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물고 세우리라 (요한복음2:13~22)
- 백종선 2025.4.6 조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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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2 : 13 - 22 | 개역개정
-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제목 / 요한복음 2 : 13 ~ 22
성경 / 허물고 세우리라!
본문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이 가까이 왔을 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을 때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성전에서 쫓아내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이 과격해 보입니다. 예수님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분노하시며 과격한 행동을 하셨을까요? 거룩한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성전의 원형을 찾는다면 모세가 지은 성막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백성들과 시내산에서 만났을 때 모세에게 성막을 짓도록 설계도를 주시고 성막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막을 짓도록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함께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시면서 출25:22절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이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것은 성막에서 모세와 만나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할 모든 일을 일러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 성전은 심장부와 같습니다.
성막에 계셨던 하나님이 솔로몬 시대에 와서 성전 건축을 허락하여 성전에 거하셨습니다. 이전까지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을 하며 이동해 다녔기에 이동이 가능한 성막에서 하나님이 거하셨지만 예루살렘이 수도로 정해지고 정착 생활을 하면서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고, 그곳에 거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제사가 필요합니다. 부패한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려면 속죄의 제사가 필요합니다. 속죄의 제사를 통해 죄사함 받고 정결하게 될 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에 나와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침략당하는 일이 빈번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대를 떠나 세계 각처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세계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절기가 되면 예루살렘으로 와서 제사를 드리며 절기를 지켰습니다. 제사를 드리려면 제물이 필요합니다. 멀리서 오는 사람들은 제물을 갖고 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와서 제물을 구입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을 매매하였는데 이를 보신 예수님께서 상을 엎으시며, 제물을 파는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성전에서 제물을 파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시며 이런 행동을 하셨을까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을 팔면서 큰 이익을 남기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제물을 팔 때 정상적인 가격으로 거래하지 않고 폭리를 취했습니다. 바가지를 씌운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대인 남성은 매년 성전세를 바쳐야 합니다. 1년에 반 세겔을 내야 하는데 예루살렘 성전이 인정하는 동전을 내야 한다. 당시 동전에는 왕이나 우상의 얼굴을 많이 새겨넣었는데 이런 동전은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낼 수 있는 돈으로 환전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환 이익을 많이 남겼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막대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에게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며 호통을 치셨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성전을 세운 순수한 목적에서 벗어나 성전을 사적 이익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순수성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사람이 헤롯 왕가입니다. 헤롯은 이두매(에돔) 사람들로 유대인이 아닙니다. 헤롯 왕가는 로마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적극 협조하며 로마의 지지를 받아 유대를 통치하였습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이전에 있던 스룹바벨 성전보다 훨씬 규모가 큰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헤롯은 그가 의도한 대로 성전을 건축하여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는 데는 성공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웅장하였지만 하나님이 성전을 세우신 목적에서 벗어나 변질되었습니다. 성전은 권력의 중심이 되었고, 이익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 변질된 성전 제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어졌다 하더라도 존립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군다가 성전이 죄악의 온상이 된다면 없어지는 게 더 좋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하십니다.
‘성전’이라고 하여서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있고, 하나님이 버린 성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지 않는 성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곳이었기에 예수님은 “성전을 헐라” 하셨고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셨을 때 유대인들이 이를 듣고 “이 성전은 사십 육 년 동안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며 실현 불가능한 일을 쉽게 내뱉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지 알지 못하였기에 이런 오해를 하였습니다. 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무슨 뜻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나옵니다.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은 바로 ‘자기 육체’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사죄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곳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전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건물은 화려하게 서 있지만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여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히10:19,20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하셨습니다.
허물고 세우리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예루살렘 성전은 주후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완전히 붕괴되었고,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셨고,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여 우리에게 의로운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 육체로 사흘만에 새로운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생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거듭나면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 건물이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전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무너지는 성전이 있고, 세워지는 성전이 있습니다. 이것이 계속 반복됩니다. 헤롯에 의해 세워진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은 무너졌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세워진 교회는 시련과 핍박 속에서도 세워지고 확장되었습니다. 박해를 피하여 지하 동굴에 숨어지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더 강해졌고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세계를 지배하였던 로마가 야만족의 침략을 받아 무너졌을 때 로마 교회가 함께 무너졌지만 그레고리 1세가 다시 ‘하나님의 도성’으로서 교회를 건설하였고, 중세시대 부와 권력을 다 거머쥐고 세상 위에 군림하며 전성기를 누렸던 중세교회가 부패하여 외면당할 때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새로운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반복되는 ‘무너짐과 세워짐’의 교회 역사에서 무너지는 교회와 세워지는 교회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너지는 교회가 기복적이고 물질적이며, 세속적인 교회로서 허영과 탐욕, 명예와 권력을 추구한 반면 세워지는 교회는 회개와 개혁, 거룩과 성결, 섬김과 희생을 추구하였습니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이며 탐욕적인 교회가 무너지면 거룩하고 성결하고 섬기며 희생하는 교회가 일어나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기복적이고 물질적이며 세속적인 교회, 허영과 탐욕을 채우고자 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며 거룩하고 성결하고 섬기며 희생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교인수가 감소하고 교세가 약해지는 것 때문이 아니라 한국 교회가 기복적이고, 세속적이고, 탐욕스런 교회로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정말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큰 건물이 아닙니다. 많은 예산이 아닙니다. 정치적 힘이 아닙니다. 많은 교인 수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입니다. 이것이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여져서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타락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영생을 줄 수 있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 다 있어도 예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희망촌교회의 미래는 우리가 어떤 교회가 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무너지는 교회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 퇴락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교회가 되면 세워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있어빌리티’라는 말이 있습니다. ‘있다’는 말과 능력을 뜻하는 ‘어빌리티(ability)’가 합쳐져 만든 신조어로 ‘있어 보이게 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있어 보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돋보이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성형 수술을 하여 뛰어난 외모를 갖추려 하고, 품위 있게 보일만한 비싼 옷을 구입하여 입고, 고급 시계나 가방, 보석으로 장식하여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올라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깊이가 없는 높이는 허영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면의 성숙함이 없이 겉모습만 화려하게 보이려 하는 것은 허영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외모가 눈에 띄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큼 외적인 것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속이 비어 있으면 그 인생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평생을 판사로 지내다가 은퇴를 앞두고 있는 어떤 분이 인터뷰하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판사로서 최고의 위치까지 오른 경력에 비하여 가진 재산이 적어 왜 재산이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결혼할 때 작정한 것이 있는데 재산은 국민 평균 정도가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 이상의 것을 욕심내지 않고 사회에 기부하였습니다. 그가 가진 재산이 약 4억이었는데 국민 평균 재산이 4억 5천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판사가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깊이가 없는 나무가 높이 자라면 위험합니다. 쉽게 뿌리가 뽑혀 넘어지면 주변에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허영에 차 있으면 이런 위험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신의 탐욕과 허영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면 그 신앙은 위험합니다.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해를 입히게 됩니다.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는 허영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고, 선한 일을 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영적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더 거룩하고, 더 성결하고, 더 섬기며, 더 희생하며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의 속사람이 성숙할수록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며 많은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희망촌교회 성도들은 헤롯 성전과 같이 겉만 화려한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성전으로 삼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속사람이 성숙해지고, 선한 열매를 맺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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