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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사람이 되라 (마태복음11:16~19)
백종선 2025.3.24 조회 42

[성경본문] 마태복음11 : 16 - 19 | 개역개정

  •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제목 / 공감의 사람이 되라

성경 / 마태복음 11 : 16 19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였습니다. 이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게 한 후 다른 강의실로 이동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동 과정에서 길가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마주치게 했습니다. 물론 길에 쓰러진 사람은 설정해 놓은 연기자이었습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이동을 시키면서 한 그룹에게는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고, 다른 그룹에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그룹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두 그룹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서둘러야 한다고 한 그룹은 대부분 쓰러진 사람을 두고 그냥 지나친 반면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한 그룹에서는 대부분 멈취 서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실험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적 여유, 마음의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동정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이 너무 바쁘게 살아가면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배려심이 줄어들게 됩니다. 치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시간을 다투며 너무 바쁘게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총력전을 펼칩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고 마음이 삭막해져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문제점을 노출하기 쉽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습니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지치고 피곤하면 대화하는 것도 힘들게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무관심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마음을 나누는 진솔한 대화를 하지 못합니다. 관심이 있을 때 대화를 나누지만 관심이 없으면 대화도 차단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고 고립됩니다. 그리고 고립되면 힘든 일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혼자서 힘든 일을 해결해야 하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의욕이 떨어지고 활력을 잃고 좌절합니다.

바쁜 것 때문에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바쁘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바쁜 일과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의 여유와 몸의 건강 상태는 직결됩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몸이 건강한 사람은 쉽게 지치지 않습니다만 몸이 허약한 사람은 쉽게 지칩니다. 몸이 지치면 마음의 여유를 갖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한 내면이 단단해야 합니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조급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내면이 단단해지려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인생관이 분명한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관을 확립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삶의 중심이 서 있는 사람은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하며 자신을 지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하시면서 아이들이 놀이하는 모습을 이야기하십니다. 아이들이 장터에 모여 놀이를 합니다. 그 놀이는 결혼식 놀이와 장례식 놀이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주로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놀이터에서 놀지만 그 당시에는 어른들을 흉내 내는 놀이를 많이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가장 큰 행사는 결혼식과 장례식입니다. 이런 행사가 있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함께 축하도 하고, 슬픔도 같이 나누었습니다. 이것을 인상 깊게 본 아이들이 이를 흉내 내며 놀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 속에 나오는 아이들은 매우 냉소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 문화에서 결혼식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춤입니다. 함께 춤을 추며 기쁨을 나눕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있다. 음악입니다. 음악이 나오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춥니다. 어떤 아이가 결혼식 놀이를 하려고 피리를 불었는데 다른 친구들이 호응하지 않고 춤을 추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놀이가 시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놀이를 바꾸어 장례식 장면을 연출합니다. 장례식이 나면 곡하는 사람을 데려와 곡소리를 내게 합니다. 그러면 조문객들이 함께 곡하며 함께 슬퍼합니다. 어떤 아이가 곡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다른 아이들이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함께하지 않으니 이 놀이 역시 계속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누구에게 말하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는 이 비유는 누구에게 말씀하는지 나오지 않지만 동일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7장을 보면 그 대상이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서기관)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백성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 하나님이 의롭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세례를 받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오히려 요한과 예수님을 비방하였습니다.

18,19절입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세례 요한이 선지자로 활동할 때 광야로 나가 메뚜기와 석청만을 먹고 다른 음식을 먹지 않고 청빈하게 생활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고 하며 그가 귀신에 들렸다고 비난하였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을 만나 함께 음식을 나누었을 때 이들은 예수님에게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고,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이들이 장에서 혼인식, 장례식 놀이하는 비유를 이야기하신 이유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행동이 이와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호응하지 않은 것처럼 세례 요한의 선포와 예수님의 부르심에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말라기 이후 400만에 출현한 선지자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며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왔다고 선포했으나 요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거부하며 귀신에 들렸다고 비난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시고, 백성들과 함께 지내며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잘못된 행동을 드러내시며 이를 경계하도록 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말씀에 호응하지 않고 오히려 비난하였을까요? 자기 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들만 의롭고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선지자 세례 요한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 외에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을 따르지 않으면 비난하고 정죄하며 제거하려 합니다. 독선적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경계하고 주의하라고 한 인물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독선에 빠지기 쉽습니다. 자기만 옳습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기준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이런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자신이 뛰어난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많습니다.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기에 다른 사람은 자신들의 말을 따라야 하고 자신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만한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다른 사람에게 바람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이들에게서 좋은 영향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회에 해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의 눈에는 다른 사람이 다 부족하고 형편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무지하고 덜떨어지고 인간답지 못한 미개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난을 일삼고 정죄를 밥 먹듯 하지만... 이들은 죄인을 살리지 못합니다. 연약한 자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람을 매장합니다. 기를 꺾습니다. 이들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긍휼이 없습니다. 이들은 생명을 살리지 못합니다. 연약한 자들을 파멸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의()에 빠지거나, 특권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가진 문제에 빠지기 쉽습니다.

 

바울은 고전 13장 사랑장에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하였습니다.

사랑이 없는 의(), 사랑이 없는 지식, 사랑이 없는 능력은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자신의 지식과 능력과 힘이 악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십일조를 철저히 합니다. 금식 기도를 합니다. 안식일도 지킵니다. 모든 면에서 철저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사랑이 없었기에 다른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며 이들의 영혼을 짓밟았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지식이 아닙니다. 사랑은 깨달음이 아닙니다. 사랑은 삶입니다. 사랑은 선한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죄인을 살리고, 연약한 자를 세우는 행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과 세리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의 곁에서 돌보시고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습니다. 다섯 번 결혼에 실패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영생을 주셨습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사랑은 마음을 함께하는 겁니다. 12:15절에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하였습니다. 피리를 불면 함께 춤을 출 수 있어야 합니다. 곡을 하면 함께 가슴을 치며 슬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뇌 과학자들이 폭력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왜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걸까?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폭력적이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들이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원숭이 2마리를 각각 우리에 가두어 놓고, 2마리 원숭이들가 줄을 함께 당기면 위에서 바나나가 하나씩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한 원숭이만 줄을 당기면 바나나가 떨어지지 않고 두 마리가 같이 줄을 당겨야 바나나가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반복 학습을 통하여 원숭이들은 바나나를 먹으려면 함께 줄을 잡아당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같은 방법으로 함께 줄을 잡아당기면, 한쪽에만 3~4개의 바나나가 떨어지게 했습니다. 원숭이는 자기에게 떨어진 바나나를 혼자서 먹었습니다. 똑같은 실험을 4살 전후에 어린아이 대상으로 하였는데 아이들은 받지 못한 아이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하여 인간에게는 원숭이와 달리 공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질수록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갈등과 대립의 문제를 노출합니다. 폭력성이 높아집니다.

공감 능력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인간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공감 능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고,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있습니다. 공감 능력은 성장 과정에서 받은 영향에 따라 크게 좌우됩니다. 성장기에 공감받은 경험이 많은 사람이 공감 능력이 크고, 공감받은 경험이 적은 사람은 공감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아이를 키울 때 아이들의 감정에 반응해 주며 감정을 함께 공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공감 능력은 후천적으로도 키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감정을 교류할수록 공감 능력이 커집니다.

 

버클리대학의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Dacher Keltner)에 따르면 조직에서 리더로 부상하는 사람은, 타인에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고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자 노력하는, 공감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혼자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자기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고립하면 자기 발전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와 함께하길 원할까요? 경쟁자와 함께 하길 원할까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과 함께 하길 원할까요?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입니다.

경쟁에서 혼자 살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일수록 사회에서 고립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마음을 함께 나누는 사람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이 자기 발전을 이루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서로 배려하고 마음을 함께하면 우리가 함께 발전합니다만, 서로를 배려하지 않고 마음을 함께하지 않으면 우리 각자가 고립되어 발전할 수 없습니다.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며 마음을 함께 나눌 때 우리의 관켸는 가까워지고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알아주고 관심을 기울이면 빨리 가까워질 수 있고, 서로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서 친밀한 성도의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아름다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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