
- 1.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 2.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 3.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 4.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
- 5.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 6.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 보라
- 7. 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속임을 말하려느냐
- 8.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따르려느냐 그를 위하여 변론하려느냐
- 9.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 10. 만일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를진대 그가 반드시 책망하시리니
- 11. 그의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의 두려움이 너희 위에 임하지 않겠느냐
- 12.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가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본문 / 욥기 13 : 1 ~ 12
본문은 친구들의 충고를 들은 욥의 답변이 이어지고 있다.
1, 2절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지금까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은 욥은 너희가 본 것을 나도 보았고, 너희가 듣고 깨달은 것을 나도 안다고 하며 “내가 너희만 못하지 않다”고 한다.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충고하였지만 그것이 욥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과응보의 논리로 욥이 마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지적하고, 회개하라고 촉구한 것은 욥의 감정만 상하게 만들 뿐이었다.
오래전 청년 시절에 신앙적인 고민을 가지고 교역자를 찾아가 상담한 적이 있다. 결과는 회의적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며 기도하라는 식의 답변을 들었다. 다시는 상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충고하려면 그 말이 상대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말로 조언한다면 하지 않은 만 못하다. 그러므로 조언하고 충고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섣불리 가르치고 충고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고충을 듣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며 마음을 함께 나누는 편이 훨씬 낫다.
대화할 때 가르치려 하고, 이렇게 하라는 식으로 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이런 식의 대화가 습관이 된 경우가 많다. 누구와 대화해도 이런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화할 때 자신이 어떤 위치에서 상대를 대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고자세로 상대를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고자세를 취하며 가르치려 하고 결론을 자신이 내리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대화할 때 상대에게 답을 얻고자 함이 아니다.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상태를 나누고 싶을 뿐이다. 그러므로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 사람의 사정과 감정을 헤아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욥은 더 이상 친구들의 말에 기대하지 않는다. 3,4절이다.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
욥은 전능자이신 하나님과 변론하겠다 하며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이고, 쓸모없는 의원에 불과하니 너희가 잠잠하는 것이 지혜라고 한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죄인으로 몰아갔다.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욥이 당한 재난을 가지고 죄의 결과라고 단정 짓고 죄인으로 몰아갔다. 욥의 입장에서 보면 근거도 없는 거짓말을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친구들의 충고가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욥의 감정만 상하게 만들었다. 이들이 욥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함부로 추정하고 예단하며 충고하였다. 그래서 그들을 두고 “쓸모 없는 의원(의사)”라 하였다. 의사가 환자를 잘못 진단하면 잘못된 처방을 하게 되고, 헛 수고를 하게 된다. 환자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상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욥은 친구들이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고, 쓸모 없는 의원으로 보였기 때문에 이들과 변론하지 않고 하나님과 변론하겠다고 한다. 욥은 자신이 겪은 재난의 원인을 알고 있는 분이 하나님 밖에 없음을 알고 있기에 하나님과 변론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우리도 욥이 느꼈던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예기치 못한 일을 당했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평안을 잃어버리고 걱정이 가득하고,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이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오길 원하신다.
사40:27~31절에서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라 하였다.
사1:18절에서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하였다.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 아뢰면 우리의 짐을 맡아주시고, 우리를 깨우쳐주시고, 우리가 행할 바를 알려 주신다.
시146편에서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 하시며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말씀한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리시길 바란다.
5~12절에서 욥은 친구들의 위선을 지적한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변호한다는 명목으로 적절하지 못한 말을 하였다. 욥은 이들에게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한다.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느니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7,8절에서는 친구들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불의를 말하고, 속임을 말하고, 하나님을 변론하려고 하느냐고 묻는다. 친구들이 하나님을 대변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식의 변론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도 자칫 잘못하면 욥의 친구들과 같은 잘못을 범할 수 있다. 누군가 어려움을 겪을 때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기보다 “이건 다 하나님의 뜻이다” 또는 “네가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단정 지어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말로 하나님을 대변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아무런 도움이 안 되며,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9~11절에서 욥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신다면 진실을 왜곡하고 친구를 정죄한 너희가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12절에서는 친구들이 인용하는 격언들은 ‘재’와 같고 ‘토성’과 같다고 한다. 진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로 부족하다는 뜻이다.
본문에서 교훈으로 삼고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3절에서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하였다. 우리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
하나님을 대변하는 양하며 불필요한 말을 하는 걸 삼가야 한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죄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다. 하나님만이 나의 눈물을 아시고, 나의 탄식을 아시고 위로해 주실 수 있다. 모든 무거운 짐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을 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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