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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오신 예수 (요한복음8:12)
백종선 2025.12.23 조회 5

[성경본문] 요한복음8 : 12 - 12 | 개역개정

  •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제목 / 빛으로 오신 예수

성경 / 요한복음 8 : 12

 

사무엘 베켓이 쓴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유명한 희극이 있습니다. 두 남성이 고도가 오기를 기다리며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이들은 고도가 오기를 기다리지만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냥 막연하게 그가 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베켓이 이 작품을 통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특별한 꿈이 없이 막연한 기대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묘사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야!” “나에게도 기회라고 하는 것이 찾아오겠지?” 하며 삶의 분명한 목적이 없이 어떤 행운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인생을 묘사하였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뚜렷한 희망이 없습니다. 분명한 삶의 목표가 없습니다. 좋은 날이 오겠지.. 새로운 희망의 날이 떠오르겠지.. 이런 막연한 기대를 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운()이 오기를 바랍니다. 인생에 있어 세 번의 운이 찾아온다고 생각하고 그 기회를 잘 붙잡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대를 안고 살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운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준비하는 사람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분명한 목적과 비전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죄인을 구원하고,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분명한 목적과 비전을 이루시기 위해 일생을 바치셨고 자신의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2:10,11절을 보면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을 때 천사들이 양을 치던 목자에게 나타나셔서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구주의 탄생으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대림절이 되면 네 개의 초를 밟힙니다. 이 초가 상징하는 것이 있습니다. 소망, 평화, 기쁨, 사랑입니다. 죄로 인해 어둠의 그늘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구원의 빛으로 오셔서 어두움을 밝히시고, 잃어버린 소망과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과 평화와 기쁨과 사랑은 구원을 통해 얻게 되는 무엇보다 귀한 선물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 하시며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의 역할이 있습니다. 빛은 어둠을 밝힙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에 해가 떠오르면 깜깜했던 세상이 환하게 동터옵니다. 빛이 비치는 순간 어둠은 사라지고 모든 만물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또한 빛은 생명을 줍니다. 빛이 없으면 어떤 생명도 살 수 없습니다. 빛이 생명을 살립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것은 죄악으로 어두워진 세상을 진리로 밝혀 죄악의 실체를 드러내시고, 죄악의 그늘에서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시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 시대는 어두움이었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호적하라하였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의 황제입니다. 그가 호적하라명한 것은... ‘세금 징수군사력 확충을 위해서입니다. 이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돈과 군사력은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기에 이를 강화하기 위해 호적하라 명한 것입니다. 그 시대는 힘으로 지배하던 폭력의 시대였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루살렘을 찾아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었을 때 유대 왕 헤롯은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를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 시대를 생명을 경시하며 유리하던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조직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유대 사회의 실세였던 대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루살렘 성전과 산헤드린 공회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의 잣대로 백성들을 정죄하고 다스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시며 성전을 허물겠다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기 의()를 내세우며,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죄인 취급하였으나 진리이신 예수님은 이들의 실체를 드러내셨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의()입니까? 율법의 잣대로 죄인을 정죄하고 죽이는 것이 의()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진정한 의()는 살리는 의()입니다. 구원의 의()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진정한 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 백성이 속았습니다. 어둠의 권세에 지배를 받으며 가난과 질병과 억압과 소외를 당하며 고통 가운데 신음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어둠의 세상에 빛으로 오셔서 죄악의 실체를 드러내시고, 진리를 깨우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본문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하시며 예수님을 따르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수님을 따를 때 어둠에 거하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둠 가운데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빛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5:14). 우리도 예수님처럼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따를 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중에 디오게네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밝은 대낮에 등불을 들고 아테네 거리를 다녔습니다. 등불은 밤에 비추어야 환하게 빛나며 제 기능을 합니다. 대낮에는 그 불빛이 눈에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녔을까요? 디오게네스는 이 세상이 무지와 죄악으로 어두워져 있음을 일깨우고 진리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어둠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악한 영들을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거짓에 능수능란합니다. 미혹에 능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신이 속는 줄도 모르고,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악한 영에 끌려다닙니다.

예수님과 말씀을 통해 진리를 발견할 때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악의 실체를 알게 되고, 이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속이고 이용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세상이 어떻게 사람을 속이는지 알게 될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세상의 불의에 편승하여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속이며 자기 이익을 챙기는 쪽으로 선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죄악으로 썩고 병들고 곪은 뿌리를 뽑고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공의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선택은 자신이 어떤 부류의 사람이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따라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거룩한 의()의 길을 선택하고, 세상의 욕망을 따르는 사람은 타락한 세상에 편승하여 자기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길 원하십니다. 거룩한 의()의 길을 가길 원하십니다.

 

5:16절에서 예수님은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롬13:12절에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하였습니다.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부정적입니다. 교회를 신뢰하는 국민이 20%밖에 되지 않습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50%가 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빛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거의 그리스도인이 될 뻔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영국인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는 데 가장 방해되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질문에 간디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로서 사랑을 실천하고, ()의 길을 가며, 거룩함으로 단장하여 빛의 열매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마음을 엽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보여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교회를 외면합니다.

 

미국의 기독교 여론조사 기관 조지 바너 리서치’(George Barna Research)에 의하면, 불신자들에 비해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성이 40% 이상 우월해야 감동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약간 우월하거나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면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개혁의 3대 원리는 나부터, 지금부터, 여기서부터(from me, from now, from here)’입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변하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새로운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곳부터 변해야 변화의 물결이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빛의 자녀가 되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2:36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12:46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예수님을 믿으면 빛의 아들 즉 빛의 자녀가 되고 어둠에 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어둠에 속했던 우리가 빛에 속하게 됩니다. 빛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소망을 갖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변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세상은 부패했고, 진실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은 순진한 것이며, 거짓과 불의를 일삼더라도 요령껏 자기 이익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 이익과 만족만을 추구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의 소망을 갖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회복되고, 부패한 세상이 회복되고, 어둠의 땅이 거룩한 땅으로 회복될 것을 믿고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시고 완성하실 것은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를 때 내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빛의 자녀로 부름받은 우리는 입술을 열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60:1절에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하였습니다.

5:14~15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하시며 등불을 켜서 모든 사람에게 비치라고 하십니다. 빛이 있어도 숨겨두면 어둠을 밝힐 수 없습니다. 일어나 빛을 밝혀야 합니다. 빛을 밝혀 모든 사람에게 비추어야 합니다.

 

12:3절에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빛을 발하는 것이며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별과 같이 빛을 발하는 자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면 알 수 없고, 알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복음의 시작은 말씀을 선포하여 듣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들을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어둠에 있는 자들을 빛으로 나오게 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하며 칭송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좋은 조식을 복음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가장 큰 선행이며, 가장 큰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탄절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믿지 않는 이웃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하여 전하면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알리며 구원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성탄절을 맞아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더 나아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전하여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새로운 소망을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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