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하는 믿음 (데살로니가후서1:3~4)
- 백종선 2025.9.8 조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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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데살로니가후서1 : 3 - 4 | 개역개정
-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
- 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제목 / 성장하는 믿음
성경 / 데살로니가후서 1 : 3 ~ 4
많은 신앙인이 고민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의 성장이 멈추고 변화가 없는 신앙생활입니다. 믿음이 정체되고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생활을 반복합니다. 나름대로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말씀도 공부하는데 신앙의 변화가 없이 제자리걸음 합니다.
믿음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자들을 두고 하나님께서 들의 백합화와 들풀을 입히신다 말씀하시며 “믿음이 적은 자들” 이라고 하셨습니다.
반면 마태복음 15장에서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찾아온 ‘가나안 여인’을 향해서는 “네 믿음이 크도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보면 큰 믿음이 있고 적은 믿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적은 믿음을 가진 자들을 책망하시고, 큰 믿음을 가진 자를 칭찬하셨습니다.
바울은 고전3:1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있고, 신령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신앙의 상태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나의 믿음이 큰 믿음인지 적은 믿음인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인지 신령한 자의 믿음인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 3절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를 가리켜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사랑함이 풍성하다”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믿음이 성장하였고, 서로 사랑함이 풍성하였습니다. 우리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처럼 믿음이 자라고, 서로 사랑함이 풍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단계가 있습니다. 믿음을 인간의 성장 단계에 비유하면...
어린아이의 단계가 있습니다. 유아기의 아이가 아머니의 젖을 먹고 성장하고, 부모의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하듯이 믿음의 선배에게 배우고 도움을 받아 신앙인의 면모를 갖추어가는 단계입니다.
청년의 단계가 있습니다. 홀로서는 단계입니다. 홀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자기 신앙을 확립하고 악한 유혹과 맞서 싸우며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앙의 토대를 쌓는 단계입니다.
아비의 신앙 단계가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영적인 경험을 통해 믿음이 성숙하고 굳건해져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돌보며 믿음의 길을 안내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믿음의 성장 과정을 다르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믿음의 씨앗이 마음에 심겨집니다. 가장 기초 단계이지만 가장 중요한 단계이기도 합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면 그 안에 생명이 있어 성장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마음이 변화되는 단계입니다. 말씀을 통해 옛 자아가 깨지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마음이 새로워지고 심령의 변화가 일어나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단계입니다.
순종하는 단계입니다. 변화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교회에 덕을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세웁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성장의 단계를 거치면서 더 성숙한 신앙의 사람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고전 3장에서 바울은 성장하지 않는 고린도교회 교인을 향하여 너희를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대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철이 든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철이 들지 않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철든 사람에게 통하는 이야기를 철들지 않는 사람에게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해하지 못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믿음이 성장한 만큼 성숙한 신앙인이 됩니다. 성숙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맡기신 거룩한 사명을 짊어지고 책임을 감당합니다. 믿음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의 인생을 값지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고 즐거이 헌신합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은 믿음이 큰 사람의 삶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선교사로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며 일생을 바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물질을 바치고 시간을 바치고 교회에 충성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를 위해 신앙생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자기 그릇만큼 사는 것처럼 신앙인은 자기 신앙의 그릇만큼 믿음으로 행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많은 재산을 소유하였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느냐로 평가됩니다. 재산이 넘칠 정도로 많아도 무가치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고, 비록 가난해도 위대하고 값진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질은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값진 삶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얼마를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았느냐로 평가됩니다. 우리는 믿음의 분량만큼 값지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길 바라십니다.
엡4:13절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 합니다.
골1:9,10절에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기도하고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까요?
믿음이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이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삶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신앙 용어들이 추상적입니다. 은혜, 사랑, 자비, 긍휼, 거룩... 참으로 많이 듣는 단어입니다. 이런 단어들이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어서 삶과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 “은혜 받았습니다” 입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말인가요? 설교를 듣다가 마음이 찡해지거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면 은혜받았다고 합니다. 또는 기도하다가 마음의 답답함이 해소되고 시원해지면 은혜받았다고 합니다. 은혜를 이렇게 추상적으로 감정적으로 이해하기에 은혜를 아무리 받아도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구체화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라. 용서하라.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를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용서하기로 작정하고 그를 대하는 태도를 달리해야 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하시는구나 하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지적으로 아는 것으로 그치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구체적인 결단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 호주머니에 돈을 챙기기 위해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고 살았다면 이제 양심의 거리낌이 없도록 정직하게 번 돈으로 살겠습니다는 결단을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믿음이 구체적으로 삶과 연결되지 않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에 머물러 있으면 믿음의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가령 누군가를 믿는다면 그가 하는 말도 믿을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그가 하는 말을 의심한다면 그건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 내 삶이 변화되며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믿음의 성장은 머리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이 성장하면 삶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성장을 원하실 뿐 아니라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혼자의 힘으로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을 가능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나를 빚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하였습니까? 인간을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작품입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을 때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도록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려면 하나님이 나를 새롭게 하고,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많은 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반대로 가져갑니다.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 생각하고 끈질기게 간구합니다. 우리가 구해야 하는 것은 헛된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헛된 욕망을 구하며 “믿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을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새롭게 하시도록 하나님을 따르며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은 나를 발견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믿음의 눈을 갖게 됩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면 내가 누군지를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을 때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면 내가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믿음이 없을 때는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지 못하다가 믿음이 있으면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구속의 은혜가 필요한 것을 알게 되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합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면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분의 변화입니다. 죄인이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아는 사람은 죄인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죄인으로 산다면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신분이 변하면 삶도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학생의 신분일 때와 직장인의 신분일 때 삶의 모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독신으로 살아갈 때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을 때의 삶의 모습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살아가실 때 자신의 머리 둘 곳 조차 없이 무소유로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이곳 저곳 옮겨 다니시며 유랑 생활을 하셨습니다. 옷이 누추하고 피부가 거칠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거룩하고 영광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나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외모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기보다 자신의 내면과 삶으로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 4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박해와 환난 중에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서로 사랑하며 인내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박해와 환난이 있다고 해서 왜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당해야 합니까? 하며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살았고 이 과정을 통해서 그들의 신앙이 정금같이 변하고 성장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성장합니다. 참믿음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이 있는 참 믿음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 생명력이 없는 다수의 사람보다 더 큰 일을 이룹니다. 교인의 수보다 중요한 것은 참믿음이 있는 생명력입니다.
한국 기독교 초기 때 기독교인 인구가 2%에 불과했는데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사회를 선도했습니다. 교육에 앞장섰고, 문맹을 깨우치고 병원을 세우고, 문란한 생활을 바로잡으며 선구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교세가 커졌으나 교회의 역할은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선구자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이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 뿐입니다.
생명력이 있는 참믿음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입니다. 사랑하는 희망촌교회 교우 여러분! 생명력 있는 참믿음의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생명력 있는 참믿음으로 믿음의 성장을 이루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믿음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우리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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