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혜와 진리 (요한복음1:6~14)
- 백종선 2025.8.24 조회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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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1 : 6 - 14 | 개역개정
-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제목 / 은혜와 진리
성경 / 요한복음 1 : 6 ~ 14
1~5절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두 가지 사실을 통하여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셨던 분이며,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심을 밝힘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예수님이 생명의 빛임을 밝히며 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간과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회복하실 분, 재창조하실 분이 예수님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지만 영적인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5절에서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9~11절에서는 참 빛이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었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영적으로 무지합니다. 성자 하나님이 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으나 이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생명의 빛임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입니다. 6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하며 그가 ‘요한’이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아니라 ‘세례 요한’입니다.
7절에서는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합니다. 세례요한의 역할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역할은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증언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세례요한은 빛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은 빛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러 온 자입니다.
사도 요한은 세례요한의 증언을 통하여 예수님이 빛이심을 강조합니다. 사도 요한과 세례요한이 증언하듯이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예수님이 빛이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요8:12절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 세상은 어둠에 속해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와 무지로 인해 참된 생명과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죄악의 늪에 빠져 신음하며 방황합니다. 이러한 세상에 예수님은 빛으로 임하셨습니다. 죄악 세상에서 방황하며 신음하는 자에게 구원의 길을 여셨고,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도록 진리를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빛이 어둠을 밝혀 사물을 명확하게 보여주듯이, 하나님은 진리를 드러내어 깨달음을 주십니다. 진리를 알 때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 중심적인 이기심과 소유에 집착하는 탐욕과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이 본성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성을 가진 인간은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마음으로 품는 생각이나 말과 행동이 타락한 본성에 이끌려 죄를 짓습니다. ‘진리의 빛’, ‘생명의 빛’이 비추지 않으면 자신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죄인인 것조차도 자각하지도 못합니다. 이기심과 탐욕과 교만한 성향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많은 죄를 지으면서도 죄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습니다.
죄의 본성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은 사랑, 공의, 거룩, 선, 도덕에 대한 의식이 희박합니다. 이를 추구하는 의지가 약합니다. 선한 의지보다는 본능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때 본능을 따라 사는 육체적 인간을 넘어서서 사랑과 공의와 거룩함과 선과 도덕적 인격을 갖춘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격적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느냐 영접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진리의 빛, 생명의 빛이 마음과 지혜를 비추어 분별력을 갖게 되어 진리 안에 거하게 되며,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영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분별력이 없는 상태로 죄 가운데 거하며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존재로 살아가길 원합니까? 육신의 본능과 소욕을 따르는 죄인으로 살아가길 원하십니까?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여 진리 안에 거하며, 영생의 삶을 살아가길 원하십니까? 이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를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육신의 본능과 소욕을 따르는 존재로 살아가기 쉽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배부른 돼지로 사는 게 좋습니까? 비록 배가 부르지 않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게 좋습니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더 추구하는 것 같습니까? 현대인들을 보면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더 안락한 생활을 위해, 더 큰 욕구 충족을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더 가치 있고, 더 인격적이고, 더 유익을 끼치는 삶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기 위해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불법과 부정을 범하면서까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런 모습이 얼마나 역겹고 악취가 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돼지가 금목걸이를 달고, 고가의 옷을 입히고, 명품 가방을 차고 있다고 해도 돼지일 뿐입니다. 금목걸이, 고가의 옷, 명풍 가방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인격적인 사람의 삶은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영생의 삶을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진리의 빛으로 임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의 삶이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 원죄를 타고난 타락한 존재에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갖게 됩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부족함이 많습니다. 영광스럽지 못합니다.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다운 영광스러운 존재로 바꾸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성령의 이끄심으로 거룩하게 변화되게 하시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모습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완전히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셔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13절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는지 말씀합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혈통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육정(肉情)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이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게 하시려고 하신 일이 있습니다. 독생하신 아들을 주셨습니다. 14절에서 요한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가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발견한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고, 또 하나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스런 모습’ 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보았을 때 발견한 첫 번째 영광은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독생자’라는 단어를 ‘유일한 아들’ ‘하나뿐인 독자’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런 뜻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아버지의 영광을 지니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앞에서 요한은 예수님이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이며,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임을 언급하며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했습니다. 14절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지니신 분임을 이야기하며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고, 하나님과 같은 뜻과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요한이 발견한 두 번째 영광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 제물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두 가지를 행하셨습니다. 하나는 ‘죄에 대한 심판’이고, 하나는 ‘죄인에 대한 용서’입니다. 죄를 심판하는 것와 죄인을 살리는 은혜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성립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죄를 심판하며, 동시에 죄인을 살릴 수 있습니까?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대속적 희생입니다. 이는 속죄 제사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구약의 속죄 제사는 소 또는 양, 염소, 비둘기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왜 이런 짐승을 제물로 바쳤을까요?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이 따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죄의 값은 생명입니다. 생명을 값으로 지불해야 합니다.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죄를 사하려면 피로서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속죄 제물로 희생한 짐승은 인간을 대신하여 심판받은 것입니다.
속죄 제사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고, 동시에 죄사함의 은혜가 임합니다. 속죄 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리면 사죄의 은혜가 임합니다. 대속죄일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제물을 잡아 그 피를 지성소 안에 있는 시은좌에 뿌립니다. 시은좌(施恩座)는 ‘은혜를 베푸는 자리’라는 말입니다. 施(베풀 시), 恩(은혜 은), 座(자리 좌)로서 지성소에 있는 시은좌는 은혜를 베푸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가 바로 속죄의 은혜가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완전한 자신의 몸을 속죄물로 드려 피를 흘리심으로 완전한 속죄 제사를 드렸고,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사함 받는 속죄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진리가 충만하였습니다. “진리가 충만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실체를 온전히 드러내시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요14:6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하셨습니다. 요1:17절에서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 ‘은혜와 진리’는 율법의 불완전함을 넘어선 복음의 완성을 뜻합니다.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했다면, 예수님은 그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의 실체를 온전히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온전하게 하고 영화롭게 합니다.
우리는 오직 은혜와 진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산다는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독생하신 예수님이 살아가신 모습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우리 역시 은혜와 진리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도 은혜와 진리의 복음으로 새롭게 되고, 더 나아가 은혜와 진리의 복음으로 죄인을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입술로만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은혜와 진리를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대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은혜를 베풀며, 진리 가운데 행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희망촌교회 교우들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누리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처럼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사역을 감당하여 구원의 빛을 비추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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