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명기26:1~11
- 백종선 2025.10.1 조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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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신명기26 : 1 - 11 | 개역개정
-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 3. 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 4.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 5.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 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본문 / 신명기 26 : 1 ~ 11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첫 수확을 하였을 때 해야 할 일을 알려준다.
가나안 땅에서 농사지어 첫 수확을 하면 그것을 광주리에 담아 성소로 가서 제사장에게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해야 한다.
3절 하반절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광주리를 받아서 하나님의 제단 앞에 놓아야 한다. (4절)
그리고 이어서 자신들의 지난 역사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말해야 한다. 5~9절이다.
5절을 보면...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다” 고 한다.
내 조상을 ‘방랑하는 아람 사람’이라고 한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가로챈 일로 형 에서의 분노를 일으켜 형을 피하여 외삼촌이 사는 ‘밧단 아람’에서 20년간 살았다. 이후 세일, 벧엘, 브엘세마 등으로 이동하며 다녔고,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70명의 가족이 애굽으로 가서 고센(라암셋) 땅에 거주하였다. 이후 야곱의 가족은 크게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된다.
6~9절에서 애굽에서의 종살이, 출애굽, 가나안 정착을 말한다.
애굽의 왕조가 바뀌면서 졸지에 이스라엘이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한다. 이스라엘은 종살이하면서 심한 학대를 받고 중노동에 시달린다. 고통스러웠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의 손에서 건지신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이스라엘의 지난 역사를 상기하도록 한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수확물을 거두게 된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 수확물을 바치게 하려 함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첫 수확물을 거두는 순간은 매우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자기 땅을 가지고 농사하여 수확한 농산물로 살아본 적이 없다. 이스라엘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떠돌아다니는 유랑 민족이었다. 출애굽 이후 40년간 광야를 떠돌아다녔다. 유랑 생활이 결코 쉽지 않다. 거리로 쫓겨나 노숙 생활하는 것과 다름없다. 땅 없이, 집 없이 사는 사람의 설움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체감할 수 없다. 삶이 불안정하다.
유랑 생활에 비하면 정착해서 농사짓고 사는 것은 매우 안정된다. 차원이 다르다. 인류 문명이 발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에 하나가 정착생활이다. 농사를 짓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정착 생활을 하였고, 그 이전에는 채집 수렵 생활을 하였다. 사냥을 하고,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서 먹는 방법으로 살아갔다. 그러다가 농사법이 개발되면서 떠돌이 생활을 끝내고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생활이 안정이 되면서 문명의 발달을 가져왔다.
이스라엘이 유랑 생활하다가 가나안에 정착하고, 농사지어 수확하게 되었을 때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이스라엘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광야에서 유랑생활하던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정착 생활을 하며 농사하여 수확하는 기쁨을 얻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경배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서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감격스런 수확의 날을 맞이할 수 있게 하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역사와 연결된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 역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준비하셨고, 진행하셨고, 완성시키신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이루신 역사다.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알고 인정할 때 하나님을 따를 수 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이심을 믿는가? 하나님을 절대 주권자로 받아들였는가? 우리의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발견하였는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믿음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은 또한 은혜를 베푸는 자로 산다.
11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수확의 기쁨을 모든 사람과 함께 하라는 말씀이다. 땅이 없는 레위인, 자기 땅이 없는 거류민(객)과 함께 즐거워하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자신만 누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거저 베풀어 주신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가 될 수 있고, 모두가 기쁘고 행복할 수 있다.
신학자 ‘칼 바르트’ 는 이런 말을 하였다.
“예수님의 은혜가 예수님의 기적보다 더 크고 놀랍다. 기적은 우주의 물리적인 법칙을 뛰어넘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은혜는 도덕적 법칙을 뛰어넘는 것이다. 악의 한 복판에서 선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은혜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은 인간이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다. 예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에 구원의 백성이 되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예수님이 은혜를 베풂으로서 악한 세상에서 선(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은혜를 베풀고 나누면 그곳에 하나님의 의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만약 은혜를 망각하고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선한 역사를 이룰 수 없다.
우리 교회에 우리 사회에 선한 역사가 시작되려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은혜의 복음을 알고 은혜로 살아야 한다. 은혜가 있는 곳에 선한 역사가 시작된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 또한 은혜 있는 삶을 시작하여 우리 교회가 선한 역사를 만드는 교회, 우리 가정이 선한 역사를 만드는 가정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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